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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도심 복판에서 일어난 사건. 전 직장 동료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시민들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의 전모보다 관련 뉴스 속 한 단어가 맴돌았다. 테/이/저/건.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갸웃한 뒤 기억났다. 2009년 여름과 쌍용차, 그리고 테이저건.

서울에서 경찰이 피의자를 제압하며 사용한 테이저건은 일종의 전기충격기로 화살촉 모양의 탄환이 몸에 박히면 순간 5만 볼트의 전류가 흘러 사지가 마비된다. 비살상 무기라지만 사람 목숨을 앗아간 전력도 있다. 미국의 무기제조업체 테이저사에서 만든 그 최신 무기를 처음 접한 건 그해 여름 쌍용자동차 파업 소식을 전하는 뉴스 보도에서였다.

 쌍용차노조 조합원 박아무개씨가 22일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얼굴을 맞았다.
 쌍용차노조 조합원이 2009년 7월 22일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얼굴을 맞은 모습. 경찰은 국제사면위원회도 사용 금지한 테이저건을 꺼내들었다.
ⓒ 쌍용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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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경찰은 파업중인 쌍용차 노동조합원들이 머무르는 평택 공장에 진입하며 치명적 위험성 때문에 국제사면위원회도 사용 금지한 테이저건을 꺼내들었다. 조합원 한 명은 빰에, 두 명은 넓적다리에 테이저건을 맞았다. 당시는 '생소한 무기가 등장했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지난주 서울 여의도 사건을 보며 궁금해졌다. 그때 쌍용차 평택공장의 노동자들은 이 사건 피의자만큼 위험한 사람들이었나? 경찰의 대응방식으로 보면 '살겠다'고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이나 오늘에 절망하고 칼을 선택한 삼포세대 피의자나 위험의 질량은 같은가? 그래서 읽었다. '쌍용자동차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의자놀이>(휴머니스트). 테이저건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 2009년 여름 쌍용차 사건을 되짚어 보며.

고된 노동 끝난 뒤 '소박한 행복'에 웃었던 그들

지금 근무중인 일터는 세 번째 직장. 급여는 전보다 안정화됐지만 노동 시간은 곱절 늘었다. 평일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 하루 13시간 근무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었어도 매달 급여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가장 노릇 한다 위안 삼는다. 직장을 옮긴지 한 해 반이 넘었지만 세 살, 다섯 살 두 딸 아이의 불만은 가시지 않는다. 어제는 퇴근 후 집에 가니 아내가 전화기에 녹음된 막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엄마, 엄마, 아빠는 똥방구야. (왜?) 맨날 회사에만 가고. 일만 하는 아빠는 똥방구야. (아빠가 일해야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살 수 있는데 그래도 아빠가 똥방구야?) 아니. 아빠 똥방구 아니야. (그럼 뭐라고 할 거야?) 아빠, 싸랑해요."

 <의자놀이> 겉표지
 <의자놀이> 겉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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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많은 아빠를 향한 원망이 담겼어도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온기 있는 집에서, 아이의 음성을 전해 듣고 아내와 시원한 맥주 한잔 나눌 수 있다면, 고단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가장,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 아닐까. <의자놀이>는 한때 그런 행복을 당연시했지만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77일간의 쌍용차 노조 파업이 끝난 뒤 - 옮긴이 주) 남편은 무급휴직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남편은 평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으나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아침을 먹고 난 그는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어디 일용직에라도 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지고 들어오는 돈은 생활비로는 너무 적었다. 적금을 깨고, 보험을 해약하고, 오래되어 몇 푼 받지 못하지만 차를 팔고, 아이들 돌 반지, 결혼 때 받은 목걸이까지 팔았다. 그래도 돈은 모자랐다. 그러나 문제가 돈만이라면 어쩌면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은, 아무 희망이 없었다. 아내도 남편도 아이들도 말이 더 적어져 갔다. 남편은 대개는 술에 취해 들어왔고, 가끔 화장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서미영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일찍 들어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평소에 말수가 적던 아내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자 임성준씨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평범하게 그를 맞았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 표정이 없는 아내의 눈길이 평소보다 약간 더 길게 남편에게 머물러 있었다라는 것 정도일까? 약간 겸연쩍어진 임성준씨는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서미영씨는 무심한 걸음걸이로 베란다로 다가가 문을 열고 그대로 앞으로 나갔다. 그녀의 몸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아 아파트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삶과 죽음 사이, 아무리 평소에 자살을 연습했던 사람이라 해도 한순간쯤은 망설일 그 간격을 그녀는 풀쩍 뛰어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에 다른 방이 있었다는 듯 스스럼없는 몸짓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베란다로 나가는 엄마를 빤히 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의 눈앞에서 엄마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 <의자놀이> 19~20p 중에서

작가에 따르면 자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죽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다른 방식의 절박한 구조 요청. 이 구조 요청 시간을 얼마나 더 두느냐에 따라 절망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가령 수면제나 진정제를 통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약을 먹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비교적 긴 편이라 성공률이 매우 낮다. 자살을 시도하는 이도 무의적으로 이것을 의식한다. 약물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자살 재시도율이 낮은 점도 이런 사실을 반증한다.

