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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초 전교어린이회 임원 선거에 손자보를 든 운동원들
▲ 손자보를 든 운동원 부곡초 전교어린이회 임원 선거에 손자보를 든 운동원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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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 만날 하라는 정치는 안하고 싸움박질만 하는  국회의원들 차라리 잠실체육관에다 링 하나씩 배정해주는 게 어떨까? 필요할 때는 언제나 타이틀 매치를 할 수 있어 좋잖아."

"그러게 말이야. 가뜩이나 살기 어렵다고 야단인데, 하는 짓이라곤 너무 저급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민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국회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지. 건물을 깡그리 팔면 아마 집 없는 서민 몇 십만 명한테 혜택을 줄 수 있을 거야."

오랜만에 자리했던 문우, 김형과 최형의 혈압 돋우는 소리다. 요즘 뉴스를 듣다보면 괜히 화딱지가 난다. 거대 여당이든 소수 야당이든 국민의 열망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모르쇠로 식물국회가 따로 없다. 굴뚝 청소하러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듯이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도 그와 마찬가지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게 나무라는 형국이다.

우리의 정치, 여당 야당 모두 오십보 백보

그러나 진흙개펄에서도 맑은 향기를 지닌 연꽃이 피어나듯이 아이들을 만나면 봄쑥 돋아나듯이 새로운 희망에 겨워진다. 3월 모든 학교가 새학년 새학기를 맞았다. 겨우내 움츠렸던 학교가 아이들의 환한 웃음으로 생기를 되찾는 때다. 그런 만큼 새마음 새뜻을 챙기기에도 바쁘다. 새롭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즐겁다.


새학기에 아이들이 관심 갖는 것 중의 하나가 학반 전교임원 선거다. 간혹 임원선거와 관련하여 깨끗지 못한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올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학교선거 문화는 건강하다. 그래서 어린이자치회 임원 선거는 입후보자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치열하다. 그 이유는 어린 아이들이 학교 일에 대해서 의사결정과정에 참가할 수 있는 첫 단초가 어린이회이기 때문이다.

경남 창녕의 부곡초등학교(교장 성낙진)는 전교생이래야 150여명의 단촐한 학교다. 때문에 아이들은 누구네 집 대문이 어떤 색깔이며 어떤 농사를 짓는지, 그냥 시시콜콜한 것까지 곶감 꿰듯이 훤히 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학년 반 친구들의 성격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막힘없이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손자보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지지자
▲ 한 선거 지지자의 손자보 손자보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지지자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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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부곡초등학교는 매학기 학급임원은 물론, 전교어린이회 임원선출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자치적으로 뽑는다. 어린이들이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제반 선거 과정을  직접 꾸리고 있다(물론 생활담당 교사가 일정내용을 돕고 있다). 고대 아테네 도시국가의 폴리스 민주정치가 그러했듯이 어쩌면 전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민주정치를 하기에는 거대한 학교보다는 소규모 농어촌 학교가 바람직하다.

소규모 농촌학교지만 매학기 자치적으로 어린이회 임원선출해

먼저, 어린이회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4,5,6학년별로 선거관리위원을 4명씩 선출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5일 선관위는 전교어린이회 임원선출계획을 공고(학교 홈페이지와 교내 게시판)하고, 다음날 입후보자 등록을 받는다.

학급임원의 경우는 해당학반에서 선출하고, 전교어린이회 임원선출의 경우는 선관위에서 입후보 등록을 받은 다음 입후보 공고를 한 뒤 선거인을 대상으로후보자 연설회를 갖고 곧바로 선거를 실시한다(이때 전교어린이회 회장 부회장 후보자의 경우 각 4인의 지지자 도우미를 둘 수 있으며, 제반 선거운동은 선관위가 준하는 범위내에서만 할 수 있다). 선거방식은 선거권을 가진 4,5,6,학년 전체 학생(선거인 수 85명)이 참가하는 직접선거다.

