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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년 3월)에 대한 검열 본. 최영묵 교수는 우연히 중고책방으로 흘러나온 '검열의 흔적'을 <비판과 정명> 110~111쪽에 고스란히 담았다.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년 3월)에 대한 검열 본. 최영묵 교수는 우연히 중고책방으로 흘러나온 '검열의 흔적'을 <비판과 정명> 110~111쪽에 고스란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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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운명처럼 나한테 왔다."

최영묵 교수(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가 고 리영희 선생의 '내제자'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배, 최 교수와 회포를 풀고 싶었다. 최근 펴낸 '리영희의 언론 사상'을 천착한 <비판과 정명>이 그 끈이었다.

최 교수는 차 한 잔을 나누고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년 3월, 한길사)의 검열본을 내놓았다. 올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중고책방을 뒤지다가 튀어나온 '선물 같은 것'! 50군데가 넘는 붙임쪽지가 촘촘하게 붙어 있고 펼치는 곳마다 휘갈겨 쓴 파란색 볼펜 자국이 선명했다. 가끔 연필로 검열한 흔적도 많은 것으로 봐서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조직적으로 검열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지도자 찬양, 용공'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3)에 대한 검열 본. '지도자 찬양, 용공'이라 검열하고 단락을 걷어내라는 표시가 보인다. 실제 검열에 따라 증보판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최 교수는 <비판과 정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3)에 대한 검열 본. '지도자 찬양, 용공'이라 검열하고 단락을 걷어내라는 표시가 보인다. 실제 검열에 따라 증보판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최 교수는 <비판과 정명>을 통해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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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3) 곳곳에 보이는 검열의 흔적을 설명하고 있는 최 교수
 <우상과 이성> 증보판(1980.3) 곳곳에 보이는 검열의 흔적을 설명하고 있는 최 교수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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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쪽 '周恩來外交의 哲學과 實踐'에 뚜렷하게 각인된 글자가 섬뜩했다. 1980년 전두환이 주도한 계엄사령부의 칼질이 총칼의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마치 오늘 일어나고 있는 현상처럼 착시도 보인다. 이미 2007년 오마이뉴스에 '시대의 고단함 뛰어넘은 풍운아 리영희'를 쓴 김언호 대표도 자신의 '작전'으로 검열을 받아야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공산주의자', '모택동의 우월', '공산 통일' 등등 검열의 필체는 적어도 좀 배웠음직한 '먹물' 인의 그것으로도 보인다. 최 교수는 치열한 스승의 원고가 삭제되고 축소됐으며 추가된 흔적을 비교해 짚어주었다. <비판과 정명>을 출간한 뜻도 바로 기존의 리영희 선생의 '평전'이나 '전집'에 드러난 오류나 부족을 짚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영희의 언론사상' <비판과 정명>의 저자 최영묵 교수
 '리영희의 언론사상' <비판과 정명>의 저자 최영묵 교수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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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진실'의 가치를 선언하고 운명하신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리 선생 생전에 <리영희 저작집>과 대담집 <대화>,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 <리영희 평전> 등의 책들이 이미 나왔다. 하지만 이 책들을 다 읽는 다 해도 '인간' 리영희와 리영희의 사상, 사유의 작동방식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젊은 독자들이 새롭게 리영희 선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비판과 정명>을 집필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책의 글머리에 리영희 선생의 연구실을 '무상'으로 사용한 '방세'를 내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검열'로 점철된 현대사를 저널리스트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 평생을 일관했던 스승에 대한 진지한 승계로 읽어야 한다. '정명(正名)', 정갈하고도 수준 높은 해석은 정독해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성'만큼이나 쏙쏙 가슴에 박힌다.

 <비판과 정명> 최영묵, 한울아카데미, 2015.12.04, 39,500원
 <비판과 정명> 최영묵, 한울아카데미, 2015.12.04, 39,500원
ⓒ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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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의 앞으로의 작업이 더 기대된다. 리영희 선생의 삶을 무상으로 흡입한 수많은 독자, 지식인, 언론인 등을 대표할 만한 작업이 되면 좋겠다. 그 일은 아마 우리나라 국민에게 국세를 독촉하는 것이 되어도 좋다. '검열' 같은 족쇄나 '용공', '종북' 플랫폼으로 옭아매는 정부가 아니라 '통일'과 '민주'의 가치가 살아있는 나라에 떳떳하게 내는 세금 말이다. 우리가 <비판과 정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판과 정명> 출간 소식을 듣고 제자 둘이 찾아왔다. 함께 중국집으로 이동하는데 연구실 문 옆에 붙은 '긍정의 힘! 최영묵 교수님, 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는 제자의 판화가 눈길에 맺힌다. 혼돈의 근현대 역사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교수'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왜곡의 뒷방에서 칼질을 난무해 왔는지를 알고 있다. 국정교과서 정국에서도 일부 '교수'들은 진실의 가치보다 개인의 욕심과 안위가 우선임을 만천하에 기록하고 있다. 검열 본 곳곳을 펼치면 1980년 당시 계엄사령부의 검열 담당관은 꽤 '인지능력'을 갖추고 수술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비판과 정명> 110쪽에는 검열을 거친 증보판에 대한 리영희 선생의 소회를 정확하게 환기해주고 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검열 통과 작전'은 성공을 거두어 <우상과 이성>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덕분에 1986년까지 7만 부 이상 팔렸다. 10여 년이 지난 2007년 김 대표의 앞선 기사에서 증보판 서문을 인용하면서 '이제, 하늘을 덮었던 짙은 먹구름의 한 모서리가 뚫리고 희미하게나마 밝은 햇빛이 내려비치기 시작했다. (중략) 필자의 기쁨은 크다는 역리(逆理)를 믿는 것이다'라고 리영희 선생의 감회를 소개했다.

 최영묵 교수 연구실에 있는 리영희 선생(이철수 판화가 작품)
 최영묵 교수 연구실에 있는 리영희 선생(이철수 판화가 작품)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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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 교수의 언급과 <비판과 정명>에 따르면, 리영희 선생은 증보판의 서문조차 검열 당하고 있는 와중에 '저널리스트가 지녀야 할 자존심' 같은 맥락을 숨겨놓았다고 했다. 그것은 '우울함'이었다.

'그러기에 한길사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서 불가피한 수정을 거쳐 이 증보판을 내게 되는 것은 필자에게는 기쁨이기보다는 우울함이라는 솔직한 심정을 적어야겠다.'

<비판과 정명> 110쪽에 기록했으며 <우상과 이성> 1980 증보판 4쪽에 담긴 리영희 선생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최 교수 연구실에는 이철수 화가의 필체와 두 눈 부릅뜬 리영희 선생 판화가 지키고 있다. '우울함'은 '진실'을 향한 최고의 절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영희 선생 판화 아래에 2015.2.18과 최 교수의 어린 딸 이름이 살짝 드러난다. 최 교수는 <비판과 정명> 글머리 그 끝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딸 연제'가 '어서 자라서 선생님의 책들을 읽고 아빠와 토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1980년 '우울함'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2015년 끝머리다.

 최영묵 교수의 연구실에 걸려 있는 '긍정의 힘!'
 최영묵 교수의 연구실에 걸려 있는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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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비판과 정명> 최영묵, 한울아카데미, 2015.12.04, 39,500원



리영희 저작집 2 - 우상과 이성

리영희 지음, 한길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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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