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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의 집을 나와 조금만 돌아가면 청량사가 나온다. 청량사가 눈에 들어오니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께서 다시 자신이 왜 강박사로 불리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시기 시작했다.

“청량사가 신라 문무왕 3년엔가 원효대사께서 세우신 천년 고찰이여. 여를 멀리서 보면 청량산에 있는 봉우리들이 연꽃 모양을 띄고 있어. 저 짝에 축융봉에 가가 보면 그거이 잘 보이는디 그 딱 중간에 이 청량사가 있는기라.”

청량사 전경 파노라마
 청량사 전경 파노라마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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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도 봉우리들에 폭 둘러 싸인 모습이 아담하면서도 주변 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치 있는 듯 마는 듯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어르신께서 계속 설명을 이어 가신다.

“원래는 청량사, 연대사 고찰이랑 망선암 뭐 등등 30개 가까이 되는 암자들이 있어서 여가 신라시대 불교의 요람이었다고. 청량사도 엄청나게 큰 대찰이었지. 그러던 것이 조선 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도 있고, 또 선비들, 그것도 당대의 석학들이 청량산을 많이 찾으면서 유교 관련 유적들이 많이 생겨났지. 그러면서 청량사 규모도 많이 줄었어.”

산세에 폭 파묻힌 모습이 멀리서 앙증맞게 보인다.
▲ 청량사 전경 산세에 폭 파묻힌 모습이 멀리서 앙증맞게 보인다.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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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의 청량사만 봐서는 대찰이었다는 예전의 규모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옛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암자에서 독경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온 산을 독경 소리로 뒤덮었다고 한다. 그래서 약초꾼들도 산에 들기 전에 꼭 기도를 올리고 산에 올랐을 정도라고 한다.

경내로 들어가자 커다란 소나무와 석탑이 눈에 띈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저 소나무가 청량사를 지을 당시 짐을 지고 산을 올랐던 소가 죽어 묻힌 자리에서 난 소나무라고 하셨다.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지을 당시 산 아래 마을에서 광포하게 날뛰는 뿔이 세 개 달린 소 한 마리를 시주 받았는데 원효대사가 끌고 와 법문을 읊어주니 순해져서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한다. 공사가 끝나고 바로 쓰러져 숨을 거뒀는데 절 앞에 묻자 그 자리에서 소나무가 나와 굵은 가지가 세 갈래로 갈라져 자라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나무를 삼각우총 혹은 삼각우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원효대사에 감화된 뿔 셋 달린 소가 묻힌 곳
▲ 삼각우송 원효대사에 감화된 뿔 셋 달린 소가 묻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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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를 지나자 생각보다 길이 험해졌다. 속으로 들어가니 그 높이에 비해 청량산은 의외의 산세를 보여주었다. 젊은 사람이랑 같이 가서 그런지 왠지 힘이 나신다는 어르신의 발걸음은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긴 현수교라는 하늘다리를 볼 생각에 힘들지만 힘차게 발걸음을 놀렸다.

걷다 보면 다리가 미세하게 출렁거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구름을 걷는 기분이다.
▲ 하늘다리 걷다 보면 다리가 미세하게 출렁거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구름을 걷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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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늘다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봉우리 두 개를 연결하고 있는 하늘다리는 다리 밖에서 봐도 아찔함을 전해 주었다. 조금은 긴장된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전경. 낙동강이 수줍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전경. 낙동강이 수줍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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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리 위에서 보는 풍광은 아찔함보다는 장엄함으로 다가왔다. 산세 끄트머리에 홀로 떨어져 나간 외로운 봉우리, 그 위에 친구가 되어준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저 멀리 인사를 하며 돌아나가는 낙동강 줄기까지, 잠시 멍하니 하늘다리 위에 서 있으니 아까의 아찔함은 온데 간데 없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경사가 자못 아찔하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경사가 자못 아찔하다.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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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리를 건너 약 10여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면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에 오른다. 정상에서 바라본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나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골 마을들의 풍경은 그것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을 자꾸 잡아 챘다. 자꾸만 느려지는 발걸음에 다시 하늘다리 부근으로 와서 쉬어가기로 했다.
  
하산길 발길을 느려지게 하는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
 하산길 발길을 느려지게 하는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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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쉬며 물을 마시려고 가방에 매달아 놓았던 물통을 꺼내는데 물이 다 얼어서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물이 얼어 있는 것을 본 데다가 잠깐 쉬어 땀이 식으니 추위가 실감이 났다. 이런 추위 때문인지 내려가다가 본 얼음 빙벽도 굉장했었다. 인공이라는 말을 들으니 감동은 반감되었지만, 그 모양이나 크기와 빙벽 위에 서 있는 노송 한 그루는 정말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하늘다리 가는 길 물이 꽁꽁 얼었다.
 다시 하늘다리 가는 길 물이 꽁꽁 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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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서 만산고택 어르신과 식사를 같이 하려고 하였으나, 아쉽게도 시간이 맞질 않아서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어르신께서는 들어가시면서 다음에는 참한 처자랑 같이 오라는 축복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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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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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봉화 가는 길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이제 서울 가는 길이 그리고 새로운 나의 인생의 길이 펼쳐지리라.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대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 가는 새로운 길이다. 북적대는 여름의 해변가에서는, 번쩍이는 도심의 유흥가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얻은 나의 봉화 가는 길이었다.


태그:#봉화군, #청량산, #청량사, #하늘다리, #얼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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