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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암 가는 길.
 청련암 가는 길.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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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처럼 소박한 암자 청련암

청련암을 아는가. 전북 부안군 진서면 능가산 내소사. 전나무 숲길의 잘 정돈된 아름다움이 나그네를 반기는 내소사 뒤편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1Km가량 올라가 마지막으로 주렴처럼 쳐진 대나무숲 사잇길을 통과하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암자.

청련암은 그렇게 능가산 자락 해발 350m 정도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법당과 요사가 한 공간 안에 있는 인법당 형태의 작은 암자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니게 생각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조신한 처녀에게서 풍기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몇 년 전 여름이었던가. 나는 이곳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다. 내소사에서 오후의 시간을 다 탕진하고서 막상 청련암에 닿았을 때는 이미 저녁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청련암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30평쯤 돼 보이는 소박한 절집이었다.

화엄경은 연꽃엔 청련(靑蓮)·황련(黃蓮)·백련·적련(赤蓮) 네 종류가 있다고 일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이 청련이다. 연꽃 찍는 일에 평생을 바친 스님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그런 제 이름의 유래를 기어이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서까래엔 청색의 단청이 칠해져 있었으며, 그 아래쪽엔 해서체로 쓴 청련암이란 현판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서까래에 살짝 칠해진 청색 단청이 차츰 어두워 오기 시작하는 저녁 분위기와 맞물려 내용을 알 수 없는 신비감을 자아냈다.

청련암
 청련암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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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암 부엌.
 청련암 부엌.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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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암의 겨울 풍경을 끝내 보지 못하고

건물 왼쪽에 부엌이 있었는데 뜻밖에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저녁 공양을 짓는 중인가. 아궁이에선 장작불이 홀로 염불을 외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불을 때던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일까. 두리번거리며 찾아봤지만 암자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마당 가로 나와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을 조망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만치 골짜기 아래에 내소사가 보인다. 조금 더 멀리로 시선을 옮기자 이번엔 곰소만의 귀퉁이가 아른아른 눈 속에 들어온다.

착각하기 쉽지만, 거리나 공간이란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주인도 없고 객(客)도 없다. 내가 현재 딛고 선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다. 그러니 누가 청련암을 일러 내소사의 산내암자라 하는가. 이곳에서 바라보면 청련암이 본 절이요, 저 아래 내소사가 청련암의 산내암자다.

청련암 마당 가에 서서 바라보는 내소사는 곰소만 갯벌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한 마리 농발게 같았다. 저 농발게는 저녁이 오기 전까지 갯벌에 닿을 수 있을까. 무사히 갯벌에 닿아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하여 수면 삼매경에 들 수 있을까. 농발게야, 힘을 내거라, 좀 더. 이미 저렇게 날이 저물고 있지 않으냐. 내소사, 아니 농발게를 응원하는 내 마음이 사뭇 조바심을 냈다. 어쩌면 신중탱화를 배경으로 앉아 있던 인법당 안의 관음보살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황혼이란 한 통의 천연염색 물감이다. 황혼은 제 물감을 쏟아 세상의 존재들을 온통 쓸쓸함으로 물들인다. 그 쓸쓸함에 감염된 나는 나 자신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에게까지 주제넘게 연민을 베푸려 든 것이다.

마치 먼 곳을 떠돌다 오랜만에 시골 고향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마음이 호젓해진다. 거기 아무도 없으면 어떤가. 스님이 비운 집이면 어떤가. 그저 잠자코 서 있을 뿐이다. 적요로움 자체가 바로 마음의 안식이므로 따로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내가 청련암에 머물었던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머문 시간이 짧을수록 여운은 오히려 길게 남는 법 아니던가.

올 1월, 오랜만에 내소사에 들렀다. 내변산을 거쳐 월명암, 월명암에서 직소폭포를 거쳐 내소사에 당도했다. 산길을 걷는 동안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눈발이 전략을 수정했는지 내소사에 도착하자마자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소사는 금세 내설사(來雪寺)가 되었다. 내소사 문살에 새겨진 꽃들이 갑작스레 닥쳐온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렸다.

정말이지 청련암에 가고 싶었다. 청련암의 설경에 갇히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벌써 오후 5시였다. 눈발은 갈수록 거침없이 퍼붓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청련암으로 오르는 일을 그쯤에서 포기하고 내소사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가만히 박현수 시인의 시 '내소사'를 읊조렸다. 시를 읊조리자, 청련암이 아주 선명한 한 폭의 그림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1

길은 흘러내린다
꿈꾸는 것은 모두
스스로의 무게로 흘러내리고 만다
모래도, 흐르는 모래만이
강을 이루고
산으로 떠돌 수 있는 것이다
내소사 낡은 문을 들어설 때
거대하게 꿈틀거리던
유사(流砂)가 하늘을 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적막한 발소리가 걸어 들어온다
뫼비우스의 길
어디서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만
누군가 이 길을 개관하는 이가 있다

