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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실 마을에서 나와 봉화터미널로 돌아왔다. 목적지는 춘양면. 바로 오늘의 숙소인 만산고택으로 향하기 위함이다. 만산고택은 조선 말기 문신인 만산 강용(1846~1934)이 고종 15년(1878)에 지었다고 한다. 세워진 지 130년이 지난 것이다. 과연 130년을 견디어 낸 고택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증을 안고 떠나는 길. 130년 간 쌓아 온 세월의 내공이 내 몸을 포근하게 휘감아 여행길에 지친 발을 토닥거려 줄 그 곳, 만산고택으로 떠나는 길이다.

 

시골 버스터미널의 ‘책 자판기’, 신선함

 

 

만산고택에 가기 위해 춘양면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시간이 조금 남아 고속터미널 안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책 자판기가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제법 괜찮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곳에서는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몇 권 가져 오지 않았다면, 이런 곳에서 책을 사서 여행 중에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버스터미널이라는 특성을 잘 이해해 이동 중에 읽을 만한 얇은 두께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교통카드로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춘양면은 봉화면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봉화면에서의 첫 느낌이 완전 오지로 알고 있었던 것보다는 어느 정도 개발된 곳이었다면, 춘양면이 주는 첫 느낌은 호젓하고 정갈한, 완연한 시골 풍경이었다.

 

춘양면에 들어섰을 때 처음 눈에 띈 것은 시장 간판에 보이는 ‘억지춘양’이라는 말이었다. 나중에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께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나라 최오지인 춘양에 백중석과 춘양목을 개발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억지로 철길을 놓아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서당’이 눈에 띄었다. 호젓한 시골길에 어울리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기차가 달리는 소리가 풍경에 리듬감을 더해주고 그 리듬에 발맞춰 걷다 보니 드디어 만산고택에 도착했다.

 

 

130년의 내공, 만산고택

 

 

행랑채 가운데 솟아 있는 솟을대문에서부터 세월의 풍취와 사대부의 고아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솟을대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넓은 사랑 마당이 있고 정면에 사랑채가 보인다. 미리 연락을 드리고 가서인지 들어가서 ‘계세요?’하자마자 종부께서 나오셔서 반겨 주신다. 하루 전에 연락을 하고 왔으면 군불을 때워 놨을 텐데 아직 방이 차다고 걱정하시며 방을 안내해 주셨다.

 

 

별당에서 고적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혼자 간 터라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서실에서 하루를 묵었다. 만산 선생께서 망국의 한을 달래며 학문에 힘쓰셨을 방에 들어서 앉으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안고 차분히 만산고택을 구석구석 살피며, 세월의 더께를 잠시나마 더듬어 보았다.

 

여행길의 여유로운 저녁식사

 

 

혼자 온 여행이라 될 수 있는 한 아끼며 돌아 다녔지만 어찌 여행에 식도락이 빠질까. 마을을 돌아다니다 순대국밥 집을 찾아 들어갔다. 잡내가 전혀 없는 깔끔한 국물에 뚝배기 가득 담겨 있는 고기들이 시골의 인심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반주 한잔 기울이며,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맛보는 저녁은 여행의 하루를 화룡점정하는 멋진 식사였다.

 

뜻하지 않은 인연, 끈이 이어지다

 

식사를 마치니 이미 사위가 어둑해졌다. 어둠에 휩싸여 어슴푸레 보이는 만산고택의 모습은 또 다른 멋이 있었다. 그 고적함을 깨기 싫어 푸른 어둠처럼 스며들어가 방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고 있으니 누군가 방문을 두들기신다.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만산고택과 봉화 지역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대학 은사님과 안면이 있으셨다. 은사님께서 이곳에 묵으시고 친분을 맺어 아들 분 결혼식에까지 참석하셨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밤을 밝혔다.

 

주인 어르신은 만산고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중에는 별당에 묵고 있던 외국인 부부까지 부르셔서 술자리를 펴 주셨다. 짧은 영어로 외국인 부부들과 주인 어르신을 통역해 주며, 때론 몸짓과 의성어를 섞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인연의 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한다.

 

 

여행길에서 하루를 돌아보다

 

잘 쉬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방에 혼자 남아 여행길을 반추하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각박하고 빠른 콘크리트 박스 속의 생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자연 속에 흙, 나무, 바람과 벗하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여유, 자연’ 이 세 지가 오늘 하루 여행길에서 얻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내일은 소금강으로 불리는 청량산이다. 아마 좀 더 활기찬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들뜨는 마음을 오늘 얻은 여유로 가라앉히며 잠자리에 들었다.

 

만산고택 소개글

 

이 가옥은 조선 말기의 문신인 만산 강용 선생이 건립하였다. 정면 11칸의 긴 행랑채 중앙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 마당 서쪽에 사랑채와 안채가 연접하여 □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고, 좌측에 서당을 우측에는 별도의 담장을 돌리고 별당을 배치하여 사대부집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중문은 정면을 피하고 측면에서 ㄹ형으로 꺾어져 들어가도록 하여 사대부 집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채의 전면에는 ‘만산’이라 쓴 대원군의 친필편액이 걸려있다. 만산 선생은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으나 1905년 이후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며 자택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국운회복의 념을 읊었다 한다.

 


태그:#봉화, #만산고택, #춘양, #겨울여행,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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