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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맞아 운동장에서 기념촬영을 한 부곡초 6학년 남학생
▲ 부곡초 6학년 남학생 개학을 맞아 운동장에서 기념촬영을 한 부곡초 6학년 남학생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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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일간의 긴 방학을 보내고 오늘(2일) 개학을 했다. 반 아이들 스물아홉 모두 건강한 얼굴로 만났다. 그새 부쩍 자랐다. 더러 몸집에 유다르게 변한 아이들도 있고, 몇몇은 머리 모양새를 확 바꾸고 와 새로웠다. 새날 떡국을 먹어서 그런지 말품도 제법 의젓하다. 하지만 녀석들, 마냥 개구쟁이 같은 행동은 더 심해졌다.

“선생님, 이제 보니까 많이 늙으신 것 같아요. 흰머리도 많이 보여 할배같아요.”
“그래? 할배 좋지. 그러면 너희들은 모두 내 손자손녀다. 에끼, 이놈들!”

교실 가득 한바탕 웃음이 까르르 쏟아진다. 이로써 개학을 맞는 첫째시간 우리 반 대면인사는 끝난 셈.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가며 방학동안 인상 깊었던 일이나 특히 재미있었던 일을 들어 봤다. 헌데, 이 녀석들, “선생님, 방학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매일 학원만 다녔는걸요” “차라리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순간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이쯤이면 수습불가다.

부곡초 6학년 여행생들은 10명, 같은 반 남학생은 19명이다.
▲ 부곡초 6학년 여학생 부곡초 6학년 여행생들은 10명, 같은 반 남학생은 19명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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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차분하게 지난 방학생활을 되짚어볼 수 있게 ‘3분 스피치’ 쪽지 글을 썼다. 평소 우리 반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기주장 표현과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대신 표현하는 것이다. 십분 정도 시간을 주었는데도 깨알같이 꼭꼭 눌러 쓴 종이에는 할말이 많다. 그만큼 방학생활에 맺힌 고리가 많은 까닭이다.   
         
둘째시간에는 방학동안 켜켜이 묻어두었던 교실 먼지를 쓸고 털어냈다. 한달 여 동안 문을 꼭 닫아두었기에 퀴퀴한 냄새와 수북한 먼지들로 제법 오랫동안 손을 모아야했다. 이 많은 먼지들이 어디서 왔을까? 아이들과 비질을 하면서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교실하나 다 치우고 나니까 해묵었던 먼지가 종량제 두 봉투를 채우고도 남는다. 아이들도 나도 놀랬다. 발길 닿지 않았던 교실에 이렇게 잡동사니들이 많았을 줄이야!

“방학 시작하면서 교실을 깨끗이 청소했는데 웬 먼지가 이렇게 많을까?”
“선생님, 교탁과 사물함 밑에 먼지가 많은 것 같아요. 교실바닥도 마찬가지에요.”
“창문을 꼭 닫았는데 이렇게 많은 먼지가 날아들었다니 겨울바람이 찬 세게 불었나보구나.”
“방학 때 외갓집에 갔었는데, 빈집으로 뒀다가 새로 쓸려고 청소를 하니까 먼지쓰레기가 한 트럭이나 나왔어요. 할머니는 말씀이 먼지도 자란다고 하대요. 정말이에요?”  

우리 반은 매주 월요일 '3분 스피치'를 마련하고 있다. 오늘 주제는 '나의 방학생활'이다.
▲ 3분 스피치를 쓰고 있는 김나라 우리 반은 매주 월요일 '3분 스피치'를 마련하고 있다. 오늘 주제는 '나의 방학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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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학생활'이 이번 우리 반 3분 스피치 주제다.
▲ '3분 스피치'를 준비하고 있는 김대업 '나의 방학생활'이 이번 우리 반 3분 스피치 주제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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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영 어린이가 3분 스피치를 하고 있다.
▲ 발표 중인 구나영 구나영 어린이가 3분 스피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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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정 어린이가 3분 스피치를 하고 있다.
▲ 발표를 하는 이아정 이아정 어린이가 3분 스피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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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시간에는 첫째시간 말미에 적었던 ‘3분 스피치’ 내용을 발표했다. “저요, 저요!” 먼저 발표하겠다고 손을 높이 드는 아이, 냅다 발표하러 나오는 아이들까지 의욕이 넘쳤다. 아이들의 생동감 있는 온기로 그저 교실 안은 따습다. 순서를 정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생각을 들어본다. 할말이 많다. 아니, 불만스러운 게 많은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긴 방학동안 알게 모르게 아이들이 감당했어야했을 고통이 컸다. 거의 다 힘들었다는 얘기다.