전교어린이회 회장 후보로 등록한 어린이는 6학년 정현수, 김  본, 김회정, 6학년 전교 부회장 후보로는 장지희, 진소형, 김도형 어린이가, 5학년 전교 부회장 후보로는 류재진, 구동현, 최상록, 김도희 어린이가 각각 입후보했다.

어린이회 선거인들이 후보 연설을 듣고 있다
▲ 선거인 들 모습 어린이회 선거인들이 후보 연설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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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추첨을 마치자 곧바로 선거운동에 들어 간다. 각 후보별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단 하루. 5일 오후에 선거가 공고되었으니 6일 오전 12시까지. 당일 선거 운동원을 자청한 각 도우미 손에 손자보가 바쁘다. 아침 등교시간과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단 한표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일반 기성인들의 선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후보자가 다르고, 지지하는 후보자가 다를지언정 상호 비방을 하지 않는다. 따뜻한 경쟁인 셈이다.

"○○○ 회장 후보에게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부탁드립니다.
공약 사항을 잊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탁월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우리 학교의 확실한 일꾼,
□□□ 회장 후보를 전교어린이회 회장으로 뽑아주시십시오.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손발이 되겠습니다."

지지운동에 나선 도우미들이 열성적이다. 많지도 않은 선거인들, 하지만 쉬는 시간 짬짬이 만나러 다니는 발품이 여간 재빠르지 않다. 자못 시샘이란 것은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이 누가 회장이되더라도 괜찮다는 듯. 상대편 선거 운동원들과도 호의적으로 대한다. 아이들은 선거 장면에는 얼굴살 찌푸릴게 없다. 이렇게 보면 서로 헐뜯기에 바쁜 기성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선거판은 부끄럽다. 

지지운동에 나선 도우미들 열성적... 상호 비방은 하지 않아

일정 정도의 선거운동이 있은 후 전체 선거인을 대상으로 한 후보 연설회가 강당에서 열렸다. 마침 결석이나 여타 사정으로 불참하는 선거인이 없어 85명 모두가 연설회장으로 모였다. 역시 이 때도 모든 행사 진행은 어린이 선관위에서 도맡아 한다.

담임 선생님들은 오직 참관인일 따름이다. 간혹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상관하지 않는다. 그게 다 아이들의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고, 장차 우리나라 정치 마당에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자리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전교 어린이회 회장에 입후보한 진소형 어린이가 연설을 하고 있다.
▲ 입후보자 연설 전교 어린이회 회장에 입후보한 진소형 어린이가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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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어린이회 부회장에 입후보한 김도형 어린이가 연설을 하고 있다.
▲ 입후보자 연설 전교 어린이회 부회장에 입후보한 김도형 어린이가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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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은 회장 후보의 기호순으로 시작됐다. 맨 처음 연단에 오른 후보는 전교 어린이회장에 입후보한 정현수 어린이. 연설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왜 자기가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되어야 하는지 조목조목 밝히는 태도가 사뭇 비장스럽다. "제가 만약 회장에 선출된다면 여러분의 심부름꾼으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하나하나 존중하여 우리 학교를 훌륭하게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어 김본 어린이가 자신의 소견을 피력하였다. "저는 학교에 수영장을 만들고, 스쿨버스를 늘린다든지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겠습니다. 행동으로 옮길 줄 알고, 저 역할에 충실한 회장이 되겠습니다." 또, 김회정 어린이는 "항상 웃는 얼굴로 밝고 친절하게 여러분에게 다가가겠습니다. 여러분께 소중한 웃음을 주며, 행복이 넘치는 부곡초등학교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후보 소견을 밝혔다.

