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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파트 내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영화 <마파도> 중에서.
 갑자기 아파트 내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영화 <마파도> 중에서.
ⓒ 마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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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큰아이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이 네시 반이라,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나선다. 그날도 1층에 내렸는데, 1층에 사시는 팔순은 넘으신 듯한 할머니 한 분이 현관문을 여는 키를 작동시키지 못해서 낑낑거리고 계셨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2년 남짓이라, 현관문에 자석 키를 갖다 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전자식 도어록이 설치돼 있다. 할머니께서는 손잡이에 설치된 도어록에 자석 키를 갖대 대어도 문이 열리지 않자, "아니 이게 왜 안 열리나"라며 혼잣말을 하고 계셨던 것.

내가 다가가서 "이렇게 키를 대시면 열려요"라고 알려드리자, 할머니는 부끄러우신지 "고맙다"는 말을 하시고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한편으로는 낯선 나를 경계하시는 눈치시다. 나도 요즘 신세대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잡기 어려운데 팔순 노인은 오죽하시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 직후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앞 동으로 나 있는 인도를 걸어가시는 또 다른 할머니 한 분과 옆 동으로 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갑자기 '아니, 우리 동네에 이렇게 할머니들이 많으셨나?'하는 생각과 함께 '600세대 밖에 안 되는 이 좁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할머니들은 도대체 뭘 하며 소일거리를 하시나' 싶었다.

아파트 단지 내 할머니들을 보면서 우리 할머니 생각 나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 할머니들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19일) 또 비슷한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집을 나서다가 무심코 지날 수 없는 풍경을 보았다.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을 여럿 보게 된 것이다. 앞 동으로 천천히 걸어가시는 할머니, 옆 동에 들어가시는 할머니, 또 다른 동을 향해 가시는 할머니 등…. 마치 내가 사는 아파트가 할머니들만 살고 있는 아파트인 것처럼, 길가에 나이 지긋하신 분들만 계셨다.

알고 보니 이 할머니들은 모두 우리 집 앞에 있는 관리동 1층 노인정에 계시다가 나오는 것이었다. 매일 같이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시다가 노인정이 문을 닫는 오후 5시가 되면 느릿느릿 구부정한 걸음으로 각자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시는 할머니들. '온종일 노인정에 앉아서 할머니들은 뭘 하며 지내실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바로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다. 내 친정 쪽 조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친할머니 한 분이 살아 계시는데, 현재 가족들과 가까이 있는 괜찮은 노인 요양시설에 계시다. 시설에서 운동과 식사, 목욕 등은 모두 해주고, 가족들이 자주 방문하니 별 걱정 없고 지낼 만하시다. 거기서 친구도 사귀시고 그럭저럭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는 편이다.

내가 떠올린 분은 친정쪽이 아니라 시가 쪽, 그러니까 내 남편의 외할머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외손자 며느리인 나를 예쁘게 봐 주셨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을 갈아타며 김치를 담아 오시는 할머니. 용돈 한 번 크게 못 드리는데도, 내가 아이를 낳자 누구보다 먼저 내복이며, 기저귀 등을 사들고 오셔서는 아기 얼굴을 내내 들여다보시고 웃으시던 할머니다.

내가 결혼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몸이 건강하셔서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예뻐하던 손자들도 어느덧 다들 자라서 올해 군대에 갔다. 그나마 손자들 돌봐주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던 할머니 일거리가 크게 준 것이다. 게다가 몸도 예전 같지 않으셔서 귀도 어두워지고, 깔끔한 성격에 손수 하시는 청소나 음식 만드는 일을 하는 것도 이제는 힘겨워하시는 듯했다.

이렇게 되니 집안에 틀어박히셔서 텔레비전 리모콘만 붙들고 앉아계시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돼 버리셨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이런 할머니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불만이 되었다. 할머니 자신도 별 필요 없는 존재임이 화가 나는지 짜증도 느시고 가족들에게 심한 소리도 많이 하시게 되어 가족들 간에 불화가 조금 생기기까지 했다.

