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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교사인 나는 평상시와 다른 날이 아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불편한 하루를 보냈다. 이런 기분은 우리학교 동료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농촌지역에 있다. 으레 시골학교가 그렇듯이 아이들 사는 형편이 비슷하다. 그렇기에 누구네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갠지 어느 집 강아진지 손금을 보듯 훤히 꿰고 지낸다. 그 때문에 어떤 비밀스런 이야기도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 학교는 어린이날도 민속놀이를 하는 것으로 데면데면하게 보냈다. 우리 반의 경우도 아이들은 어린이날이라고 하여 선물을 따로 받지는 않은 듯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라 해서 별스런 일이 생길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전 내내 학교를 출입하는 낯선 사람에게 신경이 쓰였다(모두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되레 교사의 자존심을 뭉개는 스승의 날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억지로 청렴한 스승의 날을 보내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받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매도당하는 것 같아서 낯이 뜨겁다. 꼭 그렇게까지 교사의 자존심을 뭉개야 했을까? 스승의 날, 아이들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온다고? 촌지가 꾸러미로 쏟아진다고? 지레 짐작으로 놀랄 일이 아니다. 덕분에 괜히 마음 조려가며 하루를 보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일개 선생이다. 그렇기에 교육행정이 결정하는 사항에 대해서 '갑론을박'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하는 마음에 기분이 씁쓰레했다. 특별(?)한 몇몇 교사와 학부모가 암묵적으로 건네는 추잡한 사안을 두고 전체 교사를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

그런데도 스승의 날을 그대로 두어야 할까? 세상 교사들을 다 모아놓고 물어보라. 스승의 날 없애는데 반대하는 선생이 있는지. 분명 정부나 교육행정 당국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그 폐단을 간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이번만큼은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스승의 날 즈음이면 그 뭐랄까. 마치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찜찜하고 불편하다. 

오늘은 아무 일 없었다. 단지 제자들한테 무시로 문자 메일이 이어진 것 말고는, 다행이다.  (그래도 성장해서 사회일각에서 열심히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제자들은 꽃바구니를 보냈다. 그들은 1990년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로 올해 서른 서넛 나잇살을 가진 청년들이다. 그들은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꽃바구니를 보낸다, 변함없는 그들의 사랑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자한테 꽃바구니 받은 것도 잘못이라면 죄 값 단단히 받겠다. 

이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은 지났다. 후련하다. 하지만 하루 내내 영 기분이 개운치 않다. 아직도 아이들은 스승의 날에 선생이 선물 받는 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 무슨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그나저나 못난 담임을 잊지 않고 제자들에게 전하는 건강한 안부가 기분 좋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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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경남 창녕동포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