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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간절곶에 가면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쓴다.
▲ 간절곶 소망우체통 누구나 간절곶에 가면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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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새해는 아내랑 포항 호미곶에서 맞았다. 그날 지독하게 차가 밀렸다. 날씨는 또한 얼마나 추웠던지.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찾아간 해맞이, 일순간 발갛게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몰렸다. 하지만 불끈 솟는 해를 맞은 것은 실로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한해 소원을 얘기했다.

"올핸 당신이 나로 하여금 행복했으면 좋겠소."
"당신도 건강하고, 지금처럼 든든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우리 부부의 바람은 늘 소소한 것이다. 소원을 비는 것은 꼭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것보다 실행 과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렇게 한해를 신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올해는 정초 해맞이를 하러 가지 않았다. 차 밀려 오도 가도 못하는 고통을 감수하기에 자신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우리 부부의 바람은 늘 소소한 것이다

간절곶 등대에서 내려다 본 소망우체통
 간절곶 등대에서 내려다 본 소망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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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우체통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표지판
 소망우체통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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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지난 3일 울산 울주군 간절곶에 해맞이 하러 갔다. 소요함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간절곶은 월래 기장 감포의 오밀조밀한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데 그동안 좀처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주말이라 부산시내를 거치는 데만 시간소요가 많았다. 지하철공사로 만덕터널부터 반송에 이르는 곳곳에 병목현상이 심했다. 창녕에서 간절곶까지 네 시간이나 걸렸다.

동해바다는 확 트여 언제나 찾아도 시원하다. 바다를 보자 그동안 일상에 파묻혀 잊고 지냈던 역마살이 살살 돋았다. 스쳐 지나는 풍경들에 의미부여를 해봤다.

"여보, 당신이 태어나줘서 고맙고, 나를 사랑해 줘서 감사해.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서 행복해. 콩깍지가 씌었다고 해도 좋아. 난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그래요. 우린 참 좋은 인연으로 만나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어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저 또한 당신과 사랑 나눌 수 있어 감사해요." 

이번 여행은 아내 귀 빠진 날을 축하하는 자리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댄다. 덕분에 길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간절곶이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간절곶 등대는 그 역사가 오미곶 등대만큼이나 오래됐다.
▲ 간절곶 등대 간절곶 등대는 그 역사가 오미곶 등대만큼이나 오래됐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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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 해맞이 공원에 도착하니 세시였다. 주말 오후라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곳곳에 신년 해맞이 행사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참가자 모두가 떡국을 맛보았다는 대형천막이 광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간절곶이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들목 곳곳에다 커다란 안내판을 자랑삼아 모셔 두고 있었다.

"간절곶에서 만나는 최고의 풍광은 해맞이가 아닌교, 그런데 저기 보이소예. 우체통이 보이는교? 큰 글씨로 '소망우체통'이라 써놨지예. 크지예? 물론 우체통이야 우체국 앞이나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교. 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것이든 크기나 모양, 색깔이 똑같다 아입니꺼. 그렇지만 간절곶 '소망우체통'은 다르지예. 보시다시피 무척 큰기라커대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큰 우체통이라 캅디더."

그녀는 무슨 소망을 쓰고 있는 것일까?
▲ 소망 편지를 쓰고 있는 탐방객 그녀는 무슨 소망을 쓰고 있는 것일까?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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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체통 안에 안 들어가봤지예. 거기 들어가면 간절곶 일출을 배경으로 한 무료 소망엽서가 있어예. 울산시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성취하고, 그것을 여럿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마련했다 아잉교. 한 사람당 한 장씩만 사용해야 소원을 이룬다고 하대예. 욕심 내면 벌 받는다 아잉교." 

소망 우체통 앞에서 길거리 카페를 열고 있는 김무성(45·진하리)씨가 전해 준 말이다. 등대 마당에서 내려다볼 때는 그냥 바닷가에 우체통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 우체통은 2006년 말 간절곶 등대 앞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높이가 무려 5m나 된다. 근데, 디자인과 색상은 지금의 우체통과 다르다. 몸체는 초록색이고 머리만 빨간색이다.

