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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말리아. 아빠는 너희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너희를 사랑한단다. 너희는 우리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갈 새 강아지를 얻게 될 거야."

지난 11월 4일 저녁,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벌어진 당선 축하집회에서 "헬로, 시카고"로 시작되는 유명한 당선 연설을 하면서 개 이야기를 했다.

오바마는 당선 후 가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개 문제를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퍼스트 도그에 대한 질문에서 이렇게 답한 것이다.

"어떤 개를 데려올 것이냐는 것이 현재 중요한 이슈다. 개 선택과 관련하여 두 가지 조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고 한다. 첫째는 큰 딸 말리아가 개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개를 선택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소에 있는 개를 데려오려고 한다."

보호소에 있는 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오바마는 그 개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잡종(mutt)'이라는 말을 했다. 즉 혼혈 출신인 자신의 배경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오바마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게 될 퍼스트 도그. 과연 어떤 개가 그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인가. 오바마 말대로 보호소 출신 개가 퍼스트 도그가 될 수 있을까. 주인 잃은 개, 버려진 개를 보호하고 있는 미국의 견공 보호소를 찾아가 봤다.

버려진 동물, 최고로 대접 받아요

라킹햄, 해리슨버그 동물 학대 방지 협회인 SPCA.
 라킹햄, 해리슨버그 동물 학대 방지 협회인 SPCA.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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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동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하여. 캐빈 & 아브라 레이"

미국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에 있는 동물학대 방지협회인 SPCA(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이 건물 앞에는 SPCA에 기부금을 낸 '캐빈 & 아브라 레이'의 이름이 적힌 동판이 붙어있다. 바로 이 동판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주인 잃은 동물, 버려진 동물을 보호하고 있는 동물 보호소, 동물 쉼터다.

부모를 잃은 아이나 버려진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고아원처럼 이곳 역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동물,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동물은 다 모여 있다. 개, 고양이, 토끼, 햄스터, 게르빌 등.

SPCA에는 개, 고양이, 토끼, 햄스터, 게르빌 등이 있다.
 SPCA에는 개, 고양이, 토끼, 햄스터, 게르빌 등이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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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금요일. 이 날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많이 떨어진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SPCA 주차장에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꽤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과 동물 입양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다.

자원봉사자들은 개나 고양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켜주는 일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갇힌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자원봉사자를 셋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직업을 아이 돌보는 내니(nanny)라고 소개한 베스. 개를 무척 사랑하는 베스는 자신이 돌봐야 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먼저 이곳부터 찾는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베스는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개를 입양하기도 했다.


아이 돌보는 내니(nanny)가 직업인 자원봉사자 베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아와 개와 놀기도 하고 산책도 한다.
 아이 돌보는 내니(nanny)가 직업인 자원봉사자 베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아와 개와 놀기도 하고 산책도 한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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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에 있는 동물을 아기처럼 안고 다니는 자원봉사자를 많이 볼 수 있다.
 보호소에 있는 동물을 아기처럼 안고 다니는 자원봉사자를 많이 볼 수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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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 옆에는 애완동물이 받게 될 크리스마스 선물이 쌓여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는 애완동물이 받게 될 크리스마스 선물이 쌓여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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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A  안내 데스크 앞에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이곳에 있는 동물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 마치 어린 아이들에게 주려고 준비해 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쌓여 있었다.

개, 고양이 먹이, 비스켓, 간식, 장난감, 놀이 기구, 방석, 침대 등.

안내 데스크에는 이들 동물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 목록(wish list)도 비치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물들은 사람과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대접을 받는 것 같았다.

이곳에 수용된 애완동물들을 취재하기 위해 라킹햄 해리슨버그 SPCA 총감독인 앤 앤더슨을 만났다.

"라킹햄 해리슨버그 SPCA는 1972년 8월에 문을 연 공공기관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서죠. 이곳의 사명은 모든 동물에 대한 존중과 애정, 훈련, 지원을 증진함으로써 그들에게 인도적이고 지속적인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SPCA에서는 동물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주인 잃은 동물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을 먹여줍니다. 씻겨 주고, 안아 주고, 운동도 시켜주지요. 바로 이런 식으로 동물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주인이 나타나서 찾아가 주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입양을 시키기 위해 정식으로 우리 시설에 수용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 밖에 동물 알레르기가 있거나 이사를 가게 되어 키울 수 없게 된 동물들을 맡아 수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개나 고양이가 주인에 의해 버려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보호소가 필요한 거죠."

자원봉사자로 일하다가 전직까지 한 샬로트

기자가 처음 SPCA 안으로 들어 왔을 때 좀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개, 고양이, 토끼, 햄스터 등의 우리가 바로 이 건물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자원봉사자들은 매년 500명에서 800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수가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처음 이곳을 취재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맨 먼저 눈에 띈 사람이 있었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고양이를 안을 뿐만 아니라 연신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을 고양이에 부비면서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영락없이 아이를 안고 달래주는 모습이었다.

