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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로 오르는 길
 현암사로 오르는 길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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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대전은 내륙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시다. 문득 멀리 떨어진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탁트임과 망망함에 마음을 담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가까운 대청호를 찾아간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원군·옥천군·보은군에 걸쳐 있는 대청호는 1980년에 생긴 인공호수다. 대청호를 더 잘 조망하려면 호수 근처, 우뚝 솟은 산기슭으로 올라야 한다.

산 위에서 굽어보는 대청호는 남해안의 지형을 닮았다. 땅과 땅, 그 사이로 물길이 드나들면서 빚어내는 유려한 곡선과 시리도록 맑은 물빛은 마치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방불케 하는 풍취가 있다.

푸른 산빛·물빛에 흠뻑 마음을 적시다가 해거름녘엔 계룡산 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저녁놀에 취하다 돌아오는 것이다. 

대청호반 옆 구룡산(373m) 자락은 내게 그런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곳이다. 그곳엔 또 전혀 번거롭지 않으면서 소박한 절 현암사가 있다. 절 마당가에 서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먼발치에서 호수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바닥을 드러낸 내 정신의 자양분을  얻어오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말하자면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라 할까.

1월말, 오랜만에 구룡산 현암사를 찾았다. 대청호 수문을 지나 충북 문의로 가는 길목, 절 아래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높은 철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매우 가파른 길이다. 연방 저 아래 바라다 보이는 대청호에 눈길을 주면서 산을 오른다. 경내에 들어서면, 눈앞에 2층 건물의 요사를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다.

견불사, 혹은 현사로 불렸던 현암사

현암사 전경. 현암사 전각들은 한 컷에 담기엔 부담스러운 구조로 되어 있다.  좌로부터 삼성각 ·대웅보전·용화전·범종각 및 요사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암사 전경. 현암사 전각들은 한 컷에 담기엔 부담스러운 구조로 되어 있다. 좌로부터 삼성각 ·대웅보전·용화전·범종각 및 요사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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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끝에 매달려 있는 절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현암사는 좌정한 채 대청호를 지그시 굽어보고 있다. 평상심이란 바로 저런 것을 두고 이름일 터. 이 절을 창건한 이는 누구인지, 어느 때 창건했는지는 아무 기록이 없다. 백제 전지왕 때 달솔해충이 발원하고 고구려의 스님인 청원선경 대사가 창건했으며 나중에 원효대사가 중창했다는 이야기가 절에 전해 오긴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의 지리서에는 견불사(見佛寺) 혹은 현사(懸寺)로 기록돼 있다. 초기의 기록에선 견불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후기로 들어서면서 현사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현암사가 되었을 것이다.

현암사의 전각들은 가로로 길게 일직선상에 배치돼 있다. 좌로부터 삼성각 ·대웅보전·용화전·범종각 및 요사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크기의 대웅전은 팔작지붕으로 다포식 건물이다. 1928년 중창 때 지은 법당을 해체한 그 자리에 1988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불전 내부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불단 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석가모니불, 왼쪽엔 아미타불 등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작은 전각은 용화전이다. 1993년에 지은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의 아담한 건물이다. 용화전 안에는 백제 때 선종대사라는 분이 자연 돌출석에 조각했다고 전해지는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용화전에 모신 석불좌상
 용화전에 모신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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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제시대에 조성했다는 얘기를 액면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불상의 손을 약식으로 대충 처리한 불상의 조각 양식으로 보면 고려 말의 작품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신이 다니는 절집이 오래됐음을 내세우고 싶은 민중의 소박한 애정이 낳은 과장인지도 모른다. 

석불좌상은 선정인을 한 채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데 머리 모양은 나발이다. 나발 위의 육계가 큼직하다.

얼굴은 둥글고 넓은 편이며 상호는 원만해서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다. 감은 듯 뜬 두 눈은 사색에 잠긴 듯 하며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렇듯 바라보는 이에게 친근감을 주는 형태로 보아 오래전부터 이 지역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암사부도
 현암사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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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옆으로 숲길이 나있다. 이 길은 어디로 통하는 길일까. 호기심을 안고 조금 걸어가자 작고 앙증맞은 석종형 부도 1기가 나타난다. 어느 때,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알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는 무명의 부도이다. 양식으로 보면 조선후기의 부도가 아닐까 싶다.

