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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온천탕 앞에 여자는 안 보이고 남자만 몇 명이 서있어서 혹시 남자가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여자 시간이 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역시 우려했던 대로 남자들을 들여보냈습니다. 여자인 우린 목욕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더라도 아주 오래 기다려야 했고요. 이곳엔 탕이 한 개밖에 없기에 여자와 남자가 교대로 목욕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난감해하고 있을 때 아가씨 세 명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김태희나 송혜교 뺨치게 예쁜 여자 애들입니다. 같은 여자가 나타났으니 뭔가 해결책을 찾겠지, 하는 마음이 생기며 안도했습니다.

 

그녀들은 표 파는 남자랑 수다스런 톤으로 한참 얘기를 나누더니 떠나려고 했습니다. 낌새로 봐서 다른 목욕탕을 찾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을 좇아 슬슬 뒤따라갔습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예쁜 언니들도 우리가 자신들을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어느 집 앞에서 이곳이라는 제스처를 해보였습니다.

 

그들이 가리킨 곳은 파란색 비닐천이 내려진 곳이었습니다. 문이 따로 없고 이 두꺼운 비닐 천이 문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비닐 천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행인이 지나다니는 거리고, 저 쪽은 여자들이 벌거벗은 풍경이 나타나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목욕탕이었습니다.

 

파란 문을 통과하자  더 놀라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목욕탕에 탈의실이 따로 있을 줄 알았습니다. 목욕탕과 탈의실을 엄격하게 구별해놓은 우리나라 목욕탕 문화에 익숙해져있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정관념이었지요. 그런데 나의 이 고정관념을 깨야했습니다.

 

차도르 안에 이런 풍만한 몸을 감추고 있어다니!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선 이란의 동네 목욕탕에는 탈의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목욕탕이 탈의실이고 탈의실이 곧 목욕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탕에 들어가 느긋하게 몸을 불리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눈길을 받으며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정말 난감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일제히 우리에게로 시선이 쏠렸습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줌마들도, 애를 윽박지르고 있던 아줌마도, 발만 탕에 담근 채 얘기를 나누던 아가씨들도 모두 좋은 구경거리 나타났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이런 집요한 시선 속에서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예정에 없는 스트립쇼를 해야 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옷을 하나씩 벗어가는 게 스트립쇼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스트립쇼겠습니까.

 

빨리 갈아입고 탕으로 들어가 몸을 숨겨버리고 싶은데 이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여자끼리인데도 불구하고 수영복을 갖춰 입고 들어가야 했기에 옷 갈아입는 시간이 더 길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물은 정말 좋았습니다. 장마에 쓸려 내려오는 토사처럼 누런 황토 빛인데 좀 뜨거웠지만 몸에는 좋을 것 같았습니다. 거기다 더 좋은 건 온천에 갔을 때 의례 뜨거운 수증기로 나중에는 공기가 답답해져 왔는데 이곳은 천장이 뻥 뚫려있어 오래 있어도 답답한 느낌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노천탕이었지요.

 

 

그런데 내가 이란 목욕탕에 들어와서 놀란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아줌마들의 풍만한 몸매에 정말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허리가 잘록한 외투를 걸치고 있고 조막만한 얼굴을 갖고 있기에 아줌마들도 날씬한 줄 알았습니다. 차도르로 가렸기에 몸매의 실상을 알 수가 없었던 게지요. 그 차도르 안에 이렇게 풍만한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안했습니다. 그래서 목욕탕에 들어와 뚱뚱한 아줌마들을 보고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차도르를 벗은 아줌마들은 정말 하나같이 고도비만 상태였습니다.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쩜 하나같이 그렇게 뚱뚱한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 마을 여자들만 그렇게 다 뚱뚱한 것인지 아니면 이란 여자들 다 그렇게 뚱뚱한 것인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란 여자들이 왜 다 뚱뚱할까에 대해서 연구까지 했습니다. 우선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차도르 안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까, 즉 절대로 자기 몸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가 한 가지고, 다른 하나는 이란은 빵과 고기를 주로 먹는데 이 음식도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당도가 높은 군것질거리도 이유일 듯 했습니다. 또 하나는 음식을 만드는 노동에서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이란인들은 난이라는 빵을 주로 먹습니다. 그런데 이 빵이 집에서 만드는 게 아니고 가게서 사먹는 빵입니다. 그러니까 수고롭게 음식을 만들 필요도 없으니 노동량은 많이 줄어들겠지요. 이런 저런 이유를 수도 없이 댈 수 있을 정도로 이란 여자들이 살찔 조건은 충분했습니다. 이 아줌마들을 보니까 정말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날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뚱뚱한 것 말고 이란 아줌마들은 또 한 번 나의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온천탕 중앙에 보면 우리나라처럼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게 해서 허리에 맺힌 응어리를 풀게 하는 그런 시설이 있는데 나도 거기 서서 그 시설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허리가 시원해지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컹한 촉감이 느껴졌습니다. 아줌마 두 명이 나를 밀어낸 것입니다. 넌 많이 했으니까 이제 그만하라는 뜻인 것 같았지요. 말이 안 되니까 몸짓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얼굴은 짙은 눈썹과 아이라인에 문신을 해서인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뚱뚱한 그녀들은 분명 내가 거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봤던 그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동네 목욕탕은 이란 여행의 베스트

 

이란에 와서 느낀 게 여자들이 참 종교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도르를 걸친 그녀들은 모두 엄격해 보이고 세석적인 욕망을 벗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수녀님 같은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이 나라 여자들을 수녀님으로 착각했는데 혼자의 망상이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본 아줌마들은 수녀가 아니라 세속적인 느낌의 뚱뚱한 아줌마일 뿐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본 그 여인들의 모습을 절대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그들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차도르 하나로 이런 차이가 났던 것입니다. 난 차도르라는 환상을 통해 그녀들을 봤던 것이지요.

 

솔직히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목욕탕에서 본 세속적인 느낌의 아줌마가 진짜 얼굴인지 아니면 차도르를 걸쳤을 때 보이는 종교적인 엄숙함이 그녀들의 진짜 얼굴인지, 아니면 둘 다 지니고 있는지. 아마도 답은 둘 다가 맞겠지요. 이란 여인들은 이런 양면성을 다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 목욕탕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이란으로 여행 온다면 꼭 샤레인의 동네 온천탕을 찾으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설 좋은 곳 말고 동네 목욕탕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난 이란 여행에서 이곳을 베스트로 꼽습니다.


태그:#이란, #차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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