방학동안 알게 모르게 아이들이 감당했어야했을 고통이 커

이아정 어린이가 '나의 방학생활'을 발표하고 있다.
▲ 나의 방학생활 발표 이아정 어린이가 '나의 방학생활'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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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어린이가 '나의 방학생활'을 발표하고 있다.
▲ 발표 중인 김수희 어린이 김수희 어린이가 '나의 방학생활'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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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이처럼 힘든 방학을 보냈을까. 학원과외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공부 탓이다. 어느 아이치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가. 심지어 방학하자마자 기숙학원에 다녔다는 아이도 있다. 대도시도 아닌 면지역(그렇다고 면지역을 폄하하는 의도는 전혀 없음)에도 학원 열풍이 심하게 불고 있다는 것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방학, 그것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만을 따르도록 통제했던 시간이었을 뿐이다!        

나의 방학생활
부곡초 6학년 이○○

이번 방학에는 숙제로 가득 차 있었다.
학원에서도 공부, 집에서도 공부, 움직이면서도 공부만 하였다.
일주일 정도 학원을 다녔을 때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학원 갔다가 바로 숙제를 하여도 새벽 4시였다. 3일 동안 9시간도 못 잔 적도 있었다.
이틀 전에는 학원 숙제 때문에, 어제는 방학 숙제 때문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부산에서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S-M-B 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B반이다. 가장 하급반이다. 하지만 수업은 가장 재미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있으면 M반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나는 거절할 것이다.
여기는 숙제 한 바닥을 안 하면 매가 한 대씩이다.
또 국, 수, 사 과, 영 선생님이 다 다르다. 그런데 선생님 매가 제각각이다.
어떤 선생님은 대나무고, 어떤 선생님은 두껍고, 또 어떤 선생님의 매는 얇다.
때리는 부분도 다르다. 엉덩이, 손바닥, 머리, 종아리까지 다 다르다.
국, 사 선생님은 여자고, 구, 과, 영 선생님은 남자다.
사실 우리 B반 선생님은 착한 분들이어서 우리가 선생님을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B반 선생님은 매가 하늘에서 휜다. 그리고 소리가 명쾌하다.
수학 선생님은 착하고, 과학 선생님은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영어 선생님은 별로 생각이 없다. 
지금 적은 게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은 내가 방학 때 다른 것은 아예 하지 못하고 학원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는 것이다.

방학동안에 나는
부곡초 6학년 김○○

나는 방학동안에 공부만 하는 학원에는 안 다녔다.
하지만 낮에는 내가 할 일을 챙겨서 하고, 저녁에 과외를 가고, 밤에는 아빠와 중학수학을 예습했다.
나는 방학을 놀기만 해서도 안 되고, 죽어라 공부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일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에는 가끔씩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컴퓨터를 했다.
그렇게 생활하니 방학이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나는 잠자는 시간을 줄였다. 12시쯤 자고 아침 6시 반쯤 일어나서 내가 할 걸 했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니 잠이 확 깨어 더 이상 졸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중학생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겠지만 전혀 다르다.
공부할 과목도 많고, 지금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이제 방학이 끝났다.
중학교 때는 보다 열심히 생활해서 꼭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보낸 방학생활
부곡초 6학년 김○○

