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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태우기 대형참사로 운명을 달리한 망자들을 위한 위령제가 12일 사고 현장에서 거행되었다.
▲ 사고 현장에 놓인 국화 억새 태우기 대형참사로 운명을 달리한 망자들을 위한 위령제가 12일 사고 현장에서 거행되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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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태우기 열흘 전만 해도 군청공무원은 물론, 배바우산악회 회원들 고생많았습니더. 등산로를 보수하고, 화왕산성 12㎞에 걸쳐 방화선을 구축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다고예. 그뿐이 아닙니더. 한전의 협조를 받아 등산로마다 안내등을 다 연결했다 아입니꺼. 일 많이 했습니더. 그런데 아무리 행사를 잘해도 사람이 그만큼 죽고 다쳤으니 공치사 받기는 다 틀리삔기라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깁니더.”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애시 당초 산꼭대기에 불을 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기라. 생각해 보면 안다 아이가. 요즘 어느 산에 가 봐라. 산에서 담배는커녕 라면 하나도 못 끼리 묵는다. 산불감시가 월매나 심하나. 그런데 유독이면 화왕산에서 불을 지르는 게 맞는 일이가. 물론 산림청에 허가는 받았을끼지만 정말 잘못된 발상인기라. 몇 번 억새 태우기에 와 봤지만 그때마다 위험천만이었을 때가 많았어. 그때 일들은 방송에 보도가 안 되어서 그렇지 소소하게 불에 디고, 옷이 타고 했어. 사고는 그때부터 예고된 기라.” 

14일 오후 1시, 화왕산 화재 참사가 있은 지 엿새 만에 다시 찾은 화왕산성 억새밭.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막 환장고개를 올랐을 때 서문(자하곡 제2등산로)에서 만난 육순의 창녕 토박이 두 분의 대화다(두 분은 본인을 밝히기를 원치 않았다).

억새 태우기 행사로 화왕산성 억새가 모두 까맣게 타버렸다.
▲ 까맣게 타버린 화왕산성 억새 태우기 행사로 화왕산성 억새가 모두 까맣게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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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태우기로 까맣게 타버린 득성지 부근의 모습
▲ 화왕산 억새 억새 태우기로 까맣게 타버린 득성지 부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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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화왕산성 동문쪽 모습
▲ 화왕산 억새 태우기 배바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화왕산성 동문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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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엿들으니 이번 화재 참사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먼저 분의 생각은 “새(혀)가 빠지도록 행사를 준비했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 그 수고로움이 다 묻혀버렸다”는 얘기고, 다른 한 분의 견해는 “행사의 의미를 따지기 전에 산상에서 불을 지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참사에 따른 창녕지역 여론의 향방도 이와 비슷하다.

산상에서 불을 지르다니 그게 말이 되나

동행한 아내와 서문까지 오르는데 한 시간 남짓 소요됐다. 그러나 도중에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하산하는 몇 명뿐이었고, 산정에서 만난 사람들도 겨우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이곳은 참사 이전에는 토요일이면 제법 많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13일, 단비(창녕지역 30㎜)가 내렸음에도 억새가 타고 남은 새까만 잿더미는 그대로 쌓인 채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곧바로 진행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갔다.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까. 미처 치우지 못한 행사진행 물품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사고 당시 절박했던 모습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기자는 행사 당일 오후 4시쯤 본행사장에 도착하여 억새 태우기 행사직전 화왕산 정산 발치에 있었다. 이곳은 참사가 일어난 배바위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다). 진행본부가 있는 사고 현장은 “정말 아수라장이었다”고 할 만큼 처참했다.



불에 탄 옷가지들과 신발, 갖가지 등산용품 그리고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등짐소화용기 등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기자가 작년 11월 23일 화왕산에 올랐을 때만 해도 억새는 바짝 말라있었다. 워낙 가뭄이 심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내년에 억새 태우기를 한다는 기대로 보다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올해 억새는 키가 잘 자라지는 않았지만 세는 참 좋았다. 세가 좋다는 것은 그만큼 억새가 빽빽하게 자랐다는 얘기다.

