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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학교 장애체험
 무지개학교 장애체험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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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 안움직여? 안가잖아."
"니가 브레이크를 잡고 있잖아. 브레이크를 떼야지."
"야. 무서워 죽겠어."
"나는 더 무서워."

오늘(17일)은 딸아이 학교에서 "함께 느껴요"라는 이름으로 장애처험을 하는 날이다. 초등학교 3학년 우진, 건호는 가은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그 뒤에 그림자처럼 바윗돌(선생님)이 뒤따르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매년 딸의 학교는 장애체험을 한다. 전교생이 75명이고 그 중 장애를 가진 친구가 6명이다. 자폐도 있고, 언어장애도 있고, 지적장애도 있다.

학교에서는 "함께 느껴요"라는 행사를 하기 일주일 전부터 장애관련 영화 상영을 하고, 장애관련 책을 읽고, 장애를 극복한 인물에 대해서도 배운다. 또 그림자처럼 장애가 있는 친구를 도와주면서 어땠는지 소감도 발표하고, 마지막 정리하는 의미로 장애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물론 장애우 통합교육을 하는 학교기 때문에 수시로 교육은 하고 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더 집중해서 장애 체험을 하는데 저학년은 협동 미술활동, 고학년은 녹음봉사, 입력 봉사, 장애체험, 생활경험해보기 이렇게 네가지로 나눠서 한다. 그 중 장애체험은 지체 장애, 시각 장애, 발달 장애, 언어 장애로 나눠서 경험을 했는데 나는 그 중 지체 장애를 체험하는 3학년 아이들을 뒤따라 가보기로 했다.

[오전 9시50분] 과천 문원동에서 사당역으로 출발

사당역으로 출발하는 장애체험팀
 사당역으로 출발하는 장애체험팀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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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아이들의 과제는 휠체어에 탄 친구를 데리고 지하철을 이용해 사당역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점심을 먹고 다시 문원동 학교로 오후 1시 30분까지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선생님 한 명이 따라 가지만 아주 급작스런 돌발 상황이 아닌 이상 한 마디도 관여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철저히 그림자 역할만 한다.

"여기 사당 가는 차 맞나? 아닌가? 다시 돌아갈까?"
"바윗돌(선생님). 이거 타는 거 맞아요?"
"……"
"대답도 안 해. 이것 봐. 여기 맞아. 타자."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힘으로 휠체어를 타고 사당까지 가서 책을 산다는 게 너무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자율로 장애 체험 신청을 받았더니 6학년은 고생이 싫어 그런지 신청자가 없었단다. 어쨌든 이 3학년 중, 한 명은 덩치가 좀 컸지만 두 명은 작은 편이어서 3학년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3명 모두 한글은 읽을 줄 안다는 것이었다.

[오전 10시 30분] 사당역 도착

"어디로 나가야 되지?"
"저기 지도 있다. 지도를 보자."
"나 화장실 가고 싶어."
"화장실? 어디 있지?" 

아이들은 길을 모르면서도 절대 사람들에게 묻지 않았다. 자꾸 그림자인 우리들에게 도움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우린 다만 아이들이 움직이는 데로 따라갈 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른이 봐도 잘 모르겠는 지도 앞을 한참동안 뱅뱅 돌기만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 안 하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지만 참고 기다렸다.

[오전 11시] 아이들 스스로 화장실 찾아내
            
30분째 지도 보며 화장실을 찾는 아이들
 30분째 지도 보며 화장실을 찾는 아이들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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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앉은 가은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아이들 스스로 화장실을 찾았다. 아이들은 화장실을 찾은 순간 무척 기뻐했고, 건호와 우진이는 친절하게 화장실 문을 열어서 가은이를 들여보내고 밖에서 기다렸다.  

"이제 서점은 어디로 가야하지? 밖으로 나가야 되나?" 

헉. 서점은 지하에 있는데 아이들은 나가려고 휠체어를 끌고 바깥 계단을 향해 걷는다. 바윗돌과 나는 약간 절망의 눈빛을 주고 받았다. 아이들이 하도 헤매는 바람에 다리가 무척 아팠기 때문이다.

건호가 두 친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계단을 향해 뛰어가 휠체어가 나갈 수 있는지 살피고 돌아와서는 못나간다고 전했다. 아이들도 점점 요령이 생겨 최대한 실패를 덜 하려고 노력하는 듯해 웃음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이때 그림자인 바윗돌이 한 마디 했다.  

"얘들아. 어른들은 언제나 너희를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어." 

그제야 아이들은 도움을 청할 주변 어른들을 찾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물어보지? 어? 저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저씨한테 물어보자."