자원봉사자로 SPCA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직원 샬로트(52)는 동물이 좋아 아예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동물을 돌보는 일은 대단히 보람있는 일이에요.”
 자원봉사자로 SPCA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직원 샬로트(52)는 동물이 좋아 아예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동물을 돌보는 일은 대단히 보람있는 일이에요.”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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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아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무섭기는요. 얼마나 귀여운데요. 아주 사랑스럽고 예뻐요."

52살인 샬로트는 이곳에서 일한 지 6개월 된 직원이다. 그녀가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부터였다. 건물 관리인으로 일을 했었던 샬로트는 이곳에 직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곧 바로 '전직'을 했다.

고양이, 개 등을 좋아하는 샬로트로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결단이었다. 그녀는 이미 이곳에서 개와 고양이를 각각 한 마리씩 입양하기도 했다.

"동물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을 돌보는 일은 대단히 보람 있습니다. 제가 입양한 고양이도 실은 제가 처음 만났을 때 많이 아팠던 고양이였는데 이곳에서 회복이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돌보는 동안 정이 많이 들어 제가 입양을 했지요. 이런 일이 얼마나 보람있는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온 가족이 자원봉사를 해요"

샬로트와 헤어져 복도로 다시 나왔을 때 이번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세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행복해 하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학생 아닌가요?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홈스쿨링을 해요."

엄마 마셀라(38)는 잭(8), 션(11)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개 한 마리를 입양했다.
 엄마 마셀라(38)는 잭(8), 션(11)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개 한 마리를 입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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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과 션은 고양이를 친구삼아 안아주고 토닥이면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잭과 션은 고양이를 친구삼아 안아주고 토닥이면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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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잭과 11살 션은 전직 교사인 엄마 마셀라(38)의 지도로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책상머리에서 하는 공부보다 어쩌면 이런 현장 체험 학습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하여 고양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개와 산책을 하기도 한다. 이미 이곳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개 한 마리를 입양한 마셀라 가족은 자신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을 매주 돌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나 좀 데려가 줘요

"나 좀 데려가 줘요.” 모든 개가 문쪽으로 시선을 모은 채 짖고 있다.
 "나 좀 데려가 줘요.” 모든 개가 문쪽으로 시선을 모은 채 짖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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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고양이, 토끼 등이 있던 방을 지나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몸집이 큰 개들이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이들은 문소리를 듣고 일제히 시선을 문 쪽을 향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난히 눈길을 끄는 개가 있었다. 바로 말리였다. 말리는 기자가 들어왔을 때 목이 터져라 짖어대면서 천장을 향해 계속 뛰던 개였다. 여러 차례 높이뛰기를 하던 말리는 지칠 법도 했건만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사력을 다해 제자리 높이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제 이름은 말리입니다."
 “제 이름은 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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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제 이름은 말리입니다. 저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동작이 굼뜨지는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장애 때문에 저를 멀리하지는 마십시오."

나중에서야 기자는 말리 앞에 놓인 쪽지를 보고 그가 앞이 안 보이는 장애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눈 주위에도 상처가 있었고. 그래서 더욱 사람의 정이 그립고,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일까.

큰 개들이 갇힌 우리 밖에는 이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아름다운 음악도 틀어놓았다. 하지만 좋은 음악도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만은 못한 듯 우리 안에 갇힌 개들은 더욱 큰 소리로 짖어댔다.

어쩌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눈에 들어 따뜻한 가정으로 입양되기를 원하기 때문인 듯도 했고, 아니면 저들을 버린 인간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그렇게 무섭게 짖어대고 있는 듯도 했다.

우리 안에 갇힌 개의 정서를 위해 항상 음악을 틀어 놓는다.
 우리 안에 갇힌 개의 정서를 위해 항상 음악을 틀어 놓는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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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동물우리를 다 비우는 것!

이곳 SPCA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사랑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수용된 동물 입장에서 본다면 이곳은 온전한 가정이 아니고 그저 공동생활을 하는 하나의 '시설'일 뿐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사랑 역시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도 있고. 

그런 까닭에 이곳에 수용된 동물들의 최종 목표는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이었다. 이곳 총 감독인 앤의 설명이다.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이 각 가정으로 모두 입양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일부 우리들은 비어 있는데 저기 보이는 빈 우리처럼 동물들이 다시 우리를 차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 동물들이 모두 입양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여기 보이는 빈 우리처럼 모든 우리가 다 비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 동물들이 모두 입양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여기 보이는 빈 우리처럼 모든 우리가 다 비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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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버려진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는 SPCA에서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보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나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모두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는 동물을 각 가정에 입양 보낼 때에도 '입양할 동물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 동물이 입양할 가족에게 적합한지, 장기적으로 그 의무를 다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동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이곳 인터뷰 실에서 꼼꼼한 인터뷰를 거치게 된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이곳 인터뷰 실에서 꼼꼼한 인터뷰를 거치게 된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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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 안 남은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 애견가들의 관심은 여전히 퍼스트 도그에 있다. 과연 오바마는 어떤 종류의 개를 퍼스트 도그로 지명할 것인가. 오바마는 그가 첫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대로 보호소 출신의 잡종 개를 퍼스트 도그로 지명할 것인가. 애견가와 호사가들의 관심은 여전히 오바마네 개에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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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애완동물, #동물학대 방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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