진행본부 조금 위에 행사 당일 진행요원을 위해 마련했던 갖가지 먹을거리들이 채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300인분이 족히 되고 남을 밥과 국, 김치, 사발면 등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추운 날씨에 국을 데우려고 설치했던 국솥은 가스통에 연결되지 않은 채였다. 짐작컨대 그날 밤새 공무원들과 진행요원, 소방대원들은 밥 한 톨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대형화재 참사를 빚었던 배바우 산정 부근의 모습
▲ 대형화재 사고 현장 모습 대형화재 참사를 빚었던 배바우 산정 부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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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는 노란색 경찰 수사선이 처져 있다.
▲ 사고 현장 모습 사고 현장에는 노란색 경찰 수사선이 처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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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 근처로 갔더니 참사현장에 노란색 경찰수사선이 쳐져 있었다. 채 200평 남짓 될까 말까 하는 그 자리에 무려 70여 명의 관람객들이 순식간에 생사를 가르는 아비규환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기자가 보건대 그 자리는 애석하게도 여타 다른 지역에 비해 방화선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다. 거친 화마를 만난 사상자들이 얼마나 절절하게 사투를 벌이며 몸부림을 쳤을까. 처참했던 순간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참사현장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위령제를 지낸 곳에는 망자들을 위로하는 하얀 국화가 놓여 있었다. 천둥과 같은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숙연했다. 망자들은 말이 없다. 다만 새까맣게 탄 잿더미만 당시의 화급했던 순간들을 말하고 있을 뿐. 화마에 엿가락처럼 녹아버린 카메라 삼각대, 옷가지들, 그리고 각종 등산용품들이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원래 여기는 불이 붙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주최 측에서도 그렇게 사전 대비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사진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자리입니다. 저쪽 정상에서 억새 태우기 장관을 보는 것보다 여기가 더 좋거든요. 그래서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이곳 배바우 근처에 몰렸을 겁니다.

전 그때 화왕산에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창녕읍내에서도 바람이 심하게 불었거든요. 집에서 볼 때도 올해 억새 태우는 불꽃이 유난히 밝게 잘 보인다고 생각해어요. 하지만 그게 수많은 사람들이 불기둥에 휩싸이는 모습이었다니 아연실색할 만큼 등골이 오싹합니다. 방송 보도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백윤식씨는 평소 하루에 한번은 화왕산을 찾는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화왕산은 억새를 태우기에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 사고 현장을 설명하는 백윤식씨 백윤식씨는 평소 하루에 한번은 화왕산을 찾는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화왕산은 억새를 태우기에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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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화왕산을 오른다는 백윤식(44, 창녕읍 술정리)씨가 참사현장을 지켜보며 한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억새 태우기를 5회째 계속했지만 단 한번도 불에 타지 않은 지점이라 했다. 그런 까닭에 그곳은 주최 측도 억새 태우기를 보러 온 관람객들도 그곳이 불길에 휩싸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돌풍’(창녕군 관계자들의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이 불어 순간적으로 들이닥쳤다.

“평소 저는 화왕산 억새 태우기를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3년마다 웃자란 억새를 태우면 이듬해 세가 좋은 억새밭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환경적인 차원에서 따져 생각하면 그렇게 소득이 없는 행사입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억새 태우기를 반대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화왕산 억새 태우기를 관광자원으로 하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지요. 여길 보세요. 그 당시 아무리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그날 기자가 체감했던 바람의 세기는 초속 4-5미터 정도였다), 돌풍이 불었다고 해도 저 밑의 행사진행 본부처럼 방화선만 구축되었다면 이와 같은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예전 같으면 억새 태우기 행사 전날까지 산성을 쭉 돌아가며 방화선을 만들고 거기에다 불을 놨어요. 또 물도 뿌렸고요. 하지만 올해 방화선 자리를 보면 그냥 억새만 베었지 그런 흔적이 없거든요.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나마 평일이어서 사람이 적게 올라와서 이만했던 게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일을 당하고 나서 책임 소재만을 따져 무엇 하겠습니까. 그나저나 이번 일로 그 좋았던 화왕산에 대한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보다시피 토요일인데도 등산객이 거의 없잖습니까?“

날마다 화왕산에 오른다는 백윤식씨는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었다. 백씨는 집안 사촌형수가 얼굴과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고 부산 하나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왕산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염려했다.

화왕산성, 등산객의 발길이 뜸해져

한데 산을 찾은 다른 등산객들은 참사를 기점으로 해서 언론의 보도가 너무 편향되었다는 불만 섞인 이야기도 했다. 그들은 사고가 난 이후로 세 번이나 사고현장을 찾았다는 화왕산지기들이었다.

“당초 화재참사가 났을 때 진행본부에 옮겨진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어요. 물론 방송보도처럼 구급장비도 태부족했고, 응급조치도 제때 못한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두들 단 한 명이라도 고통을 덜 받게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운송했습니다. 정말 상황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김충식 군수를 비롯한 군청관계자들이 곧바로 사고대책본부를 꾸리고 현장을 지휘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워낙에 많은 사상자들이 한꺼번에 몰렸거든요. 아무튼 사고 순간에 열악한 조처였지만 최선은 다했습니다.”