적요가 깊을수록
벽은 하나씩 허물어지고
내소사 낡은
뜨락에 단풍은 별처럼 지다

2

길이 늘
수평선으로 흘러드는 서해에 서면
옥상에 뿌리를 둔 담쟁이처럼
가을은
경도를 타고 내려 온다고 한다
전나무 숲을 지나
낙엽 붉어 길 더욱 밝은 외길을
하염없이 빨아들이는 내소사
볕이 드는 툇마루의 오후를
스님의 말은
그림자의 내 귓속으로 지나가고
내 말은
결 불거진 기둥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전나무 씨앗이 날아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진 짐이 한짐이라서

청련암을 물었다
석벽 아래
한 뼘
스님의 손 끝에 단풍이 탄다

    -박현수 시 '내소사' 전문

내소사를 노래한 시는 아주 많다. 아마 내소사는 우리나라 절집 가운데 부석사와 더불어 시인들의 애호를 가장 많이 받는 절집에 속할 것이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청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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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의 시 '내소사의 침묵들이 가벼워지고 있다'나  최하림의 '겨울 내소사로', 김용택의 '내소사 가는 길', 고광헌의 '가을 내소사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김진경의 '내소사에서', 박태일의 '내소사' 등 수많은 시인들이 내소사가 지닌 아름다움을 앞다투어 노래하고 있다.

시인들은 내소사가 보여주는 이런저런 아름다움에 혹해 쉽사리 내소사를 떠날 줄을 모른다. 어떤 사물에 혹한 사람은 결코 그 사물에 대해 통찰력을 가질 수 없다. 적당히 거리 두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야말로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갖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아마 산의 꼭대기에 오른 자만이 자신이 금방 올라온 산을 통찰할 수 있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산 아래 있는 자가 어떻게 산줄기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뻗어가는지 알겠는가.

높은 곳에 자리잡은 청련암이야말로 내소사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기 안성맞춤인 암자다. 그러나 시인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소사를 노래하느라 바쁘다. 시인들이여, 이제 내소사는 많이 묵었다 아이가. 이젠 그만 내소사가 거느린 소박한 암자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노래할지어다.

박현수 시인

1966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박현수 시인은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한도'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청년정신 ), <위험한 독서>(천년의시작) <황금책갈피>(예옥) 가 있다. 

박현수 시인은 경북봉화에서 태어났지만 탄광지역인 태백 황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박현수 시인은 "내 시에는 기본적으로 탄 먼지가 묻어 있다." 라고 말한다. 시집 속에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 '내소사'는 지난 98년에 나온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청년정신 시선)에 실린 시다. 이 시집은 가난한 시인들을 위해 시집 묶어내는 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여기겠다던 '청년정신'이란 출판사에서 펴낸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5~6권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후 이 시집 역시 절판의 운명을 밟고 말았다.
박현수 시인의 시 '내소사' 역시 독자를 청련암까지 데려다 주는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다. 내가 이렇게 청련암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었으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투다.

나는 안다. 이 시인이 얼마나 전략적인 사람인가를. 청련암 풍경을 상상하는 일을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떠넘겨버리는 것이다. 할 수 없다. 나머지 부분은 순전히 내 상상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잠시 머릿속으로 청련암의 풍경을 상상했다. 지금쯤 청련암에도 눈발이 하염없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닥쳐올 추위를 염려한 청련암 스님은 아궁이에 자꾸만 장작불 집어던지고 있을 것이고. 타오르는 불은 사람을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어쩌면 입산하기 전, 고향에서 보냈던 겨울을 생각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몸이 갇히면 생각은 더욱 간절한 법이니.

내 짊어진 삶의 무게로 휘청거릴 때 다시 찾아가리

이 길로 다시 내소사로 돌아가서 청련암으로 올라갈까. 그러나 사람의 몸에는 못 말리는 관성이 있다. 한 번 지향했던 방향을 다시 바꾸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대신 나는 박현수 시인의 시의 마지막 구절을 자꾸만 반복해서 읊는다.

청련암을 물었다/ 석벽 아래/ 한 뼘/ 스님의 손 끝에 단풍이 탄다

보라, 얼마나 감각적인 문장인가. 구구절절 늘어놓은 저 앞의 문장들은 일거에 불필요한 것이 돼  버렸다. 모두 이 마지막 문장을 수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셈이 돼 버렸다. 시인은 이 마지막 두 개의 문장으로 곧장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꿰뚫어 버린다.

그날, 나는 그렇게 내소사를 떠나왔다. 청련암의 가을과 겨울 풍경을 보는 일은 영영 숙제로 남겨둔 채. 누군가가 내준 숙제는 악몽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낸 숙제는 아름다운 기다림을 동반한다. "꿈꾸는 것은 모두/ 스스로의 무게로 흘러내리고 만다"라고, 길도 예외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지만 그런 시인의 말은 "결 불거진 기둥 사이로 흩어" 버릴 일이다. 내가 짊어진 짐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때, 그리하여 더 버티다간 내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허물어지고 말 것처럼 느껴질 때, 그때 나는 청렴암으로 가는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청련암 마당 가에서 바라본 조망.
 청련암 마당 가에서 바라본 조망.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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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내소사92009.1.9)
 눈 내리는 내소사92009.1.9)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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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내소사 , #청련암 , #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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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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