입후보자들 모두 당찬 소견 피력

이어 전교 어린이회 부회장에 입후보한 어린이들의 연설이 이어졌고, 곧바로 투표가 시작되었다. 기표대는 두 곳. 학년별로 선거인 명부를 확인한 후 투표용지를 교부받아 차례대로 기포대에 들어가는 어린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저는 믿음을 주는 후보에게 투표할 거예요. 평소 모든 일에 열심히 하거든요. 물론 말을 잘하는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겠지만 말에요." 5학년 신미화 어린이의 당찬 말이다. 후보 연설을 듣고 난 어린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입후보자 연설을 들은 선거인들이 선거인 명부를 확인하고 있다.
▲ 선거 모습 입후보자 연설을 들은 선거인들이 선거인 명부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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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용지를 받아든 선거인들이 기표소를 향하고 있다.
▲ 선거 모습 투표 용지를 받아든 선거인들이 기표소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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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전교임원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일상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선거가 아이들처럼 아름답게 이어질 수는 없을까? 이렇듯 초등학교에서 올바른 선거문화가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조금 희석된다, 그러다가 대학에 이르면 일정한 틀을 벗어나게 되고, 급기야 사회일반으로 치닫게 되면 조그만 것 하나도 평지풍파를 일으키게 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뿔이 난 것일까.

아직도 지난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차지의원 선거의 부조리가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물론 해당 의원이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지만, 어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그동안 우리의 선거문화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정서에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니 불법타락 금권선거가 활개를 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아무리 다수의 민의를 득하고 당선이 되었다 해도 정치가로서 떳떳하게 소신을 갖추지 않았다면 법의 심판을 가릴 것 없다. 변명 여지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에도 다수의 정치인들과 민선 행정수장이 제 뒤가 구린줄도 모른 채 '모르쇠'로 '철면피'를 하고 그 자리를 턱 버티고 있으니 할말을 잃고 만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정치인들

선거가 끝난 뒤 강당 한켠에 모인 아이들이 당락을 가늠해본다고 분주하다. 각 후보들 선거참모들이다. 득표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후보측 운동원들의 얼굴빛이 흐리다. 선거인  수가 적다보니 막상 개표를 하지 않아도 당선 예상을 한다는 눈치다.

"선거 결과 우리가 미는 후보가 20표 이상 차이로 이길 것 같아요. 분명해요!" 한 후보의 지지자는 자신있게 선거 결과를 미리 점쳤다. 개표가 시작되자 선거결과는 한 치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특히 5학년 전교어린이회 부회장 선거의 경우 4명의 후보자 중 세명이 각각 한 표 차이로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5학년 부회장으로 당선된 최상록 어린이의 총 득표수는 26표다). 이는 무엇을 반영하는 것일까. 그만큼 아이들이 전교임원 선거에 관심이 많았던 까닭이다.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요원들이 개표를 기다리고 있다.
▲ 개표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요원들이 개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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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요원들에 의해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 개표 모습 진행요원들에 의해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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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결과 부곡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 회장으로 기호1번 정현수 어린이가 45표로 전체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어 당선됐고, 6학년 부회장으로 36표를 득한 김도현 어린이가, 5학년 부회장으로는 26표를 얻은 최상록 어린이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부곡초등학교 전교 어린이회 임원 선거로 볼 때,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민주시민 으로서 의사결정과정에 중핵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소양교육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주어진 선거절차에 한 치의 부침도 없이 순탄하게 선거를 치르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래야 함부로 의사봉을 휘두르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의사당에서 팔을 걷어붙이는 불한당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 될성싶은 떡잎은 어릴 때부터 판가름 나는 것이다! 

2009학년도 부곡초 전교 어린이회 임원 당선자(맨왼쪽으로 부터 전교 어린이회 5학년 부회장 최상록, 6학년 부회장 김도형, 전교 어린이 회장 정현수)
▲ 전교 어린이회 당선자 2009학년도 부곡초 전교 어린이회 임원 당선자(맨왼쪽으로 부터 전교 어린이회 5학년 부회장 최상록, 6학년 부회장 김도형, 전교 어린이 회장 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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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선거, #전교어린이회, #국회의사당,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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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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