[오전 11시 10분] 주변의 도움을 요청
[오전 11시 25분] 서점 도착

                          
지하철 직원 아저씨의 도움으로 계단 내려가기
 지하철 직원 아저씨의 도움으로 계단 내려가기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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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이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어른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지하철 직원 아저씨는 친절하게 서점으로 가는 입구쪽까지 데려다 줬다. 아이들은 서점 입구로 내려가는 길의 계단을 보고 순간 당황했지만 지하철 직원 아저씨께서 휠체어가 내려가도록 리프트를 작동시켜 주셨다. 지하철에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니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아이들을 보고 처음엔 약간 당황하시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서점에 도착해 자신들이 살 책을 찾고, 점심식사를 할 장소를 물색했다. 서점 앞에 휴게실처럼 의자들이 있는데 거기서 먹으면 딱 좋겠는데 그곳을 지나 버린다. 다리 아픈 내 입장에서는 무척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점심 먹을 장소를 찾지 못해 30분을 넘게 방황하다 결국 밥을 안 먹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오후 1시 10분] 무지개 학교 도착

낮 12시 10분, 아이들은 올 때의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휠체어 석을 찾으러 왔다갔다 하느라 다섯 대의 전동차를 그냥 보냈다. 이제는 바윗돌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판단했다.

낮 12시 47분, 지하철에서 내릴 때 바퀴가 틈새에 끼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가은이가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장애라는 사실도 잊고 벌떡 일어선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별 탈 없이 학교에 잘 도착했다. 잔뜩 긴장했던 아이들이 학교에 도착하니 털썩 주저앉는다.

아이들에게 장애 체험 행사를 하면서 느낀 점을 말해보라 했더니 의외로 단순했다. 내리막 길을 휠체어로 가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올라올 때는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단다. 또 공원에서 밥을 먹고 오고 싶었는데 못먹고 학교에 와서 먹으니 배가 많이 고팠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단다. 
                                          
시각장애인 체험
 시각장애인 체험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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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 체험을 한 아이들의 경우는 안대를 쓰고 지하철 역에 가는 게 너무 힘들었고,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 올라갈 때 넘어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또 시각장애를 안내한 친구는 자신이 잘 안내하지 못해 눈을 가린 친구가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울었을 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주로 고학년은 녹음 봉사나 입력봉사를 했는데 녹음봉사를 한 딸에게 물으니 녹음하는데 자꾸 대사를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하는 어려움이 있었단다. 나중에는 대사와는 다른 애드립도 나왔다며 웃었다. 

유난스런 장애인의 날 행사는 이제 그만

나는 장애 체험을 따라가면서 초등학교 3학년이 휠체어 장애 체험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고, 오늘 안에 집에 못들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이 기우였음을 체험이 끝났을 때 깨달았다.  

매년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장애 친구들을 가르치시는 물방울 선생님(선생님의 별명)은 장애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애체험을 한 목적은 장애 친구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초점이 있어요. 매년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하는데 9가지 정도 되는 장애를 다 체험하는 것도 어렵고, 그 체험 아이템을 찾는 것도 어려워요. 예를 들어 지적장애를 체험한다고 하면 자기가 스스로 지적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가상으로 할 수 있는 신체장애에 비해 어렵죠. 그래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또 장애체험을 짧게 하다 보니까 고학년 아이들이 재미에 그친다 해서 길게 장애를 경험하자는 것도 있었고요. 그리고 우리학교는 장애 친구들과 일년 동안 같이 생활하니까 항상 잘해주지는 않았더라도 아이들이 많이 알잖아요.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장애 친구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단지 자기와 다를 뿐이지, 차별하지 않아요. "

입력봉사 하는 6학년 친구
 입력봉사 하는 6학년 친구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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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이 1학년 입학생 중에 있는 장애 친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누구한테는 이쁘게 말해야 돼. 왜냐면 마지막 말을 기억하기 때문에 우리가 좋게 "OO 안녕?" 이라고 말해야 돼. 오늘도 말하고, 내일도 말하고, 다음날도 말하고, 계속 말하면 OO도 그렇게 기억하잖아? 지금은 나쁜 말을 배워서 말하는데 그때는 절대 반응하면 안돼. 그러면 더 하니까 자꾸 좋은 말을 해줘야 돼." 

딸아이는 자연스럽게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면 좋은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배우는 것 같았다. 장애가 차별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다르기에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걸 들으면 그 경쟁력이 도대체 무얼까 생각해 본다. 일제고사 잘치면 경쟁력이 생길까? 어려운 수학 문제 잘 풀면, 22000 vocabulary를 떼면 경쟁력이 팍 올라갈까? 잘 모르겠다. 짧은 내 생각에 경쟁력이란 어느 누구와도 함께 살아 갈 수 있고,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애인의 날. 행사만 유난스럽고, 휴지만 잔뜩 바람에 날리는 그런 느낌. 정말 안 만들었으면 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자신이 한 오늘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의 날, #휠체어리프트, #무지개학교, #장애우통합교육, #지체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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