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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닭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아직 방안이 캄캄하다. 연신 울리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온 기분이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창문을 열었다. 아직 간밤의 어둠이 채 남아 강가를 서성이고 있다. 강 건너 산위에  걸려있는 둥그런 달은 새벽의 어둠을 살포시 밀어내고 강가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새벽에 둥근달이 산위에 그림같이 걸려 있다
▲ 새벽풍경 새벽에 둥근달이 산위에 그림같이 걸려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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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는 하얀 물안개가 신비스럽게 피어오르고, 산위에는 그림같은 둥근 달이 떠 있다. 참으로 보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런 멋진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카메라에 이 근사한 풍경을  담고자 카메라 장비를 챙기다 보니 삼각대가 없다.

아뿔사! 공항에서 잃어버린 가방에 넣어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여러 궁리 끝에 호텔에 있는 의자를 겹쳐 세워서 카메라를 올려놓았다. 그런대로 삼각대를 대신해 줄 것 같다. 카메라 밑에 수건을 놓아 각도를 조절한 다음 촬영을 해보았다. 좀 미흡하지만 다행히 한 두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을 먹기 전, 곤히 자는 아내를 깨워 주변의 산책을 나섰다. 아침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한국에서 입고 온 겨울잠바가 이곳에서도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어느새 산위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달님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산 아래 강변을 따라 길게 걸쳐 있는 안개가 새 아침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아침에 산책 나온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 방비엥은 물놀이하기엔 아주 그만이다. 물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치가 빼어나 배를 타고 송강을 내려오다 보면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다. 이곳에서 카약 일일 투어를 신청하면 매우 저렴하게(약 1만2000원) 카약을 타고 동굴탐험도 하며 즐거운 뱃놀이로 하루를(오전 9시부터 저녁 5시) 보낼 수 있다. 물론 중식도 제공하기 때문에 더없이 부담없는 좋은 투어라 생각한다. 유럽의 젋은이들은 이곳에서 카약과  번지 점프하는 재미에 빠져 온종일 물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지인이 자전거를 끌고 강을 건너고 있다
▲ 강변 현지인이 자전거를 끌고 강을 건너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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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조식으로 쌀국수를 먹었는데 아내가 감탄을 한다. 소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는 마치 설렁탕 국물에 졸깃졸깃한 사리를 넣은 듯 아주 맛이 좋다. 아마 쌀국수는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도 잘 먹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 다양한 현지음식을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먹은 경험으로는 라오스 음식에 향료만 넣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음식과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물과 과일을 챙겨 읍내거리로 나왔다. 물놀이를 할까 했는데 아내가 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 극구 반대를 한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빌려서 시골마을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주변에는 오토바이를 빌리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약 4~5천원이면 하루 종일 빌릴 수 있다. 물론 흥정을 잘하면 좀 더 싸게 빌릴 수 있지만 오토바이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 

길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 귀여운 아이들 길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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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방비엥의 도로를 달린다. 도로에 차가 별로 없기 때문에 오랜만에 타는 오토바이지만 큰 어려움이 없다.

길에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나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싸바이디(안녕)하고 인사를 건네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같이 손을 흔들어 준다.

어떤 아이는 누런 코가 잔뜩 나와 있어 숨쉬기가 곤란할 것처럼 보이나  코맹맹이 소리로 더 크게 싸바이디하며 장난스레 외쳐된다.

그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느새 그들은 차렷 자세로 포즈를 취해준다.  아이들은 내가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는지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는 초콜릿이라도 건네주면 더 신이 난 표정으로 손을 힘차게 흔들어 준다.

낯선 이방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기네 마을에 들어온 것이 신기한 모양인지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본다. 내 어릴 적에도 외국인이 차를 끌고 마을에 나타나면, 그들을 따라 하루 종일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러다가 차가 웅덩이에 빠지면 차를 빼주기 위해 온힘을 다해 밀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이들도 그때의 나와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된다.

집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시골아이들 집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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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에게 줄 작은 선물도 가방에 챙겨 넣었는데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마음만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비록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얼굴도 햇빛에 그을려 까맣지만 그들과 잠시 이야기하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천사 같은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 속에 들어가 같이 웃고 떠들다보면, 오늘 또 여기 천국에 와 있음을 느낀다.
 
