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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거 좀 먹어봐."
"뭔대요?"

"떡이여."
"떡? 근데 왜 냅킨에다 쌌어요?"

"절에서 밥먹을 때 나온겨. 그래서 싸왔어. 먹어봐."
"안해. 안먹을래. 지저분하게 냅킨에 싼걸 어떡해 먹어요?"

"개안혀(괜찮아). 깨끗혀. 먹어봐."
"싫은디. 냅킨이 얼마나 지저분한건데. 이거 다 발암물질 나와. 어무니가 몰라서 그렇지"

"개안다니께. 그럼 중간에 있는 놈으로 먹어. 냅킨에 붙은거 말고"

 냅킨 속에 싸인 떡
 냅킨 속에 싸인 떡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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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무니가 절편을 싸오셨습니다. 밥을 막 먹은 후라 배부른 탓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냅킨에 싸온 떡을 어르신이 주는 겁니다. 헉 소리가 나면서 미간도 구겨졌지만 자꾸 먹으라는데 계속 사양도 못하고 먹었습니다. 구박을 해가면서요. 어무니는 저의 그런 구박도 웃으며 듣습니다.

"요즘은 영감생각 안나요?"
"시간이 지나니까 좀 낫네."

"그려. 근데 그 영감은 바람 안폈어요?"
"왜 안펴. 폈제."

"하긴 옛날 노인네들은 다 바람 폈지? 그래서 바람펴서 낳은 자식도 있나?"
"아녀. 손이 귀한가벼. 자식은 못낳대."

"엄니는 속 안터졌어? 바람피는 남편 꼴을 어떻게 봤디야."
"그럼 어쪄. 속은 터져도 어쪄. 시아부지는 첩이 둘이었어."

"헐. 우리 시아버님도 바람폈는데. 내력인가?"
"내가 산 거는 말로 다 못혀. 에그..."

 바람핀 영감이 보고 싶은 할머니
 바람핀 영감이 보고 싶은 할머니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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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다 못한다는 어무니는 항암 치료중이던 영감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하셨었는데 지난해 막상 돌아가시니 마음을 못 잡으셨습니다.

제가 말을 받아주니 어무니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집니다. 시어머님이 아닌 큰 동서에게 구박받고 시집살이를 시작한 것부터 한숨과 함께 터져 나옵니다. 남편이 결혼전 바람 펴서 아기를 낳다가 잘못 된 이야기를 하실 땐 눈에 불꽃 튑니다. 남편에게가 아니라 그 말을 전해준 큰 동서에 대한 불꽃입니다.

"나한테 남편 옛 애인 애 낳는걸 왜 말하는겨? 어떡해든 흠잡아 욕을 혔어"
"그 큰 동서 지금 잘 살아요?"

"아녀. 딸네집 돌면서 아그들 봐줌수로 용돈 겨우 얻어쓴가벼"
"거봐. 지은 인연은 피할 수 없다니께. 어무니 한테 고로코롬 했으니 벌 받제"

"나가(내가) 가장 맘에 걸리는 것이 큰 동서가 시어머니 밥을 잘 안차려 준 것이 걸려. 늙으면 밥 심으로 사는디"

어무니는 당신이 철이 좀 있었으면 큰 동서가 안해주면 눈치껏 당신이 시어머님 밥을 차렸어야 하는데 못한 것이 지금도 걸리신답니다.

"오늘은 절에서 점심 드시고 온겨?"
"잉. 밥먹고 우면산에 가볼라 했더만 못가겄어. 공사중이여"

"왜 또 새가 되고 자바서 산에 간겨?"
"잉. 나는 죽어서 새가 되고 자버. 맘대로 하늘을 훨훨 나는 새가 되고 자버"

"쳇. 독수리한테 잡혀먹히면 어쩔건데? 맨날 새가 되고 잡대?"
"새는 가고 자븐데 얼마든지 갈 수 있잖여. 나는 새가 되고 자버"

다음 생이 있다면 어무니는 정말 새가 될지도 모릅니다. 새가 되고 싶다는 말을 늘 달고 사십니다. 허공을 나는 새를 보면서 시선이 멀리까지 따라갑니다.

예전에 시어머님과 파를 다듬으면서 시아버지 바람 핀 이야기,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한 친정 오빠와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시어머니 이야기 듣는 재미가 참 쏠쏠했습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한 세대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때로는 같이 아프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배꼽잡고 웃었습니다.

많이 아쉽네요. 어머님의 이야기는 민중들의 아주 밑바닥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그 시대의 어르신들이 다 가시면 지배자의 역사 속에 묻히고 말겠지요. 그립네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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