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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손으로 편지를 써본 일 있나요? 연애할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가도, 한해 두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할 정도로 부부 사이에 오가는 편지는 사라집니다. 물론 우리 부부는 지금도 손으로 편지를 쓴다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1997년 결혼했으니 햇수로 열두 해가 되었습니다. 연애가 아니라 중매 결혼을 했기에 아내에게 연애 편지를 써 본 일이 없습니다. 말도 없고, 성격도 조용한 편이라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 따뜻한 남편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결국 매주 한 번씩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한 번씩 빼먹는 일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씁니다.

아내에게 한 번씩 묻습니다.

"내가 먼저 가면 섭섭하고 심심해서 무슨 일 하면서 살 거요?"
"당신이 내게 보낸 편지 읽으면서 살지요."

"편지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내가 먼저 가면 읽어요, 태워버리면 되지."
"어떻게 이것을 태워요. 당신이 내게 보낸 가장 귀하고 귀한 선물인데."

아내에게 4절지로 된 색 한지에 2시간에 걸쳐 쓴 편지입니다
 아내에게 4절지로 된 색 한지에 2시간에 걸쳐 쓴 편지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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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낳은 후 어머님이 아내 몸조리를 봐주셨습니다. 장모님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어머니 사랑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 하루도 떨어져 생활하지 않아, 서로 힘들었지요.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색깔있는 한지에 썼습니다. 크기는 4절지입니다. 2시간을 썼습니다.

"당신의 크신 사랑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 당신이 나에게 주는 사랑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하나님께서 육신 장막을 거둘 때까지 나는 따라가지 못할 것이요."

아내가 이 편지를 읽으면서 하루 종일 울었답니다. 아내 울음을 멈추게 하느라 어머니와 동생이 혼이 났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4절지 두 장을 썼습니다.
 이번에는 4절지 두 장을 썼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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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4절지 두 장을 썼습니다. 하루 종일 쓴 것 같습니다. 4절지 두 장을 손으로 쓰면 손가락이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경, 당신은 하얀 아름다움입니다. 작은 얼굴에서 나오는 웃음은 내 마음을 가장 여리게 합니다. 당신의 뽀얀 뺨은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당신은 가시덤불 속에 핀 나리꽃입니다. "

아내가 쑥스럽다는 표정입니다. 손으로 쓰는 편지가 힘들지만 다 쓰고 나면 정말 기쁩니다. 인터넷 메일로 보내는 편지도 의미가 있지만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는 비교할 수 없겠지요. 4절지 한 장에 2시간은 걸립니다. 힘들어 A4 용지로 바꾸었습니다. 앞뒤로 쓰면 할 말을 다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컴퓨터로 써보기도 했지만 손 편지보다는 느낌이 강하지 않았고, 왠지 섭섭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손으로 쓰면 힘들지만 아내가 손글 편지를 원하니 어찌할 도리가 있습니까? 아내 원하는 대로 해야지요. 색깔있는 한지와 A4 용지가 아니라 옛날 편지지에 쓰는 재미도 있습니다. 요즘은 아주 좋은 편지지도 많지만, 옛날 편지지가 아직은 좋습니다. 아내도 좋아합니다.

아내에게 손으로 쓰는 편지는 정말 멋집니다
 아내에게 손으로 쓰는 편지는 정말 멋집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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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 하나 있지요. 그럼 아내에게 몇 번 편지를 받았을까요? 첫 아이 출산 후 어머니 집에서 몸조리 하면서 쓴 편지 한 번입니다.

섭섭한 것은 없습니다. 몇 글자 적힌 편지보다 더 큰 사랑을 나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세상을 놓는 날이 오겠지요. 누가 먼저 세상을 놓을지 모르지만 매주 쓰는 편지는 먼저 떠난 이와 사랑을 이어주는 고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면서 얼마 있지 않으면 떠난 이를 만나기 위한 준비물입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한 번씩 손글 편지를 쓰는 일도 기쁜 일입니다. 20분 걸린 편지 한 장으로 한 주를 편안하게 사는 삶의 지혜랍니다.

컴퓨터로 편지 썼지만 손으로 쓴 편지보다는 깊이가 없었습니다.
 컴퓨터로 편지 썼지만 손으로 쓴 편지보다는 깊이가 없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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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편지지보다는 옛날 편지지에 쓰는 것도 재미 있습니다
 예쁜 편지지보다는 옛날 편지지에 쓰는 것도 재미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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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내, #편지, #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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