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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카인과 아벨> 사이트에서 공개한 월페이퍼
 드라마 <카인과 아벨> 사이트에서 공개한 월페이퍼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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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SBS 수목드라마 <카인과 아벨> 1,2회가 방영됐다. 드라마 방영 전 예고편에 중국이 살짝 드러나기에 어떤 드라마일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이 내러티브인 셈이다.

드라마가 막 시작됐고 타 방송국 드라마에 비해 시청률이 이러쿵저러쿵 하는데 별 흥미가 없고, 5년만에 드라마 출연에 출연하는 소지섭, 그리고 한지민의 변신 등 배우들 캐릭터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한류배우 마케팅 운운하기에 누가? 라는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 드라마를 기사로 쓰게 된 것은 아마도 1회 초반에 나온 멋진 사막과 2회에 뜻밖에 등장한 토루 때문일 것이다. 사막과 토루. <카인과 아벨>에 흥분하게 하는 이유가 됐다. 그런데, 대뜸 걱정도 앞섰다. '중국'이 소재가 되면 그릇된 지식과 편향이 생길 우려에 공연한 걱정부터 드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SBS 드라마 사이트에 소개된 글을 보니 우려가 현실이 됐다. 현지 발음대로 하는 표기 원칙에 따르면 '텅그리(騰格里 Tenggri)' 사막(또는 '텅걸')이라고 하는 게 나을텐데 '텅거리(Teng-ge-li) 사막'이라고 했다. 이 정도는 애교다. 틀렸다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긴 하다. '텅그리(騰格里)' 사막은 중국에서 4번째로 큰 사막이면서 몽골족은 물론이고 흉노족, 강족(羌族) 등이 살아온 터전, 그 역사가 그리고 발음이 중국보통화대로 한다고 바뀌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SBS드라마 <카인과 아벨> 사이트
 SBS드라마 <카인과 아벨> 사이트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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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사이트에는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지금도 '왕릉'과 '쌍탑'이 남아 있다고 소개한다. 이 왕릉은 1038년에 강족 계열의 소수민족인 이원호가 세운 대하(大夏)라는 나라의 능이다. 쌍탑 역시 천 년의 역사를 담고 텅그리 사막 끝자락 언덕에 우뚝 서 있다. 북방민족의 원시적 예술 흔적인 암화(岩画)가 풍부한 허란산(贺兰山)도 사막을 바라보며 우뚝 솟아 있다.

아! 이곳이 닝샤(宁夏)회족자치구가 맞다. 공식 사이트에서 이 '닝샤'를 '영화회족' 자치구라고 한 것도 오타(?)인지는 모르지만 오류이다.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 착각?) '영하'라고 고쳐 써야 한다. 뭐 이 정도도 담당자 '애교가 조금 넘치네'라고 봐줘도 된다.

하지만, 드라마를 찍은 곳이 '이슬람교를 믿는 몽골계 회족'이 거주하는 자치구라는 말에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몽골계 회족'이라는 말이 영 우습다는 것이다. 몽골족이 이슬람을 믿는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게다가 소수민족으로 변신해 회족이 됐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상해서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을 통해 검색해보니 온통 '몽골계 회족'이라는 말이 유포돼 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해 잘못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교도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흘러와 종교 하나를 움켜쥐고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으며, 오히려 몽골족의 침공 등으로 인해 회족은 많은 압박을 당하고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샤머니즘 전통이 강한 몽골족이 회교도가 됐다는 것도 기상천외이다.

한족이나 몽골족 등으로 일부 민족동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몽골계 회족'이라고 할 사항은 아닌 것이다. 한국 여행사나 중국에 관한 네이버지식정보 등에서 온통 두루 퍼지고 있는데 정말 이상하다. 하여간, 아무리 중국사이트나 자료를 찾아봐도 '몽골계 회족'이라고 써야 할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혹시나 해서 베이징에 있는 사회과학원 박사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회족이면 회족이지 왠 몽골계 회족... 이거 금시초문'이라 한다.

중국의 사막
 중국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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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사이트의 글을 읽으면 마치 회족자치구 사람들이 고유의 문자인 상형문자를 가지고 있고 그걸 방송에서 봤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도 잘못이다.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유독 자기 문자를 가지지 않은 소수민족 중 하나가 바로 회족인 것이다.

텅그리 사막에서 <카인과 아벨>이 촬영됐다는 것이 사뭇 기분 좋고도 멋졌다. 내몽골의 바오터우 시에서 가까운 쿠푸치 사막에서 소지섭처럼 드러누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머리와 허리에 '총 맞은 것처럼' 누운 건 아니지만 말이다.

