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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처럼 네모난 포구의 갯바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홉 물때였다. 오후 5시, 평소 같으면 방파제 가슴팍까지 차 있을 바닷물이 빠져 나가자 돔베성창 갯바위는 거무죽죽한 몸체를 드러냈다.

 

 

제주의 갯바위는 보물이다. 미역과 톳은 물론 소라와 전복의 보금자리이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갯바위 주변에는 바다 보물을 캐러 온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다 갈매기도 신이 났는지 갯바위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날씬 몸짓으로 물결을 차고 난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돔베성창,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돔베성창은 자구내 포구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이곳이 자구내라 하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배가 드나들었던 곳으로 돔베성창이라 불렀다. 돔베는 제주어로 도마를 뜻하고, 뱃자리는 직사각형이라 돔베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름을 지었다한다.

 

제주시에서도 1시간 정도 떨어진 돔베성창, 돔베성창의 포인트는 채움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물 빠진 갯바위에 걸터앉아 있으니,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얼굴을 내미는 봄 햇빛이 따사롭다. 갯바위 멀리 까지 밀려나간 바닷물이 은빛이다. 반짝이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다에 이는 물결의 출렁임에 왜 그리도 가슴을 두근거리던지.

 

갯바위에 기대 낚시 줄을 당기는 강태공의 손놀림도 분주했다. 작은 포구에 왜 그리 많은 강태공들이 몰려들까? 아마 그 이유는 돔베성창에 많은 보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돔베성창의 명물은 짭조름한 바다냄새와 더불어 이곳에서 건조하는 한치와 준치다. 1년 내내 차귀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오징어를 건조하는 포구의 풍경은 한적한 어촌 마을을 채워주는 넉넉함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까. 즉석해서 구워 먹는 오징어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 구워낸 1천원짜리 오징어를 씹으며 포구한 바퀴를 돌면 온몸에 짭조름한 바다 냄새에 흠뻑 젖는다. 덧붙여 캔 맥주 한잔을 곁들이니 천년 묵은 때가 고스란히 벗겨지는 후련함을 맛볼 수 있었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빨간 등대는 신호등 같았다. 등대는 바닷길을 인도해 주기도 하지만, 포구 사람들에게 육지의 끝임을 알리는 신호등과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빨간 것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포만감과 설렘을 가져다 준다. 빨갛게 익어가는 과일의 풍성함과 빨갛게 타오르는 일출과 일몰의 순간을 기억하는가? 때문에 돔베성창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빨간 등대는 육지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이다.

 

돔베성창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 있다면 당산봉 해안절벽 아래 느슨하게 떠 있는 10여 척의 작은 어선.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바다 밭을 일구는 돔베성창 사람들에게 포구는 늘 채움의 길목이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횟집과 제주토속 음식점들, 가짜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돔베성창 음식점은 갓 잡아 올린 생선들로 나그네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인들에게 빈곤은 무엇일까?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빈곤할까?  정말 입을 것이 없어서 빈곤할까? 정말 잠잘 곳이 없어서 빈곤할까가? 정말 가난해서 빈곤한가? 현대인들에게 채움의 욕구는 무엇일까?

 

 돔베성창 갯바위를 등지로 돌아오는 자동차 백미러에는 벌겋게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제주공항-서쪽 1136번도로-노형동-하귀-애월-한림-한경- 고산-차귀도로 1시간 정도 걸린다 


태그:#돔베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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