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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학교.
 대전의 한 학교.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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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기고 싶지 않은 학창시절의 추억

박노해의 시 중에 '지문을 부른다'라는 시가 있다.

....(전략) 아/ 없어,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질 않아/ 없어,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후략)

이 시는 강고한 노동 속에서 지문마저 사라져버린 노동자들의 비애를 극명하게 형상화해낸 리얼리즘 문학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시의 성공을 무작정 기뻐할 수 없다는데 나의 고뇌가 있다. 그건 바로 기본 컨셉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 4천만 인구 중에 지문이 없는 사람들이 어찌 노동자뿐이겠느냐 이 말씀이다.

역대 장관들 중에도 지문이 없었던 분들이 더러 있다. 아니다. 예란 가까운 데서 찾아야 더 실감나고 이해하기 쉬운 법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출세를 위하여 시도 때도 없이 손바닥을 비벼대서 급기야는 지문이 마모돼버린 사람이 더러 있었다. 왜 그 사람들은 소외시킨 채 노동자들만 특별히 형상화시켰더란 말이냐?

만일 이 땅의 지문 없는 사람들이 총궐기해서 손바닥을 마구 비비며 자기들도 제발 형상화 시켜달라고 퍼버리고 앉아 울음을 울면서 연좌시위라도 벌이면 어찌할 것인가. 까짓 촛불 시위야 물대포차 몇 대 투입하면 그만일 터. 그러나 이 지문이 없는 사람들 가운덴 정권과도 가깝고 만사형통한 사람도 있을 터, 함부로 다룰 수 없으니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이냐?

이에 마음 약한 나는 차제에 지나친 아첨으로 말미암아 지문 상실의 뼈저린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아무 조건 없이 순전히 '복지차원'에서 지문재생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지문 되찾아 주기' 운동을 제창하는 바이다. 이 기회를 통해 지문을 되찾는 자들은 다시는 건전한 언로 형성에 장애가 되는 행위를 삼가주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일찍이 나의 고교시절에 독일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이분께선 어찌나 교장선생에게 아부를 떨어대던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문 채취 불가' 판정이 내려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존경하옵는 선생님의 지문을 노심초사하다가 아무 성과도 없이 졸업을 하게 되었다.

고교졸업 후 내가 이 선생님과 해후한 때는 군바리에서 "사제인간'으로 승격한 지 두어 달쯤 지나서였다. 내 신분 상승을 축하하는 술자리가 밤낮없이 이어지던 분주한 나날이었다. 낮술도 좋커니와 밤술이면 더욱 좋을시고. 이날도 낮술에 젖어 술집을 순례하며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중중모리 걸음으로 떠돌고 있었것다. 저만치 앞에서 역시 '빨간 대추' 같은 거나한 얼굴을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그 독일어 선생이었다.

피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것은 나의 오랜 생의 지침이다. 더구나 그때는 아직 군바리 정신이 채 전신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던 때였다.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선생님께 다가가서 꾸벅 절을 했다. 그는 매우 반갑게 나의 인사를 받고 나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너 지금 뭐 허냐?"

난 이 선생이 국립대학 학생처장으로 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거기엔 시도 때도 없는 아부로 말미암아 거의 소멸해버린 그의 지문의 힘이 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나는 아니꼬운 나머지 아주 정색을 한 채 말했다.

"선생님, 지금 제가 뭐하고 사느냐 물으셨습니까? 전 지금까지 많은 선생님께 배웠습니다만 그분들을 만나뵐 적마다 너, 내가 가르쳐준 대로 살았느냐고 묻는 선생님을 여태 단 한  분도 뵙지 못했습니다. 너, 내가 가르쳐준 대로 살고 있느냐? 묻고 나서 너 지금 뭐하고 사느냐고 물으면 순서가 틀립니까? 여태 그런 선생님 한 분 만나지 못한 제 인생이 서글퍼서 낮술 한잔 했습니다만."

적수는 적수를 아는 법이다. 제자의 돌발적인 행동 앞에 그의 단련된 지성(?)은 재빨리 판정을 내렸다. 이 놈은 내가 상대할 놈이 아니다. "너, 많이 마셨구나. 그럼 담에 보자." 그는 재빨리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생각하면 그는 참으로 생의 기미를 아는 사람이었다. 1985년경이었던가. '어용교수 축출'이 대학가의 이슈가 되어 있을 때 그는 독일문화원 초청으로 독일 유학을 떠나 재빨리 학생들의 타겟을 피해 버렸다. 참으로 그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었다.

이후에 난 그 선생님의 안부와 지문의 건재 여부에 대해서 전혀 듣지 못했다. 다만 그의 몇 개 남지 않은 지문이나마 온전하여 그가 속한 사회가 더는 썩은 냄새로 진동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난 누구못지 않게 학교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그 독일어 선생님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자신의 직위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선생도 싫었고 밤 11시까지 계속되는 야간자습도 싫었다. 아니, 학교의 모든 것이 꼴보기도 싫었다. 그래서 내겐 학교를 두 번이나 자퇴를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인생의 일할

유하 시 '학교에서 배운 것"은 내가 왜 학교를 싫어하게 돠었나를  간단명료하게 말해준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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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 유하 시 '학교에서 배운 것" 전문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유하는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무림일기>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천일馬화> <세상의 모든 저녁> 등이 있다.

영화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무협지에 나오는 검객들의 허무맹랑한 화법을 빌려 군사정권시절의 천박한 정치상황을 풍자했던 첫 번째 시집 <무림일기>를 읽고서 난 이 시인에게 반했었다. 그는 1996년엔 김수영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므로 영화판의 경력은 시인으로서 그에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 '학교에서 배운 것"은 1999년에 나온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열림원)에 실려 있는 시다. 한 3년 시의 후방을 떠돌다 시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썼다는 이 시집에는 유하의 추억과 현재가 그려져 있다.

시의 첫머리에서 유하는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라고 건들거리듯이, 아니 이죽거리듯이 말한다. 그 일할이란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과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이 전부다.

그는 거기에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이라고.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자기 검열을 말하는 것이리라.

학교에서 상상력을 죽이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당국에 앞서 자기 검열을 먼저 시행한다. 이만큼은 되고 이 이상은 안 될 거라는 제한된 상상력이야말로 시인이나 영화감독에겐 가장 큰 해독이 아닌가. 그가 그런 교육에 반항하는 세운상가 키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유하라는 뛰어난 시인과 감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의 상상력이 억압받지 않도록 하고 아이들의 인간성이 제대로 활짝 필 수 있게 도와주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당연히 좋은 학교란 그런 선생님이 많은 학교다. 세칭 일류 대학 많이 들어가는 학교가 아니다.

내가 글머리에서 예로 들었던 선생님은 아주 드문 예에 속한다. 그런 분보다는 '내가 정말 좋은 선생인가?'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좋은 선생님이 아직은 훨씬 많다는 걸 안다. 스승의 날을 맞은 이 땅의 선생님들께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 분들이 계시는 한 나는 계속 학교에 희망을 걸 것이다.


태그:#학교 , #유하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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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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