드라마의 촬영지 탐방으로 인해 중국을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 하지만, 그릇된 정보와 사고방식, 특히 중국에 대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이야기를 무턱 대고 함으로써 우리 드라마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오해와 무식을 배우게 될까 경계한다.

소지섭의 피 비린내 나는 연기를 담아 촬영지 '은천사막'을 소개하려면 인터넷에 떠도는 몇 가지 내용을 복사(Ctrl + C)해서 가져다 붙이는(Ctrl + V) 수준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담당자에게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좀더 세심하게 자료를 찾기를 바란다.

중국역사와 문화에 애착을 가지고 공부(중국을 이해하고 결국에는 상호 협력해 우리의 미래 지향에 기반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의 애착임)하는 사람으로서 '중국'에 대해 대충 결론 짓는 습성에 대해 매우 경계하고 있다.

신문 기사 한 구석, 약간 틀린 것이라면 한번 눈  감고 넘어가면 마음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울화통 터져서 다른 일을 못한다. 그런데, <드라마>라면 그 파급력이 커서 예민해진다. 방송에 '중국'이 나오면 "또 중국이냐?" 한숨부터 나온다. 제발 조금만 틀리기를 바라면서.

이어 2회에 등장한 토루. 나는 '총 맞은 것처럼' 놀랐다. 아벨(소지섭 분)이 닝샤회족자치구 텅그리 사막에 누워 '총 맞은' 채 대사를 읊조리며 시작된 <카인과 아벨> 2회에는 본격적으로 중국 현지 모습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중국말로 투러우(土楼)라 불리는 토루가 우리 드라마에 등장하다니 정말 놀라자빠질 일이 아닐 수 없다. 토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길다.

푸젠성 난징현의 토루
 푸젠성 난징현의 토루
ⓒ 투러우투어(tuloutour)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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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드라마에서 토루가 등장하는 배경이 궁금했다. 아벨이 의료자원봉사를 했다는 설정, 병원 부원장(김해숙 분)의 지시에 의해 모종의 음모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한지민과의 러브라인을 이어주는 '여행' 코스처럼 등장한 것은 산뜻해 보였다. 그런데 왜 토루일까. 작년(2008년 8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작가를 흔들었을까.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 멘트로 거론된 토루는 푸젠(福建)성 난징(南靖)이다. 출발지인 상하이(동방명주가 나왔다)에서 난징까지 가려면 기차로는 푸젠성 서남부의 역사문화도시인 장저우(漳州)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아벨과 영지(한지민 분)는 침대칸인 뤈워(软卧)를 타고 갔고 비록 버스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국적인 길을 걷기도 했다.

토루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토루가 보여주는 '중국 답지' 않은 풍광, 공동체 형태로 살아가는 독특한 문화가 오히려 기존의 '중국적'인 서민공간이 진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훌륭한 선택이다. 바로 토루야말로 중국 한족 내에서도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생활 스타일을 지닌 객가족(客家族)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토루와 객가족이 바로 내가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토루에서 살아온 객가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 중요한 연구아이템이다. 중국 및 동남아 일대(중화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며, 특히 '돈'에 대해서는 '중국의 유태인'이라고 할만큼 대단하다. 그러니, 관심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객가족이라고 할 때 '족(族)'은 민족 개념이라기보다는 '족속'이나 '부족'에 가깝다. 이처럼 한족 내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한족으로 동화됐다. 춘추전국 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부족집단들이 한족화 과정을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서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

그 중 하나가 객가족이다. 그런데, 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역 원주민이 아니라 황하(黄河) 유역에서부터 남쪽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중원지방으로부터 남하한 먀오족(苗族)이 지금도 소수민족인 점과도 다르다. 일부 학자들이 고구려와 관련됐다거나 북방민족일 지 모른다거나 하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로 보인다.

푸젠의 룽난, 광둥의 메이저우, 장시의 간저우 3곳(빨강원)이 주요 객가 거주 지역이며 드라마의 난징(연두원) 일대에 토루가 많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주요지역 중 하나이다!
▲ 객가 거주 지역 분포도 푸젠의 룽난, 광둥의 메이저우, 장시의 간저우 3곳(빨강원)이 주요 객가 거주 지역이며 드라마의 난징(연두원) 일대에 토루가 많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주요지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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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지방의 한족 일부가 중국 서진(西晋) 말기 이후 북방민족의 강력한 남하와 맞물려 수차례에 걸쳐 서서히 남진했다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객가인들은 역사적으로 5차례의 대규모 천도(迁徒)가 이뤄졌으며 3차례에 걸친 발전과정을 통해 푸젠(闽), 광둥(粤), 장시(赣)성 3곳에 자리를 잡았다.