이런 할머니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그나마 아파트 단지에 있는 노인정이다. 정정하실 때만 해도 노인정에 가시라고 하면 "늙은이들이 모여서 쓸데없는 수다 떠는 꼴 보기 싫다"고 하시며 완강히 부정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일을 계기로 노인정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출퇴근을 하신다.

외로운 섬 같은 아파트 생활, 노인정이 유일한 낙

아파트에서 할머니들은 섬과 같다. 어떻게 배려해야 할까. 다큐멘터리 <봄이오면>(Waiting for Spring) 중에서.
 아파트에서 할머니들은 섬과 같다. 어떻게 배려해야 할까. 다큐멘터리 <봄이오면>(Waiting for Spring) 중에서.
ⓒ 봄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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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노인정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일거리가 느셨다. 할머니는 떡집 하는 딸을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노인정 친구분들에게 드린다고 떡을 자주 해달라고 하신다. 워낙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 성품을 아시는 어머니는 조금은 귀찮아 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노인정에서 소일거리라도 찾으시니 다행이라며 좋아하신다. 그나마 그 낙이라도 있으시니 가족들에게 잔소리 안 하시고 즐겁게 사시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할머니를 만나 노인정 얘기를 들어 보면 우리 아줌마들 사는 모습과 똑같다. 누구네 며느리가 돈을 잘 번다더라, 누구는 땅이 많다더라, 어느 집 아들이 핸드폰 사업을 크게 한다는 등 온 동네 소식은 노인정에 다 모이는 듯하다. 우리 할머니도 가끔 효자 아들 자랑, 솜씨 좋은 딸 자랑, 멋진 손주 자랑을 하며 즐거워하시는 눈치다.

또 한편으로는 노인정에 모이시는 할머니들 간에 서로 귀도 어둡고 두뇌 회전도 퇴화된 상태에서 의사소통이나 제대로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저 '나이듦'과 '외로운 섬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친구를 맺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우리 주변에 팔순 노인의 모습은 대체로 어떠한가? 노동력을 상실하고 기력이 쇠하며 가치 판단이 흐려져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노인들. 이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처해야만 할 운명의 한 조각이 아닐까.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이들은 분명히 내게는 닥치지 않길 바라지만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미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아파트와 같은 공공주택 노인들의 복지는?

이제 예순 여덟이 되시는 내 친정아버지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일흔 다섯까지 살다가 아프지 않고 잠자듯이 세상 떠나는 게 가장 큰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아버지도 늙는구나' 싶어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 말이 참 공감간다.

노령화 사회가 되어 노년 인구가 늘면서 국가․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우려와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노인 복지 시설의 확충과 연금 제도 확립, 노인 노동 인구의 증원 등 표면적인 여러 제도들은 점차 선진국 문화를 따라가는 듯하다.

문제는 이런 여러 방편들이 과연 우리 문화에 적합하게 잘 적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우리 가정은 노인을 모시고 사는 문화가 강하다. 나이 들어 홀로된 부모를 모시고 사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 등의 공동 주택에 거주하거나 복잡한 도시에 살고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과연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까?

거동이 불편하고 차량 등의 편의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인들은 아무리 노인복지회관에서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좋은 운동 프로그램을 들여와도 쉽게 나가기가 어렵다. 이제야 예순이 되시는 내 시어머니만 하더라도 우리 집에 오셨다가 "아파트에서 (안 살아봐서 그런지) 좀 멀리 나가면 다시 제대로 찾아오지 못할까 겁날 때도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물며 팔순 노인들은 오죽하랴.

현재 구청이나 동사무소와 같은 공공 기관에서는 다양한 노인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왕 노인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라면 선뜻 집에서 멀리 나서지 못하는 노인분들을 위해서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요 며칠 동안 계속 할머니들을 마주치면서 매일 같이 쳇바퀴 돌듯 노인정으로 출퇴근하시는 할머니들의 365일 똑같은 일상을 그냥 방치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만 하다. 아들 며느리는 출근해서 돈 버느라 바쁘고, 손주들은 학교에 나가서 없는 외로운 하루하루. 텅 빈 방안, 썰렁한 집, 아파트라는 '고립된 섬'에 갇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쓸쓸한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태그:#노인복지, #노인정, #아파트, #자화상,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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