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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문명 역주행'은 후불제 민주공화국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선거를 통해서든 직접 행동에 의해서든 국민은 정치권력의 '문명 역주행'과 헌법 파괴 행위를 언젠가 반드시 끝낼 것이다. 그런데 짧은 기간 안에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게 된다."

 

그 위험성이 유시민이 최근 펴낸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로 다시 입증됐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박재영 전 판사의 야간집회 금지 위헌제청을 사법부 독립성이 그나마 살아 있는 증거로 꼽았다.

 

허나 이 증거는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의 책이 미처 '도매상'을 거치기도 전에,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외압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훼손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 속도가 빠르다. "내가 쓰는 이 글도 이미 오류로 판명되었지만, 그런 줄 모르고 쓴 것이 있을 줄 모른다"고 유시민 스스로 붙인 단서가 예사롭지 않게 보일 정도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현 정부의 '문명 역주행'은 2013년 2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때까지 뭘 하느냐? 유시민이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해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침팬지 헌법 "모든 권력은 '짱'에게서 나온다"

 

우선 유시민은 '인간 스스로 돌아보자'고 권한다. 고도의 문명을 만든 지성적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모든 생명체의 삶을 지배하는 진화의 법칙을 초월하지 못한 것이 또 인간이다.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별것 아니란 것이다. 침팬지만 봐도 그렇다. 유전학적으로 98.8%가 인간이며, 생물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침팬지는 인간과 가깝다고 강조한다. 물론 수준은 다르다.

 

"침팬지 무리가 성문헌법을 도입한다면, 제1조는 이렇게 시작되는 게 합당하다. 우리나라의 주권은 '짱'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짱'에게서 나온다. 힘이 제일 센 수컷이 '짱'을 먹는다. 이 나라는 완벽한 파시즘 국가다. 제2조 영토 조항은 아마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영토는 강 옆 바나나 숲에서 뒤쪽 봉우리까지이며 허락 없이 여기 들어와 과일을 따먹는 놈은 모두 죽인다."

 

'명박도'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작금 현실과 대한민국 헌법의 엄청난 괴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유시민은 침팬지와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로 '법치주의'를 꼽는다. 다만 문명의 진화가 만들어낸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존재'는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그 자체는 당위를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이 불과 수십만 년 전이다. 역사 기록 이후 지금까지 "인간 그 자체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내 안에도 침팬지가 살고 있으며, 이 침팬지를 제압하고 길들이지 못하면 문명이 야만으로 복귀하는 것"은 순간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역사는 아직 짧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은 아직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란 것이 유시민의 주장이다.

 

 

유시민의 '양복 입은 침팬지' 구별법

 

그만큼 아직 우리 사회는 '양복 입은 침팬지'의 준동에 취약하다. 유시민은 '양복 입은 침팬지'를 유신헌법을 통해 구체화한다. 유신헌법은 "조잡한 습작이 아니며 그 세련된 터치는 전문가의 솜씨"라며 "두뇌는 명석하나 심성은 혼탁한, 명문대학 출신의 법률전문가들이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지식은 있으나 지성과 양식은 없고, 두뇌는 명석하나 심성은 혼탁한" 이들이 '양복 입은 침팬지'란 것이다.

 

'양복 입은 사람'과 구분하는 방법은 유시민에게는 간단해 보인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 자체보다 자기의 견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사상이 다른 사람이 권력의 박해를 받는 것을 보면서도 방관하는 사람, 정치권력의 이러한 야만적 행태를 부추기고 옹호하기까지 하는 사람, 나아가 "헌법의 규정과 정신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데 기여하면 애국이 되고 그 반대면 해국"이다.

 

"유신 시대와 제5공화국을 주름잡았던 '양복 입은 침팬지'들은 대부분 퇴장했다. 하지만 그 후예들은 옛날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패션을 국민에게 선보였다. 그들은 헌법과 법률의 이름으로 민주공화국을 모욕하며, 국민이 낸 돈과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국민의 주권을 박탈하는 데 가담한다. 이 '양복 입은 침팬지'들이 사라져야 대한민국은 비로소 온전한 민주공화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은 한 번 더 강조한다. "'양복 입은 침팬지'의 충성스러운 후예들이, 지금 내로라하는 권력기관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라"고 한다. 결국 '양복 입은 침팬지'들의 역할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 자신의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이며, 다수 국민의 욕망을 '침팬지' 수준으로 퇴화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써놓고 나니 확실히 불편하다.

 

 

양복 입은 침팬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나의 주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나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학습하고,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은 부당한 권력이 나의 주권을 침해할 때 분연히 일어나 연대하고 투쟁할 줄 아는 개인. 그러한 개인이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다. 대한민국에는 이런 주권자가 많다. 그러나 온전한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는 데 충분할 만큼 많다고는 할 수 없다. 말하고 보니 확실히 불편하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보는 진실이다."