길을 따라 한참 더 올라가자 길가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로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었는데, 그 모두가 사람이 재배하지 않고 자연에서 순수하게 자란 자연 그대로의 물건 같다. 크기도 작고 모양이 볼품없어 상품가치가 많이 떨어지는 과일이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쥐고기, 양고기, 뱀고기 등을 좌판에 펼쳐 놓고 팔고 있었는데 제법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마을로 들어가 보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논에는 닭과 돼지들이 한가로이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남자들은 특별이 하는 일이 없는지 그늘에 앉아 잡담을 나누거나 냇가에서 등목을 하며 고기를 잡고 있다. 또한 마을골목에는 병아리와 어미 닭들이 두엄더미를 파헤치며 먹이를 찾고 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 갔는지 아주 어린 꼬마들만이 쫒아 나와 이방인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이곳은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집은 모두가 나무와 나뭇잎으로 지어진 원두막 형태의 집들이었다. 비록 집은 원시 형태의 집이지만 문명은 이곳에도 파고 들어와 접시 안테나가 마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돼지와 닭들만이 집들 사이를 돌아다닐 뿐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
▲ 소떼들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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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마을에서 본 풍경
▲ 시골풍경 어느 시골마을에서 본 풍경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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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처럼 생긴 돼지를 쫒아 올라가자 산길을 따라 어느 여인네가 지게를 지고 내려온다. 지게엔 나무가 실려 있고 어린 꼬마가 따라오고 있다. 젊은 엄마 같은데 무거운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며 카메라를 들이 대니 환한 미소를 보내준다. 이곳도 아마 힘든 일을  남자에 비해 여자들이 많이 하는 모양이다.  방비엥 읍내에서 조금만 시골로 들어가면 현지 말 외에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결국 손짓 발짓으로 간단한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곳 마을의 큰길 앞에서는 귤과 비슷한 과일을 가판대에 차려놓고 부업으로 팔고 있었는데 과일의 형태는 귤과 같으나 탱자 같은 씨가 들어 있으며 맛은 싱거운 귤 맛이 난다. 지나는 관광객이나 도시의 장사꾼들이 가끔 몰려와 한 무더기씩 사가곤 하는데 제법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다.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자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마을 초입부터 특이한 풍경이 눈에 띄는데 어린아이까지 밖에 나와 무엇인가를 열심히 길에다 내려치고 있었다. 갈대 같은 풀을 다듬어서 우리나라 벼를 말리듯이 길에서 널어 말리기도 하고 또 그것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열심히 길에다 내려치고 있었다.

아마 예전에 집집마다 가마니를 만들기 위해 집을 두드리는 풍경과 흡사하다. 무엇에 쓰이는 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지붕을 만드는데 쓰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전 가족이 나서서 매달리는 것을 보니 그들에게는 이것이 가계에 커다란 보탬이 되는 모양이다.

점점 위로 갈수록 산이 깊어진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2시가 지나고 있다. 아침에 준비해온 빵과 과일로 주변의 길가에서 점심을 대신하고 다시 방비엥으로 길을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의 집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을 한구석의 마당에  간간히 당구장이 보이는데 젊은 학생들이 그곳에 모여 게임을 하고 있다. 아마 TV의 영향이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는 소꼴을 베거나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즐길 법한데 마당 한구석에 당구장을 갖다놓고 게임을 하는 모습은 조금 생소하다.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나무사이로 멀리 소떼들이 텅 빈 논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다 . 이곳은 주로 농사를 짓는 농촌지역임에도 여러 마리의 소를 방목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소는 우리나라 소와 생김새가 비슷하나 덩치가 좀 작고 더 여유로워 보인다. 아마 이곳 사람들을 닮은 모양이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 시골학교풍경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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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다
▲ 고무줄놀이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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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학교가 제법 눈에 띈다. 십리마다 학교가 보이는데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학교 앞에는 풀빵장수가 교문을 지키고 서 있고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달려가 군것질을 하고 있다. 시골임에도 곳곳에 학교가 세워져 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니 라오스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아 보인다.  

땅거미가 길어진다. 방비엥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 읍내를 한 바퀴 돌아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서자 피곤이 밀려온다. 오랜만에 오토바이를 탔더니 어깨와 팔이 제법 욱신거린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또 고민해본다. 마음속은 김치 맛이 나는 얼큰한 음식을 요구하지만 머리 속은 현지 음식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두 가지 형태의 음식을 시켜놓고 시끄러운 거리를 바라보니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그 장단에 맞추어 젊은 여행객들이 흥겨운 몸짓을 해대며 서서히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sbs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방비엥, #배낭여행,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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