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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너희들이 되길" 지난해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가 12일 졸업식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영상편지.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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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가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생에게 쓴 편지를 건네주며 한명 한명씩 포옹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가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생에게 쓴 편지를 건네주며 한명 한명씩 포옹을 해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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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6학년 9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박수영 교사에게 참스승님상을 주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6학년 9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박수영 교사에게 참스승님상을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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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과 행복을 주시는 참스승상. 위 스승님은 2008년 (한 해) 동안 6학년 9반 한 명 한 명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시고, 활활 타오르는 참교육의 열정과 사랑으로 저희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참세상의 꿈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진한 감동과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상을 드립니다."

13일 오후 송파구 거원초등학교 6학년 9반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설명해줬다는 이유로 해임당한 박수영(37) 교사에게 상장을 건넸다.

박 교사는 목이 메는지 잠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꺼내들었다. 박 교사는 6학년 9반 30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직접 써온 편지를 건네주고 한 명씩 끌어안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또 자신의 얼굴과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도 하나씩 나눠주었다.

선물을 모두 나눠준 박 교사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르겠지만 모두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고 열심히 살자"고 말했다. 교실 뒤편에 있던 학부모 중 한 명이 '스승의 은혜'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내 합창이 되어버린 노랫소리 중간 중간 흐느낌도 섞였다.

눈물 흘리던 학부모 "중학생 될 내 아이 일제고사 안 봐도 된다고 할 생각"

후임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건네주자 뒤에 서서 아쉬워하며 바라보고 있다.
 후임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건네주자 뒤에 서서 아쉬워하며 바라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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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대형 현수막으로 만든 기념사진에 바램의 글귀를 적고 있다.
 학생들이 대형 현수막으로 만든 기념사진에 바램의 글귀를 적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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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대형 현수막으로 만든 기념사진에 바램의 글귀를 적고 있다.
 학생들이 대형 현수막으로 만든 기념사진에 바램의 글귀를 적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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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사는 이날 제자들에게 졸업장을 직접 나눠주진 못했다. 끝까지 그의 졸업식 참석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학교 측이 이날 한 발 물러서 제자들과 함께 졸업식장에 설 순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공식적'인 졸업식 지도는 또 다른 '담임' 교사의 몫이었다.

하지만 6학년 9반 학부모와 학생들에겐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박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이동하자, 학부모들은 각자 가져온 준비물들을 이용해 교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칠판 양 옆 게시판에는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자 새로운 출발이다, 선생님과 함께 있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적힌 대자보가 붙었고,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노란색 풍선들이 교실 곳곳을 수놓았다.

칠판에는 아이들과 박 교사가 지난 가을 함께 찍은 사진을 출력한 대형 플래카드가 붙었다. 아이들은 이곳에다 박 교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적었다.

한 학생이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주고 있다.
 한 학생이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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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건강하시고 꼭 복직하세요. 그리고 나중에 만나요."
"선생님과 함께 졸업식 해서 행복해요."

아이들은 이날 졸업식을 굳이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눈물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다들 박 교사가 다시 교단에 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조찬호(12)군은 "중학생 되면 일제고사 또 보라고 할 텐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생각나서 슬플 것 같다"며 "선생님 복직하시면 꼭 한번 모두 모여 보충수업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눈물을 흘린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졸업식장에서 한 학부모가 눈물을 흘리자 위로하고 있다.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졸업식장에서 한 학부모가 눈물을 흘리자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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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솟는 눈물을 스커프로 찍어내던 정아무개씨는 "그동안 혼란과 슬픔이 있었지만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목소리를 냈고 함께했다"며 "어쨌든 이제 헤어지지만 선생님이 보여주신 교육의 참뜻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학부모 장경임(50)씨는 "박 선생님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선생님이었다"며 "사춘기인 아이들이 이번 일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마무리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특히 장씨는 "이번 일제고사 땐 아들에게 시험을 보라고 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일제고사가 제대로 된 시험이 아니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중학교에 아이가 올라가 '일제고사를 보게 됐다'며 상의를 한다면 나는 '안 봐도 된다'고 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수영 교사 "아이들이 좀 더 당당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참스승님 상장을 보고 있다.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참스승님 상장을 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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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박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합동사진 촬영을 끝으로 이별 의식은 마무리됐다. 박 교사는 이날 학부모들과 '뒷풀이'를 약속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건네준 상장과 돌림글, 플래카드 등을 빠짐없이 챙겨 들었다. 끝까지 교실에 남아 있던 몇몇 학부모와 학생들은 그를 도와줬다.

박 교사는 "아이들이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졸업할까 걱정했는데 오늘 아이들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즐겁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또 "남은 학기 동안 아이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 마음의 키를 자라게 하는 일들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어수선하게 돼 버려 아쉽다"며 "시간이 갈수록 지금의 기억들이 바래지겠지만, 이 경험으로 아이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아이들은 반창회 때 할 이야기는 많을 거다. 어떤 일을 마주할 때도 '선생님은 그때 그랬지', '우리는 그때 그랬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이 경험이 아이들이 앞으로 좀 더 당당해지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태그:#일제고사, #해직교사, #거원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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