 

그래서 유시민은 "양복 입은 침팬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깨우고, 깨어 있는 다른 사람과 손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 한 손에 들어야 할 '무기'는 무엇인가. 유시민에게는 역시 '헌법'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꿈과 비전은 대한민국 헌법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헌법 해설 몇 가지만 보자.

 

모든 국민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다. 경찰이나 검찰은 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없이는 국민을 잡아갈 수 없다. 헌법 제12조다. 촛불 집회 강제 연행에 맞서는 방법이 나온다. 국민은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제14조)는 대목에서는 '용산 참사'가, 국민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책으로 낼 자유가 있다(제21조)를 통해 '미네르바'와 '사이버모욕죄'가 떠오른다.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나아가 유시민은 대통령 취임 선서 첫 구절 역시 "헌법을 준수한다"임을 상기시킨다. 대통령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존재임을, 5년 계약직 최고위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자고 강조한다. 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당위'를 '존재'로 전환하는 주체는, '후불'의 당사자는 바로 시민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왕국의 신민에게는 자애로운 '국부'와 '국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국의 주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견해는 우리의 문화유전자 안에 남은 침팬지의 그림자일 뿐이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점

 

신영철 대법관 ★★★★★

최근 사회 변화가 역사퇴행이라 생각하는 사람 ★★★☆

그래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 ★★★

구체적인 대안까지 찾고 싶은 사람 ★★☆

헌법 주요 조문이 잘 암기되지 않는 수험생 ★★★★

'좌파 정권' 꼬투리를 잡고 싶은 사람 ★★☆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서고 사회와 역사가 올바른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

 

"MB는 위선적 대통령" "유인촌 장관, 아무렇게나 장관질"

유시민 성깔 '지대로' … 조중동은 악플 언론

 

이번에 돌베개에서 나온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크게 1부 '헌법의 당위'와 2부 '권력의 실재'로 나뉜다. 1부를 통해 헌법은 당위일 뿐이고 개개인의 주권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한다면, 2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권력의 실재와 헌법의 당위 사이의 거리를 논하고 있다. 덕분에 유시민의 '성깔'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역시 2부다.

 

1부를 통해 현 정권을 '양복 입은 침팬지'로 빗대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면, 2부에서는 작심한 듯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이명박 대통령을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하는 정치인"이자 "각종 헌법기관까지 사유화하여 언론장악과 정치보복의 첨병으로 동원하는 위선적 대통령"이라 규정한다. 정말 대책이 없다는 대목에서는 이런 글도 나온다.

 

"진짜 심각한 사태는 대통령이 지성이 부족해 보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 참모의 보고를 제대로 듣지 않거나,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과는 다른 의견을 낸다고 참모한테 역정을 내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런 때는 대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유시민의 '성깔'은 곧 이명박 대통령 주변으로 확대된다. 욕설 파문 등을 예로 들며 유인촌 장관을 "근자에 본 장관 가운데 제일 아무렇게나 '장관질'을 하는 사람"이라 하는가 하면, YS 시절 재야인사 영입과 후보 공천 과정에서 "수억 원 돈 가방과 지구당 사무실, 승용차와 비서까지 패키지로 장만해줬다 한다"면서 "그런 케이스"로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경기 지사, 심재철 의원 등을 지목한다.

 

조중동도 예외는 아니다. "매일 천만부 가까운 부수를 찍는 거대 보수신문들이 한목소리로 똑같은 '악플'을 5년 내내 달아대면 어느 대통령, 어떤 정부도 견디기 어렵다"며 과거 권력의 나팔수였던 언론이 '알바 언론'이었다면, 노무현 정부 시절 조중동은 '악플 언론'이라 칭한다. 지금은 '선플'로 표변했다는 비틀기도 빠지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화 몇 가지도 눈길을 끈다. 애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심은 '정동영 =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 = 통일부 장관'이었다며, "소위 노인 폄하 발언 때문에 크게 상처 입은 점을 세심하게 배려했는데, 정동영 장관이 이 제안을 거부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회고하고 있다. 임기 말 노 전 대통령이 유 전 장관에게 "결과적으로 계몽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저질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를 유시민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허나 "참여정부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는 진보세력의 비판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며 "노무현과 이명박은 똑같은 보수 정치인이고 똑같은 신자유주의자"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참여정부를 가운데 두고 보수, 진보 양쪽이 동시에 전개한 '담론 전쟁'의 결과를 보면, 진보세력은 사실상 빈손이었고 값진 전리품은 거의 모두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이 챙겨갔다"는 것이 유시민의 결론이다. 끝으로 유시민은 "정당개혁운동가로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정말 비참한 실패를 겪었다. 이 실패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낀 모든 분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싶다"고 덧붙이고 있다.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돌베개(2009)


태그:#유시민, #민주주의, #헌법, #침팬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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