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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촌(山村)엔 눈이 한 번 쌓이면 녹을 줄 모른다. 눈은 오는 대로 쌓이고 쌓여 장설(丈雪)로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나 돼야 해토를 하며 몸을 풀어 내린다. 돌각 담 너머로 눈 쌓인 산골짝과 들판을 바라보니 올해도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순백에서 오는 고독과 맑은 영혼, 산을 넘고 하늘에 닿는다. 갑자기 하얀 설움과 적막감 같은 것이 북 바쳐 오른다. 그 동안 가졌던 모든 것과 가지려 했던 것,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과 내안에 품고 있던 번뇌 망상 등 어지러운 것들이 용해되어 눈밭을 달리고 있다.

 

 

오늘따라 얼음 속을 뚫고 낮은 곳으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시냇물 소리가 시리게 와 닿는다. 저녁햇살아래 다소곳 누워있는 처마 밑으론 키가 삐죽 자라난 고드름이 대롱대롱 매달려 눈물雪水 툭툭 흘리고, 하얀 속살 아래로 어린 시절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수수께끼 하나낼까?’

‘어려운 거 쉬운 거.'

‘아주 쉬운 걸로.'

‘크면 클수록 키가 작아지는 건 뭐.’

‘….’

 

 

봉당과 앞마당을 서성이다 눈 덮인 텃밭과 장독대와 김치광을 기웃거리며  뒤 곁을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장독들은 ‘제 맛 하나’를 위해 자신을 통째로 드러내놓고도 눈을 맞으며 묵묵히 서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켜켜이 쌓인 눈발 위에 한 영혼이 서있다.

돌아보면 한 해를 지나온 발자국만 남아 가슴이 저려온다.

 

창고에 그득한 감자와 고구마, 구덩이 속 무 배추, 봉당에 장작 비늘, 뒤 곁 시래기들, 이만하면 한 해를 보내도 아쉬움이 없을 듯하고….

 

 

처마 밑 대봉 곶감, 곰삭은 김치, 여름에 숨겨 논 매실주가 한참 익어가고 있다. 이런 날엔

친구 하나 찾아오면 참 좋겠다. 내 그를 위해 황토방 군불 때 아랫목이 절절하는 동안 많은 눈 또 내려 푹푹 쌓이면 더 좋겠다.

 

 

무슨 인연으로 마당가 산수유는 아직도 열매를 털어내지 못하고 붉은 마음을 쏟아내고 있을까.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에서일까.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을게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나 거스르지 말며 나도 봄을 기다릴 수밖에….

덧붙이는 글 | 무자년 한 해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독자님들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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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저무는 산촌 풍경, #그드름, #장독대, #시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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