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전 제 블로그를 지나가다 들르신 한 분이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 어릴 적이 떠올랐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에 한두 개쯤은 상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상처가 커서 자신의 인생 밑거름이 될 테지요.

 

제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조건의 문제로 돌리다가 제 안으로 돌이키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안 되었습니다. 너무나 뜻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했기에 갈등이 있을거라 생각 못했는데 갈등이 생겼고, 친정엄마로부터 벗어나면 모든 게 행복할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찍 결혼했습니다. 친구들이 사회단체에서 활동할 때, 연애를 시작할 때, 직장생활을 재밌게 할 때 결혼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 결혼했습니다. 그 새로운 삶이란 친정엄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제 친정엄마가 나쁜 사람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경우 바르고, 매사에 정확하고,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싫었습니다. 늘 엄마는 제게 남보다 잘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집 애는 어떻다더라...

 

그 집 애는 이번에 일등했다더라. 그 집 애는 부모를 그렇게 도와준다더라, 그 집 애는 착하더라, 그 집 애는…, 그 집 애는….

 

그놈에 '그 집 애'는 왜 그리도 못하는 게 없는지 어릴 적 그 집 애는 저의 적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엄친 딸과 엄친 아들이 그 집 애겠지요.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제가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엄마는 제게 그러셨습니다.                                

 

잘했네. 이번엔 오빠처럼, 니 동생처럼 우등상을 받아봐라.      

 

저는 엄마의 그 말이 어른이 된 후로도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냥 잘했네, 우리 딸 정말 글 잘썼네',  이 소리만 듣고 싶었습니다. 1, 2등 하는 오빠처럼, 동생처럼 우등상 받으라는 엄마의 뒷말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분명 칭찬과 더불어 저를 자극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주문했지만 저는 엄마의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고, 왜 우등상을 받아오지 글짓기 상을 받았냐? 라고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 집애보다 공부 잘하잖아. 그런데 또 뭘로 비교할라고?

그 집 딸은 너처럼 말대답 안한다. 너처럼 말대답 잘하는 가시네가 어딨노? 

 

고등학생쯤 되서 제 머리가 컸을 때, 전 엄마에게 한번도 안지고 말대답을 했습니다. 왜 나를 그 애와 비교하느냐고, 그렇게 그 집 딸이 좋으면 그 애를 딸로 삼으면 될 것 아니냐고,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공부로, 공부를 나보다 못하는 아이에게는 착한 것으로 저를 비교했습니다. 뭐든 너보다 낫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곯아빠졌음을요… 제 곯음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건 마음공부하는 곳에 가서였습니다. 제 무의식에 엄마와의 갈등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미워하는 제 밑마음이 어른이 된 저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었던 거지요.   

 

 

나는 나야! 왜 만날 그 집 애랑 비교해?

 

엄마는 늘 그랬어. 왜 나를 누구와 비교해? 나는 나야.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곱씹으면 그 지나간 일이 좋아져? 왜 만날 그때 일을 들먹여? 나라고 언니한테 빌려준 돈 못 받는 게 안 아까운줄 알아? 엄마는 그래도 자식한테 못 받는 거잖아. 형제보다 나은 거 아냐? 자식한테 준 게 그렇게 아까워?                    

 

잘 살던 친정 큰언니가 IMF 때 망했습니다. 망하기 전에 친정 부모님 돈, 제 돈을 많이 갖다 썼습니다. 부도를 막아보려고 하다하다 결국 망했습니다. 엄마는 언니에게 빌려주고 못받은 돈 때문에 병이 났고, 몇년간 그 일을 두고두고 곱씹으셨습니다. 엄마를 이해못하는 건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고생고생 해서 번 돈이었기에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저도 그때 만져 보지도 못하고, 써보지도 못한 몇 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렸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돈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엄마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곱씹는다고 지나간 과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의 이 말에 엄마는 쓰러지셨습니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도 되는데 그때는 제가 엄마에게 상처받고 컸다는 생각에 할 말을 다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엄마와 화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상처를 준 저도 괴로웠고, 딸한테 모진 소리를 들은 엄마도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곱씹기는 하지만 그 전만큼은 아닙니다. 또 저도 가능하면 엄마가 곱씹어도 '오죽 힘들면 저러겠나', 싶어 그냥 들어줍니다. 또 제가 아이들을 키워보니 엄마가 힘들었겠다는 이해심이 생깁니다.   

 

어쨌든 저는 어릴적 상처 때문인지 몇 년 전까지도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무척 노력했었습니다. 돈을 꽤 벌었을 때 엄마에게 수시로 용돈을 드렸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비교도 안되게 더 드렸습니다. 지금은 엄마가 다른 누구와 저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비교 당했던 집 자식들보다 훨씬 부모 신경 안쓰이게 산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저는 엄마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최고로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제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허전함이 오는가.

 

처음엔 이 허전함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잘 몰랐습니다. 허전함에 대해 제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몇년 째 물었을 때 이 허전함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해 괴롭구나...

 

엄마가  나를 인정하지 않아서 괴롭고 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구나. 늘 너는 이 정도는 해야 돼. 너는 남보다 이것도 잘해야 돼. 너는 누구보다, 너는…, 너는….

 

어릴적부터 늘 들었던 엄친 딸과 엄친 아들로부터 제 스스로가 자유롭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엄친딸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 엄친 딸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법륜스님께서 이런 예를 드신 게 생각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깡패에게 끌려가 강제로 마약주사를 맞아 마약에 중독되었다가 경찰에 구조되서 마약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마약을 찾는다면 누구 문제인가?  맨 처음 강제로 마약에 중독된 건 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강제로 마약주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그 소굴에서 벗어났는데도 마약을 찾고, 여전히 마약에 중독되어 있다면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문제다.

 

아. 그렇구나. 내가 엄마로부터 비교당하는 것으로 상처를 입은 건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 누가 나를 비교하는 사람도 없는데 끊임없이 나를 비교해서 괴롭히는 건 엄마의 문제도 아니고, 자식의 문제도 아니고, 내 문제구나….

 

문제의 원인을 확실히 알면 해답이 보입니다. 그래서 연습합니다.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연습. 좀 못해도, 실수해도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해주는 연습. 그러나 자꾸 넘어집니다. 오래도록 쌓여진 제 생각의 버릇으로 넘어지긴 하지만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엄친 딸과 엄친 아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째딸 해주가 자기 자신에 대해 믿지 못하고, 누구보다 잘하지 못한다고 자책하면 이렇게 말해줍니다.

 

왜 그 애랑 비교해? 너는 그 애보다 달리기도 잘하고, 마음 씀씀이도 이쁘고, 버스도 혼자 타고 학교 다니잖아. 너처럼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는 없을걸? 그리고 니 용돈에서 매달 북한동포 돕기하는 애도 없잖아. 넌 정말 괜찮은 아이야.

 

그런가? 하긴 내가 다른 여자애들보다 달리기도 잘하고, 버스도 혼자 잘 타지.

 

거봐. 잘하는 게 많잖아. 왜 다른 사람이랑 널 비교해? 넌 그 자체로 소중한 아이야.

 

히히 알았어. 내가 까먹었어~

 

딸은 제 말에 금새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소중히 여길 줄 모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신 '지나가는 님' 덕분에 한번 더 제 문제를 돌아봅니다. 요즘 제가 또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거든요.  '그냥 합니다'라는 명심문을 잠시 놓쳤습니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도 없고 그냥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엄친아 , #연예계, #법륜스님, #우등상, #블러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