자살 시도 중 삶의 의지가 거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죽음은 고층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다. 몸을 던지는 순간 실패하거나 제어할 수단이 거의 없다. 유서의 여부로도 자살자의 절망 정도를 짐작한다. 유서나 문자, 전화라도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자살자가 있는 반면 전혀 없는 자살자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메시지가 될 단 한 줄, 단 한 마디를 남기는 것도 사치로 여긴 이들에게 삶은, 정말 죽음 같았을지도 모른다.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정리해고에 맞선 노조의 77일간 총파업은 테이저건이 등장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그 사이 쌍용차 대주주는 중국자본에서 인도자본으로 바뀌었고 자동차 새 모델이 출시됐다. 그리고 22명이 죽었다.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었고, 회사의 강요로 희망퇴직한 노동자가 번개탄을 피워놓은 차 안에서 사망했고, 노조 정책부장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옥쇄파업 중 공장을 나가 희망퇴직한 노동자가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 파업에 끝까지 참여했던 활달하고 건강한 조합원이 몇 달 전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유서나 문자 등 마지막 메시지가 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아니, 가장 강렬한 메시지인 '죽음'만을 새겨놓고 22명은 떠났다. 그 가운데는 '부부'도 있었다.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은 2011년 2월 26일 아침,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주던 아빠가 늦잠을 자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방문을 열었다. 아빠는 엎드린 채였다. 어제도 아빠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왔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가 그렇게 떠난 후 어떻게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없는 돈이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심리치료도 받으러 다녔다. 어떻게든 상처를 딛고 살다 보면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어 약속한 복직을 시켜줄 거니까 힘내자고 남매에게 말하던 아빠였다.

일 년을 기다리고 다시 일 년을 기다려도 회사는 약속했던 복직은 시켜주지 않고 있었다. 취직도 될 리 없었다. 아직 신분상 쌍용자동차 노동자니까 말이다. 그런 아빠가 너무 가여워서 남매는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참으며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빠가 피곤하다 싶어 더 자게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딸은 아빠의 등에 손을 댔다. 아빠의 등은 벌써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임성준.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44세. 열일곱, 열여섯 살 남매는 그 일 년 사이 그렇게 고아가 되었다. 아빠가 남기고 간 통장의 잔액은 4만 원……. 150만 원의 카드빚 청구서도 아빠의 죽음 뒤에 날아왔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시작된 이래 13번째 죽음이었다." - 20~21p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나"... 세상을 떠난 이들만 22명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서 점거 파업중인 쌍용차 노조원에게 물 전달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자 경찰들이 살수차로 물을 뿌리며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9년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서 점거 파업중인 쌍용차 노조원에게 물 전달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자 경찰들이 살수차로 물을 뿌리며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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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 잡고 원을 그리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가 멈추면 재빨리 의자로 달려간다. 의자는 매번 사람 수보다 부족해 꼭 탈락자가 나온다. 지금은 앉았어도 다음에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 차지가 될 수 있는, 일명 '의자놀이.'

기준도 원칙도 없이 쌍용차 회사가 감행한 '정리해고'는 의자놀이를 닮았다. 사람 수보다 부족한 의자를 놓고 노조는 여럿이 돌아가며 앉는 방안, 합심 노력해 의자를 늘리는 방안 등을 제시하지만 애초 사람 줄이기가 목적인 이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는다. 그럼, 의자에 앉은 이들은 승자일까? <의자놀이>는 의자에 앉은 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만신창이가 된 현실을 담담히 전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되었나. 동료가 살겠다고 데모를 하는데 그나마 아직 안 쫓겨난 내가 가서 그들을 욕하는 구호를 외치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노노분열을 부추기는 회사가 정말 싫어. 나는 요즘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 99p

"아직도 생각나요. 우리가 회사 앞에 갔는데 '산 자'들이 '이러다가 다 죽는다. 너희는 물러가라!'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 앞에 섰죠. 제가 말했어요. 아저씨, 아저씨, 나 알죠? 전에 애 아빠랑 저희 집에 오셔서 늦도록 술 드셨잖아요. 우리 야유회 가서도 한 돗자리에 두 가족이 같이 앉았잖아요. 아저씨, 어떻게 아저씨만 살자고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세요 하고 말했는데…… 그분 끝내 내 눈을 피하면서 로봇처럼 계속 구호를 외쳤어요. 그때만 해도 그렇게 밉지 않았는데 얼마 전 거리에서 마주쳤는데…… 미칠 것 같았어요. 마음속으로 욕이 나오고……." - 153p

내가 사는 충남 천안은 쌍용차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 평택과 안성천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다. 그동안 애써 관심 갖지 않은 데에는 지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컸다. 작은 직장을 전전하며 고만고만한 임금을 받는 내게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사안의 심각성이나 규모와 상관없이 결이 다른 노동문제로 다가왔다. 책에도 나와 있듯 한때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평택에서 구매력과 씀씀이가 가장 큰 중산층 집단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전 직장을 옮기며 밀린 임금은 고사하고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한 내 처지 역시 쌍용차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는 데 한 몫했다. 심리적 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의자놀이>를 통해 풀린 오해도 있다. 감당키 어려운 손해배상이나 공권력의 닦달이 없다는 점, 전 직장 근무 경력이 새 직장을 얻는 데 주홍글씨같은 낙인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사정이 나을 것도 같았다.

중요한 건, 상황의 우열이 아니다. '의자놀이'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끈기와 지혜, 협력이 필요함을 이쯤하면 서로가 깨달아 가고 있지 않을까. 인세와 판매 수익금 전액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기부되는 <의자놀이>를 구입한 것도 기실 그런 깨달음의 연장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늘 소박하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입시경쟁을 치르고 스펙을 쌓고 취직을 한다 해도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를 빙자한 '더 많이 벌기 위한 경영상의 이유로' 오래도록 성실했던 내 아이들을 해고시킨다면, 그래서 거기에 항의하는 내 아이들을 경찰이 와서 테러범처럼 진압한다면, 문서상으로 보아도 조작이 분명한데 전문가들끼리 그게 맞다고 우긴다면, 그래서 내 아이가 대한문 앞 비닐 천막에 쭈그리고 앉아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 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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