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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과 타임머신 

[내가 본 총파업①] MBC 예능국 <우리 결혼했어요> 오윤환 PD 

 

저는 웬만해선 내복을 입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좋아하는 옆자리 짝꿍 여자아이에게 바지 밑단과 양말 사이의 살색 내복을 들킨 이후로 내복을 입지 않은 지 벌써 20년 넘게 지났습니다. 심지어 한 겨울에 야외촬영이 있을 때에도 입지 않았습니다. 왜냐? 요즘말로 간지가 안 나기 때문이지요. 내복을 입으면 바지라인도 살짝 더부룩하니 이상해지고, 셔츠 목 부분 위로 내복이 보이기라도 하면 공들여서 코디한 나의 완벽한 패션에 오점이 되고 맙니다. 이 시대의 패션 트렌드와 세련된 유머의 가치를 선도해야할 '럭셔리판타스틱' 예능PD로서 내복은 멀리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끔찍합니다.

 

그런 제가! 지금 하늘색 내복을 입고 총파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왜냐? 우라지게 춥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간지고 트렌드고 뭐고 해도 추위에는 장사가 없었습니다. 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이 있던 날, 집에서 내복을 껴입을 때만 해도 투덜거렸습니다. 불만이 많았습니다. 부끄러움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 … 이 정부와 한나라당은 왜 나에게 내복을 입게 하는가…' 그러나 이게 웬 걸? 내복을 입으니 예상외로 따뜻했습니다. 그 순간 내복을 멀리하던 제자신이 얼마나 창피하던지…. 내복에게 미안했습니다. 허영과 헛된 간지로 가득찬 제 된장남 같은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그 순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원망도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긍정적이고 건전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감동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복을 입는 순간 초등학교 5학년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짜릿한 기분!!! 어린 시절 영화 <빽 투 더 퓨처>를 보고 항상 마음 한켠에 꿈으로 품어왔던 타임머신. 그 꿈이 2008년 지금 이루어진 것입니다. 비록 로또 번호를 알아내거나 할 수는 없지만, 내복 하나로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멋집니다.

 

언론노조 총파업이 이제 5일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언론자유의 위기와 소통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사회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예능국 노조원들 역시 자유로운 창의력이 행여나 자본에 의해 억압받지는 않을까?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새롭고 기발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정치풍자나 시사풍자 프로그램은 아예 꿈도 못 꾸는 것 아닐까 하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나쁜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작지만 소중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저는 이번 총파업을 통해 내복을 입게 되었고, 타임머신 타고 2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볼 수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EACE!!!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 

[내가 본 총파업①] KBS 김경래 기자 

 

KBS는 언론노조를 탈퇴했다. 조합원의 총의를 모은 결과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언론노조'를 탈퇴한 것이 KBS노조가 '언론' 노조이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파업은 할 수 없다'는 현 KBS 노조위원장의 인터뷰를 신문지면에서 접한 뒤에는 KBS 노조는 '언론'노조이기를 포기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언론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연대의식도 없다. 정권과 조중동의 방송 장악, 재벌의 방송 사유화에 대한 최소한의 위기의식도 없다. 동료들이 파업을 하고, 길바닥에서 농성을 벌여도 그저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할 뿐이다. 진정 '정치적'인 정권의 방송 장악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이 돼도 거기에 반대하는 것은 역시 '정치적'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뻔뻔한 이율배반과 자기 부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끄럽다. 사력을 다해 방송의 공적인 가치를 지키는 동료들을 보면서, 우리 KBS는, 나의 자랑스러운 KBS는 정권과 함께 '법과 질서'를 합창하고 있다.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MBC지 우리가 아니라면서 방관하고 있다. 우리에게 칼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연주 사장의 해임에서 눈엣가시 같은 프로그램들의 폐지, 방송을 장악하려는 법과 제도의 완비…. 정권은 출범 이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냉정하게 방송 장악을 진행하고 있다. 방송에서 공공적인 가치를 몰아내고 전면적인 시장을 도입하고 있다. MBC민영화, KBS 2TV 분리 민영화를 우려하는 게 결코 기우가 아니다.

