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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주식인 난이라는 빵은 화덕에서 굽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란의 주식인 난이라는 빵은 화덕에서 굽는 방식으로 만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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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여행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또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까요? 어쩜 이건 삶의 태도와도 관련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 삶의 축소판이라고 했을 때 여행에서 보인 태도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에서 보인 내 태도는 좀 특별했고, 주부로서의 삶이 내 삶임을 입증한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여행기인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자기 자신의 의지를 실험하는 여행을 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 사활을 건 것처럼 보였지요. 1만2천 킬로미터 도보라는 예순 넘은 노인네가 하기에는 다소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도전했습니다.

사회에서 퇴출당하고 부인과 사별한 외로운 늙은이라는 자신의 현주소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매달림으로써 무능력하고 외로운 늙은이가 아닌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그의 여행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살아오면서도 이렇게 늘 자신을  담금질하면서 더 많은 능력을 끌어내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여행 작가 한비야씨의 장점은 사람 사이의 벽을 쉽게 허물고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노인이든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어린애든 금방 쉽게 친구가 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에 집중한 게 그녀의 여행스타일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월드비전이라는 단체에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그녀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요.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어린 소년 3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빵을 만드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어린 소년 3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빵을 만드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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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비해서 내 여행은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난 베르나르처럼 자신의 의지를 실험하지도 않았고, 한비야씨처럼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함께 여행한 어떤 선생님처럼 최고의 사진을 남기려고 사진 찍기에 매달리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구경이라도 했으면 덜 아쉬울 텐데 난 그저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처럼 먹을 걸 찾아다니기 바빴습니다. 여행기를 쓰는데도 사실 먹는 얘기 빼면 쓸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여행 중 보인 식신으로서의 내 모습이 일상의 나란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앞에서 한비야씨든 베르나르든 모두 여행에서의 모습과 일상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행에서 보인 식신으로서의 내 모습이 바로 현실적인 내 모습이어야 아귀가 맞아떨어지므로 난 식신이다가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인데 결국은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내가 하루 중 많이 생각하는 게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할까, 아침은 다들 속이 깔깔 하니까 맑은 장국이 좋겠지, 애들 간식은 간단하게 소보루 빵이랑 우유 줘야 되겠다, 이런 식으로 항상 먹을 걸 걱정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먹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던 거지요. 주부의 직업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직업병이 이란에 가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이미 정해진 메뉴 중 선택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면 이란에서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는 상황에서 찾아내는 게 내 일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날 아침은 내게 특별한 아침이었습니다. 드디어 이란에서 최초로 맛있는 걸 찾아내서 매우 감격했던 것입니다.

난 가게서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사이에 우리 작은 애의 모습도 보인다.
 난 가게서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사이에 우리 작은 애의 모습도 보인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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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레인에서 떠나는 날, 우리가 묵었던 숙소인 압사르 어파트먼트 식당에서 먹은 아침은 내게서 최후의 만찬만큼이나 특별한 식사였습니다. 왜냐면 이 식사를 기점으로 해서 이란을 받아들었으니까요. 즉 맛있는 아침을 먹으면서 비로소 이란에 마음을 붙이게 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거뒀기에 내 여행의 중요한 전환점을 넘긴 아침이었습니다.

그건 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들이 어릴 때 감기 몸살을 오래 앓고 일어나 허기진 몸을 보충하느라고 주는 대로 마구 먹어대는 걸 봤는데 그때처럼 애들은 이날 아침 그 빵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날 숙소에서 뭐 특별히 성대한 음식을 먹은 건 아닙니다. 그냥 보통의 이란식 아침이었지요. 빵과 함께 치즈 버터 잼을 발라서 먹고, 영국산 홍차로 입가심을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날 아침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건 빵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 먹었습니다. 쫄깃쫄깃하고 담백하고 그야말로 영혼에 안식을 주는 빵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먹으라고 해도 그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어서 먹고 또 먹었습니다. 정량보다 한 장 더 받아서 먹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이란을 여행하면서 이 빵을 많이 사먹었습니다. 난이라는 빵인데 이란인의 주식입니다. 난 빵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이날 아침 먹은 난은 좀 도톰한 빵이고 또 종잇장처럼 얇은 것도 있습니다. 얇은 빵은 혼자 먹으면 맛이 별로지만 이건 고기를 싸먹기도 하고 밥을 싸서 먹기도 하고 샐러드와 함께 먹기도 하는 등 쌈용 빵이어서 나름대로 유용한 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난은 가게서 언제든 사먹을 수 있는 빵이 아닙니다. 이 빵을 파는 가게가 따로 있는데 그 가게 또한 항상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빵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때를 놓치면 사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으면 저기가 난을 파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배가 전혀 고프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한 장 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내게서 난은 이란을 여행하면서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또한 내가 찾아낸 이란 최초의 맛있는 먹거리였습니다.


태그:#이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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