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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가 쑥반죽으로 만든 우리 집 강아지 분이.
 작은 애가 쑥반죽으로 만든 우리 집 강아지 분이.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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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분이.
 강아지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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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남편은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고 중학생인 큰 애는 시험기간이라 방에서 꼼짝 안 하고 있고, 할 일 없는 작은 애와 둘이서 떡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사방에 쑥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쑥을 뜯어 와서 쑥개떡을 만들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쑥개떡은 모양이나 들어간 재료를 보면 쌀과 쑥만 들어가고,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인다면 콩을 넣기도 하니까 만들기 쉬운 떡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많은 노동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주말 내내 쑥개떡에 매달려 있어야 할 정도로 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먼저 집 근처 들판으로 나가 쑥을 뜯었습니다. 쑥개떡의 기본은 쑥이니까요. 들판에는 이미 할머니들 몇이 쑥을 뜯고 있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민들레를 캐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들 틈에 끼어 앉아 쑥을 뜯었습니다.

엄마와 작은 애.
 엄마와 작은 애.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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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의 초기작품. 후기작 보다는 좀 엉성하다.
 작은 애의 초기작품. 후기작 보다는 좀 엉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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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쑥개떡 만들어서 자식들과 나눠 먹는다며 흥겹게 쑥을 뜯었습니다. 할머니들에겐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모양입니다. 민들레를 캐고 있던 할머니도 자식들과 함께 약해 먹는다고 한 뿌리라도 더 캐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 뜯었던 것 같습니다. 좀 큰 비닐봉지를 얼추 채우고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숙이고 있었더니 허리와 어깨가 아파서 더는 못 뜯겠고, 할머니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자 곧장 쑥을 데쳤습니다. 소금을 넣고 데치면 선명한 색을 유지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색이 더 고와졌습니다. 쑥을 씻어놓고는 바로 쌀을 씻어서 물에 불렸습니다. 다음날 방앗간에 가서 쑥이랑 함께 갈 생각입니다.

작은 애가 만든 언니. 눈을 왜 빨간색 팥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작은 애가 만든 언니. 눈을 왜 빨간색 팥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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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일요일인 19일 아침 일찍 쌀을 물에서 건져놓고, 좀 더 고급화된 쑥개떡을 만들기 위해 콩과 팥을 삶았습니다. 처음에는 쑥개떡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콩과 팥을 삶다보니 쑥 송편을 만들기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방앗간까지 쌀을 갈러갔습니다. 방앗간 정문에는 주일이라 일을 안 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팻말이 걸려 있는데, 그런데도 문은 열려 있고 주인이 배달이 있는지 헬멧을 쓰고 나가려고 하고 있더군요. 전날 주문한 것만 마치고 교회가려는 모양이었습니다.

5분간 차를 타고 왔고 무거운 통도 들고 있으니까 주인이 그냥 갈아준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 주인장이 주일이면 철저하게 일 안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꽉 막힌 사람이었다면 굉장히 실망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주인장이 융통성 있게 갈아주어서 오늘 안으로 떡 맛을 볼 수 있게 됐지요.

내가 만든 손모양 찍힌 쑥송편.
 내가 만든 손모양 찍힌 쑥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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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송편을 솥에서 찌고있는 과정.
 쑥송편을 솥에서 찌고있는 과정.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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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쑥을 캐면서 옆에서 쑥을 캐던 할머니에게 들었는데 쑥이 들어간 떡은 찬물로 반죽해도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떡은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하는 익반죽이 원칙인데 쑥은 예외라고 해서 찬물로 반죽을 했는데 의외로 반죽이 쉬웠습니다.

반죽이 끝나고 작은 애와 난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우린 둘은 정말 현격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작은 애는 떡 만드는 시간을 굉장히 즐겼습니다. 떡으로 여러 가지를 표현했습니다.

작은 애는 떡으로 우리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머리카락이 좀 없다는 걸 강조해서 표현하고, 언니 얼굴에는 주근깨를 만들어 넣고, 엄마는 촌스러운 단발머리를 표현하고, 자신은 갈매기 눈썹을 중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도 반죽이 남자 시골 친할머니도 만들고 우리 집 강아지도 만들었습니다. 떡 만드는 1시간여 동안 작은 애는 그 순간을 완전히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난 획일적인 송편을 만들어냈습니다. 창의성은 발휘할 엄두도 못 내고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손 모양을 박은 경상도식 송편을 열심히 만들었지요. 물론 단순한 동작이 가져오는 평화도 있지만 작은 애가 그 시간 동안 누린 행복에 비하면 참으로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애와 나는 행복지수가 달랐습니다. 작은 애가 매사 행복한 방향으로 생활한다면 난 의무감이나 기계적인 동작만 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를 한자리에 담았다.  엄마와 아빠, 언니, 작은애 본인, 그리고 제일 위는 강아지 분이의 모습이다.
 우리 가족 모두를 한자리에 담았다. 엄마와 아빠, 언니, 작은애 본인, 그리고 제일 위는 강아지 분이의 모습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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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든 떡은 찜 솥에 넣고 쪘습니다. 만드는 과정에 비해서 익는 건 금방이더군요. 다 익은 떡에 참기름을 발랐습니다. 떡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쑥 향이 살짝 나고 쌀의 쫄깃함과 콩의 고소함이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었습니다. 방에서 공부하던 큰 애에게도 한 접시 갖다 줬더니 맛있다고 잘 먹었습니다.

맛있는 떡을 혼자 먹는 것보다는 이웃과 나눠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접시 담아 이웃집에 갖다 주었더니 이웃집 아줌마는 방앗간에서 만들었냐며 행복해 했습니다. 내가 너무 잘 만들었다는 칭찬으로도 들려서 행복했고, 또 떡을 받은 아줌마의 표정이 행복해 보여서 또 즐거웠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간 떡에 매달려 있었는데 떡 만들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같습니다.


태그:#쑥, #쑥개떡, #쑥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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