부도는 8각의 지대석 위에 2단의 하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탑신을 올린 형태다. 연꽃무늬를 조각한 괴임돌이 몸돌을 받치고 있는데 정작 석종형 몸돌엔 아무런 문양도 없다. 팔각지붕 모양을 한 옥개석은 기왓골을 새겼으며 상륜부는 연꽃봉우리 형태로 장엄했다. 

용화전 왼쪽엔 범종각 겸 요사로 쓰이는 2층 건물이 가로로 길게 자리 잡고 있다. 1층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로 요사채로 쓰인다. 그 위에 다시 목조건물을 얹었는데 이 건물이 바로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을 일반 전각의 형태이다. 범종각 현판은 근래의 고승인 경봉스님(1892~1982)의 글씨다. 안에는 근래에 조성된 범종이 있다.

구릉에 조성한 5층석탑
 구릉에 조성한 5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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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옆으로는 오솔길이 나 있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진 것일까. 길을 따라가면 느닷없이 평평한 구릉이 나오고 거기 오층석탑이 홀로 우뚝 서 있다. 이 석탑 역시 근래에 조성한 것이다.

석탑은 방형의 이중기단 위에다 5층의 몸돌을 올렸다. 상층기단엔 4면엔 한 면에 3구씩 모두 12구의 신장상을 새겼다. 사천왕과 천(天) ·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 등  법회 자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팔부중상을 돋을새김한 것이다. 이들은 본래 인도의 전통신이었을 때는 사악한 신들이었으나 부처님께 귀의한 뒤로는 개과천선한 무리다.

몸돌 1층 사면에는 사방불을 새겨 넣었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보살들이 협시하고 있는 형태로 네 면에 새긴 것이다.

비로자나불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것

대웅전 앞에서의 바라보는 대청호
 대웅전 앞에서의 바라보는 대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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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에서 신탄진으로 흘러가는 물줄기
 대청호에서 신탄진으로 흘러가는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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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 돌아보고나서 다시 대웅전 앞으로 돌아온다. 대웅전 마당가에는 가로로 길게 시누대숲이 펼쳐져 있다. 빼곡히 들어선 시누대들이 대웅전 안에 계신 삼존불에게 경배하는 듯한 형상이다. 혹은 사부대중이 설법을 들으려고 서 있는 듯하기도 하고. 오늘 비로자나불께서는 시누대 대중에게 무슨 설법을 풀어놓고 계실까.

대웅전 마당가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아득하고 눈 아래로 가만히 굽어보는 풍경은 아찔하다.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 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이라는 유명한 공안이 있다. 무문혜개 스님이 쓴 <무문관>이나 벽암록·경등전등록 등에도 나오는 화두다. 백척간두에서도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라. 그래야만 시방세계에 네 몸을 나툴 수 있느니라.

비록 백척 장대 끝에 앉은 사람이 도(道)를 깨달았다할지라도 결코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그 자리가 결코 궁극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기서 한사코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구도자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저 대웅전 안 비로자나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저 천길 아래 허공인가. 그 옛날 현암사를 세운 이는 어쩌면 아득한 벼랑 끝에 절을 지음으로써 이 절집을 찾아오는 대중에게 무언의 설법을 베풀고 싶었는지 모른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 했다. '모든 중생에겐 다 불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누대에게도 불성이 있을 터이니, 어찌 현암사가 자리 잡은 이곳, 백척간두의 난간에서 한 소식을 얻지 못하랴. 시누대들이 일제히 몸을 좌우로 뒤척인다. 사르락 사르락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이 소리는 혹시 바람의 작용이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시누대가 얻은 각성의 소리가 아닐까. 시누대 소리가 나그네의 가슴에 미묘한 향기가 되어 불어온다.

그래, 내가 절집을 찾는 건 바로 이 맛이야.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너는 왜, 무엇하러 절집에 가는가? 절집에 있는 문화재를 들여다보면서 현학적 취미를 만족시키려고? 아니면 현세기복을 간구하는 기도라도 올리려고? 고백하건대, 나는 어떤 종교의 제자도 아니다. 물론 불교신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도드리고자 절집을 찾아가는 것은 더욱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세속에서 오염될 대로 오염된 내 정신을 씻어주는 건 대웅전에 앉아계신 근엄한 부처님이 아니다. 승방이나 요사의 토방에 놓인 잘 닦인 고무신 따위가 내 정신에 묻은 티끌 한 자락을 불현듯 씻어준다. 절집에서 나는 풍경소리·범종 소리·염불 소리…. 그 작고 은은한 소리가 내 죽은 정신의 한 끝을 일깨우는 것이다.


태그:#구룡산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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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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