 

누구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MBC는 자기 밥그릇을 위해서 싸우는데 우리가 왜 부화뇌동하느냐고 냉소한다. 광고로 운영되는 MBC를 민영화시키면 KBS의 공영성이 더욱 확고해 질 것이라고 설득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정말 MBC는 공영 방송이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없는가.

 

정말 MBC가 민영화되면 KBS는 진정한 공영방송이 될 수 있는가. MBC 민영화 다음에는 KBS에 대한 예산 장악, KBS2TV 분리라는 카드가 나온다는 것을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우리는 기계적 중립이라는 구시대적 방패 뒤에 숨어서 행동하는 지성을 거세당했다. 머리는 지나치게 차갑고, 심장과 열정은 모두 박동을 멈춰버렸다.

 

KBS 후배 기자들이 노조에 동조 파업을 촉구하는 실명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를 발표하면 뭐하냐는 냉철한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의 '뒷담화'일 뿐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냉소는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들을 위한 수사였다. 역사는 행동하는 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반대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이병순 사장 취임을 반대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미디어포커스> 폐지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부끄럽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치가 떨린다.

 

언론 악법 저지에 나서며...

[내가 본 총파업③]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PD저널>로부터 언론노조 총파업과 관련한 글을 써달라는 요구를 받고 어떤 내용을 써야할까 고민을 했다. 독자들께 인상이 남을 무엇인가를 담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쉽사리 글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르긴 해도 원고 청탁을 받은 이들 중 가장 늦게 원고를 보내는 장본인이 나이리라.

 

나는 방금 언론노조 2차 총파업 결의대회에 다녀왔다. 여의도 국회 앞 아스팔트에 수십 명의 조합원들, 수천 명의 언론 동지들을 남겨두고 원고를 쓰기 위해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미안함과 더 늦을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가 교차하던 그 순간까지도 글의 소재를 잡지 못하다가 문득 택시 앞 유리를 가득 채운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국회의사당! 이제부터 나는 언론 악법 저지라는 주제를 국회의사당이라는 소재에 엮어 글을 쓰려 한다.

 

우리는 국회의사당에 얽힌 군사기밀(?) 하나를 알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국회의사당 돔이 열리고 거기서 마징가 제트가 솟아오른다는 황당한 속설이다. 현재 국회는 전시이다. 정부 여당의 고위 인사들 스스로 전시임을 공언한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 다시 말해 국민이며 의사당 돔은 국민의 머리이다. 돔이 열린다? 국민의 머리가 열린다? 한마디로 국민이 열 받아 시쳇말로 '뚜껑 열린다'는 뜻이다. 거기서 마징가 제트가 솟아오른다? 마징가 제트는 일본 로봇이니 로봇 태권V로 하자.

 

언론 악법 등 무수한 악법을 둘러싼 전쟁 통에 국민이 열 받아 뚜껑이 열리고 거기서 로봇 태권V가 솟아오른다는 이야기로 세간의 속설을 재구성 해본다. 아무리 속설이라지만 속설이 만들어지는 데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 터이다. 국회 돔 안에 마징가 제트 숨겨져 있다는 속설에는 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에 대한 바람이 담겨져 있으리라. 내가 재구성한 로봇 태권V 이야기에는 국민의 뜻을 관철해 줄 강력한 힘이 절실하다는 의미를 담고 싶다.

 

자, 그렇다면 과연 누가 로봇 태권V가 되어 열 받은 국민의 머리로부터 솟아올라 적의 가슴팍에 강력한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전광석화 같은 돌려차기로 관자놀이를 강타할 것인가? 우선 언론인들이 로봇 태권V가 되겠노라 선언하며 총파업 투쟁에 나섰다.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도 그동안의 실망을 털겠다며 배수진을 쳤다니 로봇 태권V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하겠다.

