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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들의 요청에 따라 신랑이 신부에게 뽀뽀를 하고 있다.
▲ 신랑, 신부가 그렇게 예뻐? 하객들의 요청에 따라 신랑이 신부에게 뽀뽀를 하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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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8일) 경기도박물관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당일 박물관에선 종종 열린다는 전통혼례식이 있었는데, 신랑신부가 모두 외국인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결혼하신 지 오래 되신 분들 중에, 결혼기념일을 맞아 이벤트 형식으로 전통혼례를 하시거나, 국제결혼하신 분들 중에 신부가 외국인인 경우 종종 전통혼례를 치르기도 하는데, 이번처럼 두 분이 외국인인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 조꼬 엔드로와 엔다 꾸왙이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서른 살로 동향 사람들인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신랑이 일하던 회사가 1월말까지 휴무하게 되자 결혼식을 올리기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양가 부모님을 모시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에 대해 묻자, “부모님께는 결혼식 사진하고 비디오 보내드리면 되죠. 나중에 인도네시아 가서 결혼식하려면 돈 많이 들어요. 하하”하고 웃는다. 이어 지난해 11월에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신랑 동생이 울산에 있다고 들었는데, 왜 함께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동생은 길도 모르는데, 괜히 고생할까 봐서 오지 말라고 했어요. 설에 쉬는 제가 찾아가면 되죠.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누군들 부모와 가족친지를 모셔놓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을까마는, 아직 한국 물정을 모르는 동생이 혹 불편해할까봐 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에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떠오르며,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마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해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라는 신랑은, 싱글벙글 웃음을 참지 못하는 신부와 달리 결혼식 중간 중간 눈물을 머금은 모습에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결혼식은 상모를 한 풍물패들의 인도를 받은 신랑 입장에 이어 가마를 탄 신부 입장이 있은 후, 양가 혼주를 대신하여 박물관측 도우미들이 초례상 위, 청홍초에 촛불을 밝히면서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이어 관수에 손을 씻어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의식이 있은 후, 신랑 신부의 맞절로 백년가약을 서약하고, 이어 신랑 신부가 앉은 자리에서 잔을 나누어 마시는 합환주 의식이 진행되었다.

양가 부모에 대한 신랑신부의 절은 형편상 생략되고, 하객에 대한 신랑신부의 절이 끝난 후, 주례가 성혼 선포에 앞서 하객들에게 한 가지 주문을 했다. ‘신랑신부에게 덕담을 할 테니, 따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덕담에 객석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하객들은 다들 박장대소하며 자빠지고 말았다. 얌전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신부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주례가 한 덕담은, “아들 딸 열둘 낳고 백년해로 하시오!”였다.

먹고 살기에 빠듯하여 가족계획만이 행복의 지름길인 양, 떠들던 시대를 거쳐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많이 낳자고 하는 게 정부 정책이라지만, 열둘이라니, 이건 순 악담 수준이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70년대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대세였다면, 80년대엔 한 술 더 떠서 “하나 낳고 알뜰살뜰”, “축복 속에 자녀 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하던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입장에서, 최근의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말은 오히려 어색할 정도인데, ‘아들 딸 열둘이라’는 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주례는 아들 딸 열둘의 의미가 단순히 다산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저 자식농사 잘 짓고 새우등처럼 허리가 휠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라고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식이 끝난 후 너나없이 신부에게 “아들 딸 열둘 낳고 백년해로 하시오”라는 인사가 이어졌다. 그 말에 신부는 그저 싱글 벙글이다.

멀리 외국 땅에서 양가 부모 없이 올린 결혼식이지만, 엄숙하면서도 의미있는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태그:#전통혼례, #신랑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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