자신을 배바우산악회 회원이라고 밝힌 사람은 사고 수습에 정신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날 그 시간(9일 오후 6시 40분쯤) 기자는 화왕산 정상 쪽에서 배바위 등선을 바라보면서 왜 사람들이 불속에 들어가나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모습은 불의에 화마가 들이닥쳐 사투를 벌이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군청관계자들과 배바우산악회, 안전요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사는 그렇게 일어났던 것이다.

사고 6일째 사고 현장을 찾은 등산객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그곳을 찾고 있다.
▲ 사고 현장을 찾은 등산객 사고 6일째 사고 현장을 찾은 등산객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그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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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로 화왕산을 찾는 등산객을 뜸했지만, 14일 사고 현장을 찾는 등산객은 사고 현장에서 불의한 일로 운명을 달리한 망자들을 조문했다.
▲ 사고 현장을 내려다 보는 등산객 대형 참사로 화왕산을 찾는 등산객을 뜸했지만, 14일 사고 현장을 찾는 등산객은 사고 현장에서 불의한 일로 운명을 달리한 망자들을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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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휩싸인 불길은 급기야 배바우까지 덮쳤다.
▲ 사고 현장 주변 배바우 화마에 휩싸인 불길은 급기야 배바우까지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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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과 역풍에 방화선을 넘은 불은 결국 사고 현장에 있던 관람객을 휩싸고지났다.
▲ 화마가 덮친 사고 현장 광풍과 역풍에 방화선을 넘은 불은 결국 사고 현장에 있던 관람객을 휩싸고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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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불길은 배바우 방화선을 넘어 인근 산으로 타고 갔다.
▲ 방화선을 넘은 불길 거센 불길은 배바우 방화선을 넘어 인근 산으로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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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사의 사상자는 사망 4명 부상 64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그리고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은 화왕산 등성이 중 배바위 부근이었다. 사진작가들에 따르면 그곳이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위치로 사람들이 많이 몰렸던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데도 불구하고 800여 명의 안전요원으로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안전조처’를 미흡하게 한 것이며, 쟁점인 방화선 구축문제가 ‘운영 미숙’이라는 것이다. 

주최 측은 일부 방송 보도에 방화선이 15m에 못 미쳤다는 보도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렇지만 기자가 오늘 다시 살펴본 결과, 사전에 방화선은 충분하게 구축해 놓았다고 하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번 행사에서 방화선 구축방법에 있어 문제점이 엿보였다.

우선 이번 행사의 방화선은 마치 벌초하듯이 덤벙덤벙 베었고, 그나마 베어놓은 억새를 그대로 눕혀놓았다(아마 이것이 불길이 방화선을 넘게 된 연유가 아니었을까). 부실한 방화선이었다. 또한 관광객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안전요원의 배치다(주최 측은 연인원 800명을 배치했다고 한다). 평일 3만 명의 관람객에 그만한 안전요원은 안전한 행사 진행에 필요한 인원으로 태부족이었다.  

행사 진행 인원의 태부족과 안전 조처 미흡

그리고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응급약품이나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요원을 거의 배치하지 않았다. 거듭되는 방송 화면을 보면 심하게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응급조치도 받지 못하고 맨땅에 그대로 드러누워 있거나, 당장 이송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들것이 없어 행사 플래카드를 찢어 대나무로 만든 들것으로 후송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사전에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30~40m에 이르는 불기둥과 열기에 빚어질 지도 모르는 화재를 달랑 몇 십 개의 등짐소화기로 대처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사고 현장의 가을 모습 사진
▲ 가을 화왕산 억새 사고 현장의 가을 모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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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화왕산 억새 축제로 '산상음악제'가 일린다.
▲ 화왕산 억새 축제 매년 화왕산 억새 축제로 '산상음악제'가 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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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사로 볼 때 ‘천재’든 ‘인재’든 그게 중요한 쟁점은 아니다. 사고대책회의에서 김충식 창녕 군수가 ‘인재’라고 인정했다는 유가족 측의 이야기에 맞서 군청관계자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떻게 똑같은 자리에 참석했음에도 왜 다른 소리를 하는가.

대형 참사에 따른 유가족들의 아픔은 한번이면 족하다. 대승적인 견지에서 “모든 게 나의 책임이다”고 얘기할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진 책임자가 왜 없을까. 사고가 나지 않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무사안일주의로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다. 화왕산 참사를 돌풍으로 인한 천재라고 고집할 것인가?

하산할 무렵 새까맣게 타버린 화왕산성은 날아든 까마귀 떼들로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평소 같으면 단 한 마리의 까마귀도 날아들지 않는 산상인데 말 못하는 저들도 애꿎은 참사의 슬픔을 아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는 개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태그:#화왕산, #억새태우기, #대형참사, #산상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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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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