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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의 발언으로 여론이 또 한 차례 시끄럽다.

 

지난 4일 서울 신사동 '에브리싱 노래방'에서 열린 '음악산업 진흥 중기계획' 발표회에 참석한 유 장관이 "가수 군 입대에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발언 후 있을 논란을 의식한 듯 유 장관은 "군대를 안 가는 것은 안 된다"고 못박은 뒤,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군 입대) 연기가 가능하도록 배려하거나 연예 활동의 연장선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병역 문제는 한국 사회에선 참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모두가 병역의 의무를 마쳐야 하기에 어렵고, 특히 남자 연예인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더더욱 군대에 대해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이렇게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게 된 데에는 그동안 일부 연예인들의 그릇된 행동들도 한 몫 했다.

 

과거 유승준은 군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군 면제를 받았고, 송승헌·장혁·한재석 등은 불법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가 2004년 들통나 현역 및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바 있다. 가수 싸이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하던 시절 불성실하게 근무한 것이 적발되어 현역으로 재입대하기도 했었다.

 

'가수'란 직업을 가졌을 뿐인데, 배려해라?

 

이러한 남자 연예인들의 병역 비리 파문 등은 대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병역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유 장관의 발언과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거나 보도될 때마다 온라인에서는 누리꾼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판 의견이 주를 이뤘다.

 

지난해 6월에는 '문광부에서 한류스타들에게 병역 특례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언론이 보도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광부에서 한류스타들에게 병역 특례를 부여해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없이 지속적으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 방안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누리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고, 문광부는 서둘러 '아무 것도 확정된 바 없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이번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비록 한류스타가 아닌 가수, 병역 특례가 아닌 입영 연기 배려로 그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연예인에 대한 병역 혜택'이라는 알맹이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과연 가수에게 병역 연기에 대한 배려(혹은 혜택)를 해주는 것이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맞는가 하는 점,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하는 점이다.

 

'연예 활동 기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연예인이라는 것도 사실 수많은 직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행 병역법상 특정한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하여 그 자체만으로 병역 연기가 되는 경우는 없다. 특별한 경우, 이를테면 중소기업에 취직한 실업계고 졸업생이나 기초생활 수급자, 중졸 학력의 사람이 취업을 이유로 연기할 경우에는 1회에 한하여 2년까지 입영을 연기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판단 근거로 직업의 종류를 들진 않는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그 자체만으로 병역 연기의 혜택을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타 직업군과의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기준도 불명확하다. 입영 연기에 대표적인 사유가 되는 학업.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연예인들도 상당수 이 방법을 쓴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병역을 연기하고 연예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예 활동을 이유로 병역을 연기해주는 조항을 신설한다면 그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학업에 의한 병역 연기는 단계마다 기준이 명확하다. 대학과 대학원, 학제 과정에 따른 연령 제한도 구분돼 있다.

 

그런데 연예 활동은 그렇게 명확한 기준을 잡을 수 없다. 가수의 경우 보통 음반 활동을 하는 활동 기간과 음반 활동을 쉬는 비(非)활동 기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렇다면 비(非)활동 기간은 연예 활동 기간에 포함해야 할까, 안 해야 할까? 또 가수로 활동하다가 그만두고 장기간 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이 사람은 가수일까, 아닐까? 이렇듯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활동이 일정하지 못하고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학업과 같이 명확한 기준에 의해 연기 기간을 산정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음악산업엔 1000억 투입, 지역신문엔 100억 삭감

 

이날 유 장관의 병역 연기 혜택 발언 때문에 사실상 묻힌 또 한 가지 중요한 쟁점은 바로 문광부가 음악산업 진흥을 위해 국고 1275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유 장관이 발표한 음악산업 진흥 중기계획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향후 5년 동안 한국음악산업의 글로벌화, 대중음악의 내수시장 활성화, 음악산업 인프라 구축 및 성장기반 강화 등의 3대 추진전략과 8개 핵심과제, 15개 일반과제 등을 통해 펼쳐지며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국고 1275억원이 지원된다는 것이다.

 

음악산업 발전을 위해 국고가 투입된다는 것 자체는 문제 삼을 게 없다. 한국음악산업은 오프라인 음반시장이 붕괴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극심한 내수 부진을 겪어 왔고 온라인 음원시장은 수익구조가 불균형해 가요계 종사자들에게 불리한 점이 적지 않았다.

 

또 가수들의 활발한 해외 진출로 꺼져가는 한류 불씨를 다시금 지필 수 있다면 문화 산업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일 것이다. 4일 발표에서 문광부가 핵심 추진과제로 내놓은 공인차트 및 공인시상식 신설 건도 향후 한국음악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바로 지난해 10월, 문광부는 2008년 예산에 비해 신문발전기금 75억4600만원, 지역신문발전기금 57억5400만원이 삭감된 2009년도 기금 예산안을 국회 예산정책처에 제출해 신문업계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 일로 지역신문들은 처음으로 지면파업을 단행하는 등 거센 반발에 나섰고, 결국 여야가 예년 수준으로 예산을 증액하기로 합의하고 수정안을 냈다. 당시 유 장관도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국회에서 수정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유 장관 눈엔 가요계만 보이는 건가

 

하지만 지난해 12월 13일 한나라당이 2009년도 예산 처리를 강행하면서 결국 133억원을 삭감한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켜 수그러들던 파문은 다시금 확대됐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신문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전국단위 신문보다 경영기반이 취약한 지역신문들의 어려움은 상당한 상태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7일 경남지역의 <진주신문>이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휴간을 선언했고, <광주일보>는 경비 절감을 위해 지난 1월1일자로 부장급 이상 간부 7명에게 6개월 유급휴직을 명했다. 이 밖에도 <경남일보>는 노사가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협의하던 중 끝내 뜻이 맞지 않아 노조에서 파업을 결의한 상태이다.

 

지역시민사회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여론의 다양성을 위한 일익을 담당하던 지역신문의 경제적 위기에도 문광부와 여당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증액하기는커녕 오히려 삭감하고 나섰다. 가요계를 위해 가수들의 병역 혜택까지 신경 쓰고 1275억원의 국고를 지원하겠다던 태도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두 곳 모두 똑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데 한 쪽에는 1천억원 대 국고를 지원하고 다른 한 쪽에는 1백억원 대 국고 지원을 삭감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음악산업 진흥 중기계획을 좋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그:#신문발전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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