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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잠화
 옥잠화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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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나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가 며칠 앞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발끝이 저려 오면 시리게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옥잠화(玉簪花)입니다. 모양새가 옥비녀를 닮았다하여 부르는 이름입니다. 밤에 피기 시작해 새벽녘에 마무리를 합니다. 음력 열나흘 달빛 아래 바라보는 꽃빛은 우아하다 못해 처연해 보입니다. 새벽이면 세수를 끝내고 손을 털며 아침밥 지으러 나오는 여인처럼 맑은 향을 풍겨냅니다. 마치 이 세상 쓴맛 단맛을 다 겪어낸 중년 여인의 뒷모습 그대로입니다. 화사한 모양새나 요란한 몸치장이 없어도 여름과 가을을 어우르며 다소곳이 피어납니다.

 옥잠화, 저릿저릿 저려오는 옥잠화의 우아한 자태, '선녀의 향내'가 물컥 배어나...
 옥잠화, 저릿저릿 저려오는 옥잠화의 우아한 자태, '선녀의 향내'가 물컥 배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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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는 신라 때부터 여인들의 장신구로 유행을 하다 영조 때 일반화 되었습니다. 왕비나 귀족들은 금 은 옥으로, 서민들은 나무 뿔 뼈를 깎아 비녀로 사용하였습니다. 한복에는 역시 쪽을 찌고 비녀를 꼽은 머리래야 여성의 미가 한결 풍겨납니다. 가르마를 타고 쪽을 찐 단아한 여인의 모습, 고운 치마 저고리에서 배어나는 부드러운 선, 비단결 같은 머리에서 느슨하게 풍겨나는 소박미는 한국 여인들만이 갖고 있는 여백미의 극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초록의 옥잠화 잎
 연초록의 옥잠화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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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잠화는 8월부터 9월까지 피다가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백합화, 옥비녀, 백학석이라고도 부르며 꽃말은 '추억'입니다.

오랜 옛날, 중국 석주 땅에 '짱'이라는 젊은이가 살았습니다. 짱은 어려서부터 피리를 잘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짱을 '피리 부는 사나이'라 했습니다. 밤마다 정자에 앉아 피리를 불곤 했는데, 그때마다 강물이 춤을 추고 지나던 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곤 했습니다. 달나라 선녀가 청아한 소리에 반해 정자로 내려와 함께 밤을 새웠습니다. 새벽닭이 울자 선녀는 달나라로 떠나고자 했습니다. 짱은 선녀에게 정표를 하나 남기고 가라 했습니다. 선녀가 끼고 있던 옥비녀를 빼 건네는 순간 땅에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다음해 그 자리에 하얀 꽃이 피어났으니 옥잠화였습니다.

 옥잠화보다 일찍 피고 보라색이다.
 옥잠화보다 일찍 피고 보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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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마당가 귀퉁이에 피어나는 '옥잠화와 말을 걸기' 위해 저녁에 한 번, 새벽에 또 한 번 마당가를 서성입니다. 마침 음력 열사흘 밝은 달이 피어오르면, 선뜻선뜻 저려오는 밤공기 때문에 향기가 더욱 그윽하기만 합니다. 옥잠화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우아하다는 표현이 더욱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아카시아나 칡꽃처럼 관능적이진 않지만 깊이 있는 꽃 향이 품위를 한결 더 높여줍니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서 풍겨내는 깊고 그윽한 향기는 '선녀의 향기'그대로입니다.

 옥잠화 줄기를 잘라 맑은 햇살을 쏘이며 생옥잠 비녀를 만들어 보았다.
 옥잠화 줄기를 잘라 맑은 햇살을 쏘이며 생옥잠 비녀를 만들어 보았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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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세상을 떠나버린 우리 누나는 옥잠화 냄새를 퍽이나 좋아했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먼저 간 누나를 떠올리고 영혼을 일으켜 세우며 가을을 맞이합니다. 어릴 적 누나는 해맑은 웃음, 하얀 숨소리 그대로였습니다. 간간이 스쳐가는 밤바람 사이로 '누나'하고 불러보지만 아주 먼 곳에 계십니다.

 옥잠화는 고단한 인생역정을 겪어낸 중년여인의 모습 그대로다.
 옥잠화는 고단한 인생역정을 겪어낸 중년여인의 모습 그대로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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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잠화 향기에 취해 은하수 물결 따라 집을 나서다 돌아와 곁에 앉아 또 냄새를 맡아봅니다. '누나야, 옥잠화 냄새 좋다'더니 어쩌다 혼자 남아 꽃 비녀 뒷모습만 바라보게 하는가. 여름의 끝자락을 넘어가는 가을하늘이 점점 더 높아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윤희경 기자는 올 4월에 포토에세이 '그리운 것들은 샄 밑에 있다.'를 펴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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