나는 방학을 잘 보내지 못했다. 너무나 심심했다.
생각해 보면 좋았다는 것보다 지루한 게 더 많았다.
그래서 한 달 이상의 시간 동안 별로 한 게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암울하다.
그러나 그 심심함의 원천은 바로 게임이다. 할 게임이 없으니 심심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있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시간만 흘러갔다.
그렇게 보면 방학동안에 딱히 한 일이 없다.
설날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일도 없었다.
그냥 방에서 컴퓨터나 TV만 보고 있었으니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학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에 따라 즐거울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앞으로의 방학은 조금만 더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나의 이번 겨울 방학은
부곡초 6학년 이○○

오늘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고 개학했다.
방학 때는 학원 때문에 힘들었지만 잘 참아 냈다. 정말 방학만큼은 쉬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번 방학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공부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여유 있게 생활하였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내가 학원을 하나만 다녀도 힘이 드는데, 학원을 세 곳이나 네 곳을 다니는 친구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내가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
이번 방학은 온통 학원 중심이었던 것 같다.
진짜 정말 학원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구속하는 것일까?
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방학 때 한 일이라고는 학원 안 가는 날 울산 할머니 댁에 놀러 간 게 전부다. 매일처럼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방학을 안 하는 게 낫다.
중학교 때 방학은 내가 하고픈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학 중에 있었던 일
부곡초 6학년 김○○

나는 방학 때 많이 놀았다. 그리고 잘 보냈다.
방학 중에 어디 간다고 학원은 절반도 다니지 않았다.
학원에 가지 않아 참 좋았다. 방학 때는 운도 좋게도 설날이 있었다.
하필이면 왜 방학 때 설날이 있었을까? 그렇지만 이번 설날에는 중학교에 간다고 봉투가 두툼했다. 세뱃돈을 받을 때 그 느낌이 아주 좋았다. 나는 그냥 돈을 받을 때보다 봉투로 받을 때가 더 좋았다.
또 설날에는 조카한테 놀러 갔다. 거기 있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방학을 이용해서 얼굴에 점도 뺐다. 안 빼려고 했지만 나중에 커지면 빼기도 힘들다고 얼굴에 있는 점을 네 개나 뺐다. 얼굴도 3일 동안 씻지 말라고 해서 정말 괴로웠다.
또한 이번 방학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여러 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이제 중학교에 올라간다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공부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학 대 이런저런 일을 하며 보냈지만 이번 방학을 참 잘 보낸 것 같다.

기계와 같은 방학생활
부곡초 6학년 박○○

이번 나의 방학생활은 마치 기계처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 운동장에 놀러 가려고 해도 학원가는 시간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학원 시간 때문이다. 2시 50분쯤 학원에 도착해서 먼저 중학수학을 배운다. 수학을 50분 하고나면 바로 영어를 한다. 정말 갑갑하다.
또 영어공부가 끝나면 중학교 배치고사 문제를 푼다. 쉬는 시간은 선생님이 바뀌는 시간뿐이다. 이렇게 빡빡한 수업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가면 또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
그러나 눈은 숙제로 마음은 컴퓨터로 가 버린다. 공부가 안 된다.
이런 생활을 10일 정도 하고나니까 점점 학교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학원 때문에 놀지도 못하고, 편하게 쉬지도 못했고,  어디 다녀온 곳도 없다.
정말 싫다. 내 마음 같아서는 방학동안에는 학원을 끊고 혼자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모처럼 한솥밥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 즐거운 점심시간 모처럼 한솥밥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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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맞아 첫 점심시간이다.
▲ 금식시간 개학을 맞아 첫 점심시간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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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아이들 이야기를 다 들었지만, 그 중에 몇몇 아이들 줄글을 옮겨보았다. 심란하다. 한창 해맑게 자라야할 아이들의 마음에 이렇듯 무거운 짐이 안겨져 있다니! 안타깝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아이들 학원으로 내몬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닌데…’ ‘저 어린 아이들이 방학 동안 얼마나 속상했을까?’ 격앙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녕 담임으로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다독여야 하나?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해하고 보듬어야 하나?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태그:#개학, #방학생활, #3분스피치, #학원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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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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