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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끝났다. 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청자로 하여금 '대체 이 드라마 언제 끝나?'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드라마일수록, 대체로 시청자들은 종영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 회, 한 회 예고된 종영 횟수로부터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반대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끝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는 욕을 하면서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이다. 헤어 나올 수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마력이라면 마력인 것이다.

 

지난해 11월 3일 첫 회를 시작으로 지난 5월 1일까지 총 129회, 장장 6개월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은 <아내의 유혹>이 남긴 발자취는 화려하다. 평균 시청률 26.9%(AGB닐슨미디어리서치)로 역대 일일드라마 중 14위의 성적을 거뒀으며, SBS 일일드라마 중에서는 단연 톱이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은 37.5%(이하 동일기준)였으며, 13주 동안 주간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내의 유혹>의 파급력은 단순한 시청률 그 이상이었다. <아내의 유혹>을 보기 위해 직장인들이 '칼퇴근'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면서 '귀가의 유혹'라는 애칭까지 들었다. 그 밖에도 <아내의 유혹>에 빠져 사는 아내에게 '대체 뭔데 목을 매고 보느냐' 핀잔을 주면서 TV 앞에 앉았다가 그 날부터 꼬박꼬박 챙겨보게 되었다는 어느 남편들의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아내의 유혹>의 '마력'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들 거침없이 빠져들었다.

 

<아내의 유혹>의 선전에 SBS의 다른 프로그램들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다. 특히 SBS의 메인뉴스인 <8시 뉴스>의 경우 타사 뉴스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쭉 밀리다가 <아내의 유혹> 덕분에 시청률이 껑충 뛰었다. 지난해만 해도 한 자리대 시청률로 방송 3사 뉴스 경쟁에서 늘 뒤졌던 SBS <8시 뉴스>는 <아내의 유혹>의 30%대 시청률에 힘입어 시청률이 14~16%까지 치솟았다.

 

인기 드라마가 늘 그렇듯, <아내의 유혹>은 출연배우들의 인기도 드라마 못지 않게 올려놓았다. 구은재 역의 장서희는 <아내의 유혹>을 통해 다시 한 번 '일일드라마의 여왕'임을 재확인시켰고, 신애리 역의 김서형은 평범하고 존재감 흐릿하던 기존의 이미지를 싹 벗고 '역대 최고의 악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변우민의 연기 변신도 새로웠다. 데뷔 20년 만에 악역을 처음 한다는 변우민은 천하에 둘도 없을 만큼 '찌질한' 정교빈을 120% 소화했다.

 

<아내의 유혹>을 통해 급부상한 스타를 말하면서 오영실을 빼놓을 순 없다. KBS 아나운서 10년, 프리랜서로 10년, 도합 20년의 방송 경력을 가진 베테랑 방송인이었던 그녀는 <아내의 유혹>을 통해 연기자로 첫 신고를 했다. 첫 연기 도전에 그녀가 맡은 배역은 40살의 나이에 10살의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정하늘'. 쉽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그녀의 연기는 드라마에서 단연 돋보였다. 순식간에 시청자를 사로잡은 그녀의 연기는 <아내의 유혹>이 높은 인기를 얻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그렇다면 대체 <아내의 유혹>의 인기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시청자를 TV 앞으로 잡아끄는 그 원동력은 대체 뭐였을까? 답은 간단하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나치게 빠른 사건 전개로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과 이야기가 순식간에 전개되니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시청자는 꼼짝없이 집중해서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봐야 했다.

 

 드라마에는 호흡이라는 것이 있다. 드라마의 규모와 분량에 맞춰 전반적인 사건의 구성과 배치가 있고, 대개의 드라마는 이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의 유혹>은 달랐다. <아내의 유혹>의 사건 전개는 도저히 120부작 일일드라마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혼하자'고 하면 그 길로 가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망쳐버리겠어'하면 어느새 망쳐져 있다. '납치할까?'하면 채 한 회가 끝나기도 전에 납치한다.

 

사건의 전개가 지나치게 빠르다 보니 시청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때론 한 회에 몇 개의 사건이 급속도로 벌어졌다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드라마의 몇 배를 상회하는 속도감으로 <아내의 유혹>은 6개월을 달려왔다. <아내의 유혹>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는 한 언론와의 인터뷰에서 "연속극이라도 질질 끄는 것은 싫다. 일단 이야기를 터뜨리면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인다"며 속도감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달려도 언젠간 서게 마련이고, 선 이후에는 달리는 동안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아내의 유혹>의 빠른 사건 전개는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는 최고의 명약이었지만 반대로 작품의 완성도와 질적인 측면에서는 최악의 독약으로 작용했다. <아내의 유혹>이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어설프다'였다. 확실히 <아내의 유혹>은 어딘가 모르게 어설펐다.

 

아무 것도 바뀐 것 없이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본다. '아내'의 '유혹'이라는 설정부터 어딘가 어설픈 티가 났다. 그 코믹성에 어느 날부터 '점'이 개그의 소재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빠른 사건 전개는 '사건' 자체를 어설프게 만들었다. 극 중 애리가 강재의 머리를 양은 냄비로 내려쳐서 기절시켰던 장면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대체 양은 냄비로 머리를 어떻게 내려치면 기절까지 할 수 있냐?'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어설프고 모자란 장면들은 <아내의 유혹> 곳곳에서 드러났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개연성 없는 이야기 전개는 어설픔에 덤으로 얹어졌다. <아내의 유혹>에서는 특히나 보편적 상식을 파괴하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애리와 재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고 은재를 며칠 만에 집에 들이는 교빈의 뻔뻔한 행동이나, 사돈집에 가서 패악을 부리다 안사돈의 값비싼 목걸이를 훼손한 죄로 뜬금없이 사돈네 이불빨래를 해야 했던 은재 부모의 일화는 상식을 깨트리는 수많은 에피소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올 초 막장 논란에 휩싸였던 <꽃보다 남자>의 성공과 함께 역대 최강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아내의 유혹>의 대성공은 '막장=성공'이라는 흥행공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경제 위기로 인해 위축될 대로 위축된 드라마 시장의 상황을 볼 때 드라마 관계자들이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는 막장 드라마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듣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당할지언정, 광고 판매는 호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광고 판매에 목을 매고 시청자들이 욕하면서도 드라마를 보는 한, 막장 드라마의 인기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에겐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것을 먼저 잡아야 할 것인가?'하는 딜레마가 계속해서 반복 된다.


태그:#아내의 유혹, #장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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