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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름답다는 것은 겉모습만을 두고 하는 게 아니다. 미인의 기준도 얼굴 생김새만을 두고 따지지 않는다. 얼굴 생김새와 함께 속이 곪은 게 없고, 썩은 게 없는 맑은 지·정·의를 갖추고 있어야만 진정 아름답다고 평가하게 된다. 속이 곪을 대로 곪았고, 썩을 대로 썩어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은 추하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산과 강이 금수강산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오물과 쓰레기들이 넘쳐 나고 온 강물에 떠다닌다면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잘 닦아 놓은 듯한 도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움푹 패게 된고, 그로 인해 사고다발지역이 된다면 그 역시 겉포장만 아름다운 아우토반에 불과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가늠하는 중장년층들이 사회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일터에서 아름다운 땀을 흘린다. 그것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각종 지표를 세계 속에 자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속살과 같은 중고등부 학생들이 정부와 교육부가 쳐 놓은 입시지옥 속에서 숨조차 가누지 못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김진경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대한민국 교육부가 제정한 '시계모자'를 쓰고 입시지옥에 내몰린 어린 학생들의 참상을 판타지 형식으로 빌려 쓴 소설이다. 아이들이 경주마처럼 끌려 다니는 이유가 재산가와 고위 전문직으로 구성된 1구역 상류층, 정규직 샐러리맨과 중하위 전문직의 2구역 중류층, 아세안과 비정규직의 3구역 하층민 등의 각각의 층층에서 1구역 상류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함임을 고발한다.

 

물론 이 소설 속에는 겉으로 드러난 1구역 상류층에서부터 3구역 하층민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 밑의 지하 세계에 갇혀 있는 '지하도시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음을 밝힌다. 음지의 지하도시는 학교에서 '시계모자'를 쓰고 경주하다가 낙오한 학생들을 받아주는 곳이요, 획일적인 교육계의 시계를 다양한 천개의 자율시계로 바꾸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번에 교육시계부를 상대로 시계모자 강제 착용조치를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고 헌법소원을 낸 이기우 군과 김유리 양이 대표적이다. 과거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정부를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기우 군은 인터넷을 통해 2만 명 가까운 학생을 연명으로 조직하였다. 또한 온라인으로 학생들뿐 아니라 변호사, 교수 등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자문을 받고 있다."(114쪽)

 

결국 정부와 교육부의 획일적인 '시계모자' 정책이 아이들을 창의성과 자발성을 망가뜨리는 크나큰 잘못임을 책의 중간 중간에서 고발하고 있고, 끝머리에서 그 실마리를 푼다. 그것은 학생들의 자율에 획일을 강요하고 있는 중앙 시계탑을 부수는 데 있었다. 그 일이 가능케 된 것은 지하도시 사람들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1구역 상류층에서부터 3구역 하층민의 자녀들 가운데 '시계 모자' 정책에 반대하는 아이들이 합력하여 주도적으로 이룬 쾌거였다.

 

김진경은 왜 이런 소설 작품을 쓰게 된 것일까? 교육부가 교실 속의 아이들에게 정보의 독점과 집중, 그리고 통제 등 일방적인 강요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가 자율적인 주도권을 가져 올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함께 공감해 보고자 함에 있겠고, '소통과 대화'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현 정부와 어른들의 주입식 정책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1구역부터 3구역까지, 아니 지하도시에 속한 중장년층까지도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속살과도 같은 어린 학생들이 신분상승을 위한 입시지옥에 끌려 다닐 게 아니라 자신만의 창의성과 성취욕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어 보려는 의도를 담고자 함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김진경 지음, 문학동네(2009)


태그:#대한민국, #아이들의 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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