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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십대는 공부벌레들입니다.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파김치가 될 정도로 열심입니다. 학교에서도 책과 씨름하고, 학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친구들을 짓눌러야 합니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학원이 쇠고랑 없는 감옥과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우리나라 십대가 그토록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는 이유가 뭘까요? 기성세대가 말하는 좋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함입니다. 대기업과 같은 좋은 직장에, 판사와 교수 같은 좋은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것만 획득할 수만 있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거짓과 조작쯤은 얼마든지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손석춘은 그렇게 기성세대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십대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순수에게>를 통해 말을 걸고 있습니다. 이른바 인류사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반을 통해 때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온 여러 집단 지성들을 들추어보면서, 우리의 십대들이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자기 결정권자가 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실 십대들의 체력은 럭비공처럼 혈기왕성합니다. 십대들의 상상력은 제도화된 기성세대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4차원의 생기발랄한 꿈을 꿉니다. 십대들의 사고력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뛰어넘어 옆면의 모서리까지 꿰뚫으려는 속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도화의 틀 속에서 학습하고 사회화 하는 이들이 어떻게 주도권자의 길을 열 수 있는지 입니다.

 

그 길은 비판적 성찰을 하는 십대들만 지닐 수 있는 특권입니다. 비판적 성찰이란 우리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바르게 분별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기 위한 사고입니다. 이 책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우리나라 정부는 30개월 넘는 미국산 쇠고기를 왜 수입하려 했는지, 그것이 우리 사회와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언론들은 과연 진실 되게 보도했는지 등을 따져보는 일입니다.

 

더욱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몇 몇 학자들이 일제 강점기를 통해 우리나라가 근대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퍼트리고, 그것을 책으로까지 펴내려고 안달입니다. 과연 그 같은 일들이 어떤 의도 속에서 나온 일인지 깊이 물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시 '의병'을 '비도(匪徒)'로 표기했던 <독립신문>처럼 엉뚱한 역사 인식만 퍼트릴 게 뻔합니다. 결국 그 같은 일들이 쌓이면 우리의 십대들은 머잖아 정치적인 이용과 선동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10대는 '정치적 이용과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육성의 대상'도 아닙니다. 10대 스스로 선택권을 지니고 자기 결정권, 자기 두 발로 서는 힘을 키워 가야 합니다. 그게 교육이지요. 청소년들의 순수한 촛불을 불순한 시각으로 덧칠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정치적 사고이자 비교육적 행태입니다."(179쪽)

 

손석춘은 이 책에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말한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 또 다른 C, 바로 Creation(창조)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가히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오직 좋은 직장과 좋은 지위만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십대들에게 딱 맞는 제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이 이 책의 갈무리에서는 그 C를 촛불(Candle)에 빗대면서, 그렇게 자발적인 촛불을 든 십대들이 있는 한 우리사회는 자기 주도적인 민주사회를 충분히 열어갈 갈 수 있다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땅의 주류 기성세대와 언론들이 그토록 생기발랄하고 순진무구한 십대들의 싹을 얼마나 틔워주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순수에게 - 십대에게 말 거는 손석춘의 에세이

손석춘 지음, 사계절(2009)


태그:#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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