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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같이 40km를 내달리는 61살의 멋쟁이도 만나...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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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중단을 촉구하는 긴급행동'에 참여했다가, 붉게 물든 국회의사당이 어둠으로 덮히는 낙조를 보며 서강대교를 건너 한강 자전거도로를 타고 집인 인천으로 향했다. 답답한 서울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날도 강바람도 너무 추워 자전거 핸들을 잡은 장갑 낀 손조차 얼어붙을 정도였다. 동상이 걸리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손가락 마디마디의 감각은 전혀 없었다.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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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3시간 약 50km를 달려왔다가 다시 50km를 내달려 돌아가야 하는 밤길은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과 정신을 더욱 지치게 했고,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에 다리까지 풀려 페달을 밟을 힘조차 없었다. 4시간여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아 서강대교 아래서 강바람을 피하며, 집을 나설 때 챙겨온 귤을 2개 벗겨 먹었다. 얼어붙은 마스크를 벗고 차가운 입김으로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귤껍질을 까야 했다.

상큼한 귤즙이 입안에 시원하게 감도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국회의사당, 당산철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안양천 합수부, 가양대교, 방화대교까지 이르는 길에 몇 번이고 멈춰서야 했다. 곱은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꺼내 동작시켜 눈에 들어온 야경을 담으려는 욕심에 그러하기도 했지만, 다리에 힘이 붙지 않아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걷기와 타기를 반복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한강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와 인적조차 드물어 쓸쓸했다.

방화대교에 어렵사리 도착했다.
 방화대교에 어렵사리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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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지쳤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조차 졸음이 쏟아졌다. 자전거 주행 중 졸음운전은 치명적인데, 허기와 추위에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백두산 신병교육대에서 그 추운날 완전군장을 하고 60km 행군을 할 때처럼.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사흘 밤낮을 낙타도 없이 정처없이 걸어야 했던 어떤 행자처럼.  

잠시 쉬어갈 만한 곳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쏟아지는 졸음을 몰아내며, 강서습지 생태공원 입구(방화대교)까지 힘겹게 나아갔다. 그곳에 바로 추위와 갈증, 허기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서강대교에서 방화대교까지 약 12km 차로 12분 거리
 서강대교에서 방화대교까지 약 12km 차로 12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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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자전거도로 끝에 자리한 편의점
 한강 자전거도로 끝에 자리한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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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강대교에서 방화대교까지 약 12km 자동차로 12분거리를, 자전거로 맹추위와 거센 강바람을 뚫고 꽤 오래 걸려 도착했다. 한강에 내려앉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환한 빛줄기를 내뿜고, 따뜻한 열기로 가득차 있는 '오아시스' 편의점에 당도한 것이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자전거를 세워놓고 편의점에 급히 들어가서는 냉동된 몸을 녹이면서 사발면 하나를 샀다. 김밥 한 줄도 생각났지만 보이지 않아 1,200원 하는 사발면 뚜껑을 열고 스프를 넣고 보온통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얼음같던 손가락은 뜨거운 열기에 반응하며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중년의 남녀가 편의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부부인 줄 알았는데 계약직 직원이라 했다. 여름에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겨울에는 조금 한가한 편이라 한다. 그래도 새벽까지 편의점을 찾는 이들이 있다 한다.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가득담고 둥글레차 티백을 넣어두었다.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가득담고 둥글레차 티백을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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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이용객들이 앉아 쉴 수 있게 마련해 둔 발코니에서 전기온열기를 틀어놓고, 둥글레차를 마시며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자전거 타는 것이 즐겁다'는 61살 멋쟁이도 만날 수 있었다. 게 눈 감추듯 사발면을 먹어 치운 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광고업에 종사하는 그는 독산동에서 이곳(강서습지생태공원)까지 40km를 친구들과 함께, 거의 매일같이 자전거로 운동삼아 오간다 했다. 자영업을 하기에 일이 끝나는 오후 4시쯤 자전거를 타고 나온다 했다. 그날은 혼자였는데 날이 추워 친구들은 나오지 않았다 한다. 편의점을 목표로 해서 달려와서는 작은 사발면과 생맥주로 요기와 갈증을 해소한다는 그의 자전거는 무려 천만원짜리였다.

암튼 나같은 가난한 자전거족들도 편히 쉴어 갈 수 있는 편의점에서, 추위와 허기를 물리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참 멋쟁이에게 자전거도로변의 화장실에 가면 추위를 피할 수 있다는 희소식도 전해 듣고는 볼일도 볼겸 인근 화장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자전거 헬멧에 복장까지 대단하다.
 자전거 헬멧에 복장까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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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전거도로, #자전거족, #오아시스,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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