 

언론계와 야권, 이 둘은 공통점이 있다. 주인이 국민이며, 늘 주인인 국민의 소리를 중히 들어 이를 알리고 관철해내야 하는 소명을 지닌다. 그러나 소명에 충실했다고 스스로도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믿어 달라 한다. 국민이 기회를 준다. 믿어 보겠다고 한다. 국민은 지금 열 받아 뚜껑을 열어둘 터이니 나와 보라 한다. 무엇이 나올지 국민은 궁금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혹시 태권V 대신 깡통 로봇이 나오면 어쩌나?

 

언론과 야권 모두 국민에 잘 보일 기회를 어렵게 잡고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론인인 나부터도 반성하고, 결의하며 투쟁의 대오를 굳게 지키려 한다. 태권V여, 솟구쳐다오!

 

 

밥그릇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내가 본 총파업④] 박재철 CBS FM <오미희의 행복한 동행> PD 

 

적잖은 이가 밥그릇 싸움이라고 냉소한다. 모든 것이 다 시장으로 내몰리는 판국에 왜 방송만 열외가 돼야 하느냐고 묻는다. 재벌이 방송하면 공정성은 뒷전일 거라는 예단은 국민을 졸로 보는 처사가 아니냐고도 반문한다. 신규 진출자들을 향해 여론 독과점화 운운하지만 현재 소수 지상파들이 사실상 여론을 독과점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잠시 말문이 막힌다. 어디선가 봤던 설익은 말들만이 입속을 맴돈다. 미디어 관련법을 왜 거부해야 되는지를 곰곰이 궁리해보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앞선다. 모든 궁리가 그렇듯 궁리의 끝은 자신의 한계다. 그 한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직하고 옳은 일이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거부하는 일이 밥그릇 싸움일까? 미디어 종사자로서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어떨까. 밥그릇만을 위한 싸움일까? 만약 밥그릇만을 위한 싸움이라면 여느 방송국처럼 CBS는 적극 개입이 아닌 관망을 택했어야 한다. 검찰마저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이런 파업은 누가 봐도 밥그릇을 걷어차는 행위지 밥그릇을 지키는 행위는 아니다.

 

왜 방송만 시장의 압력에서 열외가 되어야 하는가? 열외시켜 달라는 것이 아니다. 때론 그 시장의 압력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가려보자고 나서는 존재가 필요함을 말하기 위함이다. 방송도 시장 안에 있다. 하지만 본질상 때론 시장과 싸우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존재는 시장의 건전성면에서도 필요하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언론이 나서기 전에 그 일을 먼저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방송 통신은 경제 논리로 봐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사실 이 대통령이 경제 논리 말고 다른 각도에서 해법을 내놓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재벌이 방송하면 공정성은 끝장날 것이라는 판단은? 미래의 일을 단언한다면 그건 정말 바보거나 신이다. 혹시 모른다. 앞으로 공정성을 비교우위에 놓고 재벌이나 족벌 언론이 경쟁할는지도. 그러나 사람의 일은 개연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또한 우린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중앙일보와 삼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상파 방송을 한다면? 더 이상의 언급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판단은 상식에 맡기자.

 

그렇다면 독과점 부분은? 소위 조중동은 겸업 허용 논리로 현재의 상황을 지상파 독과점 체제라 지적한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의 겸업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박 용어로 격벽이라는 것이 있다. 배 밑바닥의 칸막이벽이다. 격벽은 선체의 일부가 침수해도 다른 부분의 침수를 막아 선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종의 안전판이다. 현재 신문과 방송은 길항관계에 있다. 갈등하면서도 동행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신문과 방송 사이에 격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방송이 독과점의 폐해를 낳고 있다면 신문은 끊임없이 그것을 비판하고 공론화하면 된다. 방송에 구멍이 뚫렸다고 신문마저 침수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같이 죽는 건 전우애가 있을 때나 빛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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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PD저널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태그:#언론노조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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