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인은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산다고 썼지만 인생은 때로 경험하는 만큼 산다. 대학 입학해 가장 좋았던 점. 음주가무의 자유, 고삐풀린 연애질, 제 멋대로 탐닉한 동아리. 아니다. 최고 좋은 점은 '청소에서 해방.' 초·중·고 통틀어 12년간 청소는 지겨운 일 목록 가운데 매번 앞자리를 차지했다.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행동거지가 크게 불량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자주 청소에 투입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청소는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그저 그런 일의 대표명사였다.

그렇게 기피한 청소를 요즘은 매일 반복한다. 동네에서 책과 관련한 공익 활동을 해 보자고 지인 몇 명이 의기투합해 2010년 겨울 북카페를 열었다. 북카페라고 하면 막연히 우아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맞다. 좋은 책과 커피향 스민 북카페. 분명 우아한 장소지만 북카페 일은 전혀 우아하지 않다. 매일 사람들이 드나들고 음식까지 취급하니 청결은 필수. 1, 2층으로 나뉜 매장 전체를 출근과 함께 한두시간 쓸고 닦고 하면 여름은 웃옷이 땀에 흥건히 젖는다. 누구에게는 낭만의 공간이 누구에게는 노동의 공간이자 땀의 장소이다.

그러며 깨달았다. 자신이 청소에서 해방됐다고 청소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사실. 간밤 잔디밭에서 대학의 낭만을 만끽하느라 부어라 마셔라 해도 다음날 흔적없이 치워진 잔디밭. 언제나 깨끗한 강의실. 학생들이, 교수들이, 교직원들이 하지 않았을 뿐 누군가는 드넓은 대학 캠퍼스를 분주히 오가며 매일같이 쓸고 닦았으리라. 사람들은 그들을 뭐라고 불렀을까.

<우리가 보이나요> 표지
 <우리가 보이나요> 표지
ⓒ 윤평호

관련사진보기


"월급 75만원, 끼니당 밥값 300원. 그게 방송에 맨처음 나갈 때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내 얼굴이 나오면 친구들이 그 돈 벌려고 그 추운데 나가서 청소나 하고 살았느냐 그런 소리나 할 것 같고. 이거는 아니다 누군가가 우리가 없다면 그 청소를 누가 하며 내가 비록 화장실 청소를 하고 복도 청소를 할 때 내가 남의 자식 청소해 준다는 기분으로 안 하고 내 자식들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라고 하는 거지."

<우리가 보이나요>(한내 펴냄)는 2011년 1월 3일부터 2월 20일까지 49일간 농성 투쟁을 전개하며 원직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을 쟁취한 홍익대학교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대학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유령 노동자'라 일컫는다. 남자화장실에 여성노동자가 들어가도 그 누구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볼 일을 본다. 강의 중에도 회의 중에도 그들이 일하는 것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그냥 한다. "아, 저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구나..." 그래서 유령 노동자라 소개한다.

4월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1번으로 대학 청소 노동자를 공천했다. 정당 득표율 1.1%로 대학 청소 노동자의 국회 입성은 무산됐다. 한 자리수에 그친 진보신당 득표율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령 노동자가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가능성, 등치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유령들로 차고 넘친다.


우리가 보이나요 - 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 이야기

이승원.정경원 지음, 한내(2011)


태그:#우리가보이나요, #청소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