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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어버이날이었을까?

 

지난 8일(금) 오후 2시 쌍용자동차 공동관리인의 명의로(이유일, 박영태) 2405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서가 노동부 평택지청에 접수되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자녀들이 만들어준 카네이션을 달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했던 조합원들은 회사의 정리해고 계획서 제출 소식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앉아 죽을 수 없다

 

노동조합은 "쌍용자동차 경영 파탄의 근본원인은 상하이 투기자본과 해외매각으로 일관했던 정부의 정책임에도 노동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정리해고는 받아 들일 수 없다"면서, "정리해고만 철회한다면 신차개발비 1천억원을 담보하고 비정규직 고용안정기금 12억을 출현한다고까지 제안하며 함께 살자했지만 결국 정리해고 계획에 맞서 가정을 지키는 투쟁을 전면적으로 실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정리해고 계획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진 것은 조합원들만이 아니었다. 뉴스와 아빠를 통해 소식을 접한 가족들이 삼삼오오 노동조합으로 모여들었다. 더이상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지난 설명회보다는 많은 가족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50여 명이 모여 노동조합으로부터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족대책위원회 결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합원들이 평택, 송탄, 공도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특성을 살려 각 지역별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 지역별 가족대책위를 총괄하는 가족대책위 위원장으로 이정아(36)씨를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이정아씨는 "아는 것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저를 위원장으로 추천해주셔서 부담이 크다"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다음은 이정아씨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한다는 이야기, 실감납니다"

   

- 회사가 5월 8일 정리해고 계획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솔직히 그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현실감이 부쩍 들어서인지 하루종일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 많은 가족들의 밥줄을 끊겠다는 얘기를  어떻게 종이 한 장 달랑, 그것도 팩스로 보내 통보를 할 수 있나요?
 
우리를 그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한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 사람에 대한 연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일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고생한 남편의 노동의 댓가가 이 정도라니 너무나 분하고 억울합니다. 절대 이 싸움에서 물러서면 안 되겠단 생각에 이를 악물었습니다."

 

- 현재 체불임금이 1400억 원 가량이라고 들었습니다. 임금이 체불되어 힘드실텐데 생활은 어떠신지요?

"신혼 때, 언젠가 우리도 집을 사기 위해 희망을 갖고 들어둔 청약저축을 깼습니다. 그 다음 달엔 보험금 하나도 해약을 해야 했습니다. 불안합니다. 이번달 월급날엔 또 얼마나 나올지. 통장에 잔고가 바닥인데 이번엔 또 어떤 걸 깨야할지. 아이들 학습지,학원은 벌써 끊었구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장을 보러 갑니다. 예전에 애들 데리고 가던 이마트는 가기가 두려워집니다. 주말 나들이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밖에 아이들 데리고 나가기 겁이 납니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한다는 얘기.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 임신 중이라고 들었는데, 가족대책위 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나서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상황이 심각한 건 알지만 선뜻 나서질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이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무척이나 낯설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많이 부담스럽고 아는 게 없어 겁도 나지만 누군가 용기를 내서 일단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서 같이 동참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 요즘 가장 큰 걱정은 무엇인가요?

"한 달 뒤 집에 날아올 정리해고 통지서겠죠. 우리가 만약 이 싸움에서 패배해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면 어떡하나. 그 뒤로 진행될 폭력진압에 맞선 복직투쟁은 또 얼마나 길고 끔찍한 싸움이 될까. 수많은 상념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네요." 

 

- 평택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렇게 큰 회사가 정상화되려면 구조조정은 당연한 거 아니냐, 회사가 오죽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해고시키겠느냐 이런 얘기들, 답답합니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이 그렇게도 반대하던 중국 매각을 추진한 게 바로 정부입니다. 상하이차는 인수할 당시 약속했던 것들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은 채 기술 유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이제와서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다니요. 단 한 사람의 해고자 없이 모두가 함께 살고자 목숨 걸고 싸우는 우리들의 진실된 마음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남편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당신, 매일 아침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의 투쟁을 준비하는 당신, 오월의 햇살에 까맣게 그을린 당신, 오래전부터 목소리가 쉬어버린 당신, 거실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당신, 이 힘든 길 혼자 걷게 하지 않겠습니다."

 

- 가족대책위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족들을 모으는 일이 시급합니다. 운영진이 연락망을 나누어 끊임없이 연락을 취할 예정이고, 2인1조 사람을 꾸려 아파트 단지를 돌며 가두 방송을 할 것입니다. 평택시청, 경기도청, 국회의원사무실 앞 등 우리의 입장을 알릴 수 있는 곳을 찾아가 기자회견과 1인 시위 등을 할 계획이구요, 인터넷, 라디오 등 쌍용차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평택시민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쌍용, #정리해고, #구조조정, #평택, #가족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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