또한 우체통과 우체국마크가 바뀌기 전의 모습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향수 불러일으키는 명물

간절한 소망을 담아 쓰는 우편엽서
▲ 소망우편엽서 간절한 소망을 담아 쓰는 우편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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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은 캐나다 벤쿠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광주시 광산구가 높이 6m, 세로 3m나 되는 초대형 우체통을 만들어 기네스북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고 한다.

다만 세계 최고, 최대라면 그 무엇도 다 해내고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급성'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곳의 또 하나의 명물인 소망우체통. 반갑다. 웬걸, 가까이 다가섰더니 담대한 규모에 기가 질린다. 뒤편으로 돌아가 보니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안에는 엽서와 필기도구가 두 곳에 마련돼 있어 소망과 안부를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다.

엽서 앞면에는 간절곶 해맞이 풍경을 담았다. 근데, 무료다. 이렇게 써서 우체통에 넣어놓으면 하루 한번 꼭꼭 수거해서 수신자에게 보내 준다고 한다. 참으로 마음이 흐뭇해지는 배려였다. 누가 이렇게 좋은 발상을 했을까? 

'저 소망우체통에 엽서를 쓰면 내가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보낼 수 있을까? 내 마음속의 편지는 언제 저 소망우체통을 통해 보낼 수 있을까?'

간절곶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등대로 해맞이 명소로 포항 호미곶과 정동진에 버금가는 장소다. 하지만 길손이 생각하기엔 이렇듯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가 '간절곶'이란 이름값만큼이나 소망우체통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곳에 들르는 사람마다 우체통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이 없어 보였고, 대부분 우체통 안으로 들어가 엽서 한 장씩을 갖고 나와 정말이지 오랜만에 편지를 쓰느라 손길이 바쁘다. 길손도 근래 편지를 써 본 기억이 뜸하다.

소망우체통 안에는 길손들을 위한 편지쓰기 자료가 비치돼 있다.
▲ 우체통 안 소망우체통 안에는 길손들을 위한 편지쓰기 자료가 비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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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 안에는 엽서로 못다 한 사연들이 빼곡이 쓰여 있다.
▲ 소망우체통 안의 낙서들 우체통 안에는 엽서로 못다 한 사연들이 빼곡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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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으로 해맞이 왔다는 김유라씨가 소망편지를 쓰고 있다.
▲ 소망엽서를 쓰고 있는 김유라씨 간절곶으로 해맞이 왔다는 김유라씨가 소망편지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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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랑 새해맞이 하러 왔다가 진하해수욕장에서 오는 중이에요. 커다란 소망우체통이 너무 인상적이네요. 어쩜 저렇게 큰 우체통을 이곳 바닷가에 세웠을까 싶어요. 감동적이에요. 그래서 같이 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새해 소망을 담은 엽서를 쓰고 있어요. 마치 내가 소망을 전하는 천사 같아요. 재밌어요."

소망우체통 한쪽에서 우편엽서를 쓰고 있던 김유라(21·서울 신대방동)씨의 감동받은 얘기다. 엽서를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퍽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다. 누구나 간절곶을 찾으면 소망우체통에다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담은 편지를 쓰리라.

누구나 간절곶에 가면 간절해진다

간절곶에서 맞이한 아침 해맞이
 간절곶에서 맞이한 아침 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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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아내도 상기된 표정으로 우편엽서를 쓰겠다며 우체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내 아내는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나왔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엽서가 없단다. 아뿔싸! 그새 비치해 둔 엽서가 바닥이 난 것이다! 못내 아쉬워하는 아내의 섭섭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나? 어깨를 다독이며 위안해 줬다. 고운 마음을 마음으로 담아 보내자고 하면서.

간절곶 전망대에 섰다. 널따란 바다를 배경으로 주변 풍광이 멋들어지고 도드라져 보인다. 동해바다가 하얀 파도를 들썩이고 있다. 오늘 하루는 이곳 바닷가에서 머물기로 했다. 아침 해돋이를 지켜보기 위함이다. 진하해수욕장에 인접한 호텔 갤럭시에 여장을 풀었다.


태그:#간절곶, #소망우체통, #해맞이공원, #우편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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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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