남진했다는 것은 '거룩'한 말이고 사실은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며,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원주민과도 쟁탈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토루와 같은 요새를 짓고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토루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고, 이주한 지역 실정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건축양식이 등장하게 되고 그 이름도 약간씩 다르다.

외벽은 15미터 이상의 토루로 성벽처럼 쌓아서 높고 내부는 3층 이상의 복층 구조로 원형을 따라 연결된 복도에서 사방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복도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슷한 방 구조마다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지방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외침에 대비한 공동체 생활을 위한 건축구조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발품취재 중 찾았던 간저우의 객가풍경원에 있는 객가 공동체 생활 공간인 웨이룽우
 중국발품취재 중 찾았던 간저우의 객가풍경원에 있는 객가 공동체 생활 공간인 웨이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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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우물, 화장실, 복도, 응접실, 곁채, 서재, 거실, 침실 등이 체계적으로 갖춰 있으며 보통 앞부분이 약간 낮고 뒷부분이 높은 구조로 돼 있는데 채광, 통풍, 배수 등에 유리하게 돼 있는데 오랫동안 방랑하며 남방으로 이주한 객가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 형태는 원형(圆形), 장방형(方形), 반월형(半月形), 타원형(椭圆形), 팔각형(八角形), 보루식(城堡式) 등으로 다양하다.

드라마에서 보면 토루 한가운데에 모여 있는 현지인들의 얼굴이 남방사람들의 모습과 사뭇 달라보였다. 게다가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오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모습을 보면서 서진 말기, 당나라 말기, 북송 및 남송 시대,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 청나라 말기까지 남방으로 이주한 중원사람들의 역사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이름조차 '객(客)'이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객가, 그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 청나라 함풍(咸丰)제 시대 1854년 광둥 홍건군(红巾军) 폭동이 그 시작이었다. 사회적 불만을 품은 농민들이 홍건군에 가담하게 되는데 이때 이주민 지주 아들이 홍건군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주민들은 모병을 해 청나라 군대와 합세해 난을 진압한다.

이후 이주민 지주들은 관군을 등에 업고 기존 원주민 토지를 약탈하는데 토착지주들이 '외지인이 관을 등에 업고 토지를 약탈한다(客民挟官铲土)'며 들고 일어나 보복을 하게 되니 12년 간에 걸친 이전투구인 '토객계투(土客械斗)'가 시작된다. 원주민 지주들이 축객(逐客)을 명분으로 들고 일어나고 이에 대응해 이주민들도 군대를 만들고 병영을 세우는 등 대규모 싸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북방에서 이주해 온 세력을 객가라고 부르게 됐다.

중국발품취재 중 본 용춤이 드라마 <카인과 아벨> 토루 장면에서 등장한다
 중국발품취재 중 본 용춤이 드라마 <카인과 아벨> 토루 장면에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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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를 떠들썩 하게 한 태평천국의 난에 당시 소외돼 있던 객가인들이 대대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과 공화주의자 쑨원(孙文)과 그의 부인인 쑹칭링(宋庆龄)도 객가인이다. 덩샤오핑, 주더 등 중국 대륙을 움직였던 지도자들, 전 타이완 총통인 리덩후이, 싱가포르 총리 고촉둥, 태국총리 탁신, 필리핀 대통령 아키노 역시 그렇다. 경제권에서는 아시아 최고 재벌이라는 홍콩의 리자청을 비롯 화상(华商)의 상당수 이상이 객가인이다.

토루에서 진료를 하고 차와 술을 마시며 연회를 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용춤(龙舞)을 추는 사람들도 드라마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어 즐겁다. 한쪽에서는 병원의 피 비린내 나는 암투와 수술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적한 시골 정취와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토루는 더욱 드라마 속의 명품 장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쪽을 엮고 흑색을 칠한 덮개를 장착한 독특한 형태의 배인 우펑선(乌篷船)을 타고 있는 영지의 모습도 이국적인 장면이다. 상하이 외곽 어디인 듯한데 앞으로 장강의 물줄기로 인해 생긴 하천을 오가는 장면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중국의 최남단 토루와 서북지방의 사막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중국이 배경이 될지 모르겠다. 결국 병원 내 암투 등(영지 가족의 탈북(?) 에피소드가 궁금하지만)과 주인공들의 애정관계로 흘러가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중국을 보고, 또 배우는 계기가 되니 나쁘지 않다. 이렇게 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중국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야 오늘도 내일도 드라마 <카인과 아벨>을 위해 텔레비전을 켜지 않을까.


태그:#카인과아벨, #객가, #토루,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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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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