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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맑고 파란 하늘을 본 게 죄인가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배운 그대로 했을 뿐인데."
"우리 쌤이랑만 공부하고 싶어요."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아이들이 외치는 간절한 바람이 들린다. 엊그제같이 헤헤거리며 함께 했던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아이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마음의 상처는 심하게 받지 않았을까? 가슴 아픈 일이다.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니 콧날이 시큰해진다. 전혀 남의 일 같지 않다. 종일토록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먹먹했다. 내 반 아이들도 6학년이다.

퇴근해서 신문기사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아이들 눈빛이 유난히 맑고 초롱초롱했기 때문이다. 그래, 저처럼 순수한 아이들의 간절함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은 알고 있다, 선생님과 맑고 파란 하늘을 보았다는 것을. 평소 배운 대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근데, 선생님은 그 일로 하여 아이들 곁을 떠나야 한다. 아이들은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도.

아이들의 순수한 바람을 외면하는 사람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놀랐을 텐데도 열서너 살 어린이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차다. 옳지 않은 일에 당당하게 나서는 아이들 모습이 여간 자랑스럽지 않다. 그러나 다른 지면으로 눈을 옮기자 뜨악한 모습의 사진을 만났다. 똑같은 정황을 두고 전혀 딴판이다. 이 얼마나 고소한 일이냐며 희희낙락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제고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해당 교사를 마치 파렴치범인양 호들갑을 떤다. 달갑잖다. 기사내용을 훑어보니 당초 해당 학반 교사의 의도와는 상당히 와전되고 곡해된 부분이 많았다.

해당 교사들을 두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실정법에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교사들은 양심과 소신에 따라서 학생과 학부모님들 선택권을 배려해서 한 일이었다. 그것이 '파면'이고 '해임'이라면 부당하다 못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물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고 서울에서는 서울교육법에 따라야 한다고 하면 할 말 없다만, 그래도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아는가? 교사에 있어 파면 해임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김윤주 교사에 대한 부당징계를 철회하라는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는 학부모들
▲ 현수막을 든 학부모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김윤주 교사에 대한 부당징계를 철회하라는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는 학부모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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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의 처사를 동조하기는커녕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바로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학부모들이 현수막을 들고 피케팅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학부모들이라면 당연히 일제고사를 선호하는 게 아닐까? 정녕 교사들이 일제고사를 빌미로 아이들을 저당 잡은 것이라면 학부모들이 먼저 분개하고 나서지 않았을까?

학부모들이 현수막을 들고 피케팅에 나서고 있다

근데도 살을 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학부모들은 "학부모 선택권을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죄 없는 우리 선생님을 돌려 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더구나 학부모 어느 누구도 해당 교사들이 강제로 일제고사를 거부하도록 협박하거나 강요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물론 교사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서둘러 해당 교사들을 파면 해임한 처사가 실정법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 서울시교육청은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을까. 나 역시도 그날 만감이 교차되었다. 교육현장과 학부모들의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교육당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수없이 고민했다. 아마 드러내놓고 행동하거나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어도 대한민국 40만 교사들이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우리 교육이 점수화 서열화에 편승해서 일부계층을 위한 줄 세우기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한다. 교육은 단순한 수치개념으로 정할 상품이 아니다. 그동안 일파만파로 불거졌던 우리교육 문제는 무엇에 기인한 것이었나? 오직 시험으로만 치달았던 성적제일주의 신화와 대학입시위주에만 치우쳤던 교육병폐 때문이었다. 이미 공룡처럼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의 폐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살려내고, 학부모들의 학습 선택권을 지켜내고자 했던 선생님이 얼토당토않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우리교육의 문제는 무엇에 기인한 것이었나

시험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아이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시험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낀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한데도 왜 말갛게 없어진 유령 같은 시험을, 그것도 전국일제고사를 부활하려고 할까. 기득권을 위한 들러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단정하면 너무 좁은 생각일까. 애써 일제고사를 보겠다는 것은 결국 교육 역시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아버리겠다는 것 아닐까 싶다. 왜냐? 자꾸만 시험을 치루면 그만큼 사교육 시장은 넓어지니까.

김윤주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얼싸안고 있다.
▲ 일제고사로 부당징계 당한 김윤주 교사 김윤주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얼싸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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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진을 들여다본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선생님을 지켜내기 위한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안타깝다. 그렇지만 자랑스럽다. 학교 동료 선생님들도 존경스럽다. 부당한 징계에 대한 그들의 몸짓이 당장에는 나비 날개 짓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게 저기 태평양을 다 휘몰아칠 만큼 세찬 바람으로 뭉쳐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땅의 교사로 사는 게 이다지도 힘겨운 걸까

하지만 이제는 단순하게 해당 교사들이 왜 파면 해임의 징계를 받아야했는지의 문제를 성토할 때가 아니다. 반드시 가늠해야 할 것은 그렇게 처신할 만큼 합당한 법리를 밝혀내는 일이다. 문제 본질을 잘못 짚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사태는 분명 건전치 못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또 다시 19년 전 '참교육 열망'을 외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냥 거리로 내몰린 교사들을 보는 듯 가슴이 아리다. 정말 이 땅의 교사로 사는 게 이다지도 힘겨운 걸까. 거리로 내몰린 선생님들은 언제쯤 다시 반 아이들을 만날까. 아이들은 저렇게 쌤이랑 공부하고 싶다는데.          


태그:#일제고사, #파면, #해임, #부당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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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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