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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정인 여수시 덕충동 귀환정 판자촌 골목.
 철거 예정인 여수시 덕충동 귀환정 판자촌 골목.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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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불거나 장마철이면 물이 허벅지까지 차, 재래식 화장실이 넘쳐 온 마을에 똥이 둥둥 떠 다녔다. 이걸 처리하느라 동네 사람들이 바가지로 퍼내곤 했다."

6~8평 규모의 작은 판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수시 덕충동 61번지 귀환정(충정지구). 103세대가 살고 있는 귀환정 앞에는 오동도가 자리하고 있다.

귀환정은 1935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징용 가는 사람들의 임시 대기소로 거주지를 만든 곳이다. 또 해방 이후 동포들이 귀환해 머물렀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2012여수세계박람회 예정지구라 모든 가구가 곧 철거될 예정이다. 

철거 보상가 600만원,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어제 방문한 귀환정 주민은 세계박람회 철도역 개발지에서 시위 중이었다.
 어제 방문한 귀환정 주민은 세계박람회 철도역 개발지에서 시위 중이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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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우리 주민이 묻힐 곳이다."

나가서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것. 귀환정 주민에겐 각별한 곳이다. 그러나 정들었던 거처를 떠나야 할 위기에 몰렸다.

"평균 보상가 600~700만원이 웬 말이냐? 50~60년 살아온 삶의 터전, 정든 고향에서 무작정 쫓겨날 판이다. 이대로 쫓겨났다간 그대로 노숙자가 될 처지다. 이런 우릴 보고 어디로 가란 말인가."

어제 방문한 귀환정 입구에는 "600만원 웬 말이냐. 시와 토지공사는 주민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토지공사는 이주대책과 생계대책을 보장하라!"는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 앞 공터에는 비장한 표정을 한 노인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 앞에는 자신이 묻힐 구멍까지 파져 있었다. 이 구멍은 "이대로는 물러날 수 없다"는 최후 보루였다. 그만큼 절실하다.

실제로 이곳은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 외부에 마련된 공동 화장실을 사용할 만큼 열악한 환경. 게다가 주민 80%가 영세민이다. 또 주민 대부분이 텃밭에서 기른 야채를 시장에 팔아 푼돈을 벌거나 일용근로자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갈 데도 없는 처지라 살기가 막막하다.

귀환정에도 봄은 영락없이 찾아들었다.
 귀환정에도 봄은 영락없이 찾아들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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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 주민들이 묻힐 곳이라 판 구멍.
 귀환정 주민들이 묻힐 곳이라 판 구멍.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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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을 알리는 표지판. 왠지 꽃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개발을 알리는 표지판. 왠지 꽃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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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 주민 요구 거부... 강제수용 신청 임박

정부 계획인 2012여수세계박람회장 조성사업은 한국토지공사가 시행자로 보상 575억 원ㆍ토목 3337억 원ㆍ건축 6619억 원 등 총사업비 1조531억 원을 투입, 2011년 12월 완료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재 시와 토지공사가 이들에게 제시하는 철거 보상비는 평당 100만원. 가구당 평균 6~8평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보상금은 600~800만 원 정도다. 이것으로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형편.

이전에도 귀환정 철거 계획이 있었다. 주민 이맹순(77)씨는 "1969년에 철거 계획이 있어 특공부대까지 투입됐었다"며 "당시에도 아무 것도 안주고 쫓아내려 해 철거를 반대하던 주민 1명이 죽기까지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세계적 행사인 엑스포는 꿈이요, 희망"이었다. 하여, 엑스포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 이로 인해 주민들은 한 발짝 물러서 ▲정착할 수 있는 택지 ▲주민 소득재창출 방안 ▲이주에 따른 위로금으로 가구당 2천만원 ▲마을 공동시설물 보상 등 4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이와 관련, 여수시 관계자는 "3월 21일 현재 귀환정 101명ㆍ12억5200만원 중, 21명ㆍ2억6900만원의 보상금을 수령했다."며 "토지공사가 다음 주 중에 (나가지 않는 세대에 대한) 강제수용 신청을 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토지공사 관계자는 "어느 지구나 보상 받는 입장에선 다다익선이라 불만은 있는 사항이다"며 "택지는 제공하겠지만 다른 요구는 법 이외 사항이라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토공ㆍ주공 통합에는 반대, 주민에겐 단호한 '토공'

6~8평 남짓한 집안에 세면장만 있을 뿐 화장실은 없었다. 대신 주민들은 밖에 마련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6~8평 남짓한 집안에 세면장만 있을 뿐 화장실은 없었다. 대신 주민들은 밖에 마련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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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 집의 방은 두칸으로 방 안에 싱크대까지 놓여 있었다. 3대가 살 경우, 너무 비좁아 다락을 만들어 그 위에서도 잠을 자야 했단다.
 귀환정 집의 방은 두칸으로 방 안에 싱크대까지 놓여 있었다. 3대가 살 경우, 너무 비좁아 다락을 만들어 그 위에서도 잠을 자야 했단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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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완강했다. "보상비 몇 푼으로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더 서럽다"고 했다. 주민 김종천씨는 "주민들은 사느냐 죽느냐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며 "시와 토공이 제시한 지원 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길거리로 내모는 것이다"고 비난했다.

지승철씨는 "택지를 제공한다지만 토지공사가 소유한 임대아파트로 이주하라는 것"이라며 "그것도 임대자금이 2700만원인데 2천만원은 2년 무이자 후 전액 회수 조건이고, 나머지 7백만원도 철거비로 받은 돈을 다시 넣어야 하는 상황이다"고 분개했다.

이는 토지공사 측에서도 나름 최선의 조건을 제시했겠지만, 대부분 영세민인 귀환정 주민들에게 2천만원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어제 오전 취재 전 토지공사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통합'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면서 통합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통합의 부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평균해야 고작 600~800만원의 보상비를 받아야 하는 귀환정 철거민에 대해서는 법 규정을 들어 매우 단호한 입장이었다. 또한 예민한 물음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을 철거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없는 사람은 외면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준다"는 한 주민의 목매인 말이 아니더라도 개발로 인해 반복되는 소외계층에 대한 국가차원의 대책마련이 절실한 때다.

귀환정 마을 풍경.
 귀환정 마을 풍경.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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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박람회장 배치도. 06번 지구가 귀환정 부근.
 여수박람회장 배치도. 06번 지구가 귀환정 부근.
ⓒ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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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 주민들이 앉아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귀환정 주민들이 앉아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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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철거, #귀환정, #여수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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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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