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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초입에서


길의 의미들은 언제나 많은 영감을 안겨 준다.
▲ 닭실 마을 사이에 나 있는 소로 길의 의미들은 언제나 많은 영감을 안겨 준다.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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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사람들에게 굉장히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서로 다른 상반된 이미지를 함께 견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길이란 것이 바로 그러하다. 길이란 역사를 의미하기도 미래를 의미하기도 하며, 만남과 헤어짐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기도 하다. 부여되는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다. 같은 길이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이 누군가에게는 퇴근길이 되기도 하며, 학생들에게는 등·하교길이,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우정의 길이 될 터이다.

필자가 이번에 봉화로 가는 길은 여행길이다. 무엇을 얻어 올, 혹은 비우고 올 길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또한 혼자서 떠나는 조금은 쓸쓸한 길이기는 하지만, 여행길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설렘을 선사하는 길임은 분명하다. 혼자 걷는 길이 주는 약간의 쓸쓸함과 설렘을 안고 가는 길 이제 시작이다.

넓은 버스에서 홀로, 그러나 함께

경상북도 봉화로 가는 버스는 하루 6번 있다.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하는 봉화행 버스에 몸을 싣자 텅 빈 버스가 필자를 반긴다.


출발한 뒤에 찍은 사진인데 텅 비어 있다. 덕분에 필자는 기사님과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
▲ 봉화 가는 버스 출발한 뒤에 찍은 사진인데 텅 비어 있다. 덕분에 필자는 기사님과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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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하기 5분 전 까지도 더 이상 버스에 오르는 손님이 없자 버스 기사님께서 은근슬쩍 옆에 와 앉으시며 말을 건넨다.

“이 추운데 뭐 하러 봉화엘 가?” “그냥 여기저기 걸으며 구경 좀 하려구요”로 시작된 대화가 길어져 차 출발 시간이 5분이나 늦어졌다. 다른 기사 분에게 한 말씀을 듣고서야 뒤늦게 출발한 봉화행 버스에 탄 손님이라곤 필자뿐이다. 이런 저런 세상 얘기에 괜스레 들떠서 버스를 전세 낸 기분이라고 말했더니 기사님 표정이 갑자기 굳으신다.

손님이 없어서 직장에서 해고될 판이라는 것이다. 불황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약간 울적해진 마음을 차창 밖 풍경으로 달래며, 차에 오르기 전에 산 찐 옥수수로 허기를 달랬다. 차창 밖 풍경이 물려질 즈음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다시 마음을 다독이며 봉화 가는 길을 차분히 밟고 있었다.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타는데 기사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말동무나 하며 가자 하신다. 아까 남은 옥수수를 털어 기사님 입에 넣어 드리며, 다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3시간 넘게 걸리는 봉화도 성큼 다가와 있었다. 잘 구경하라는 기사님의 인사를 뒤로 드디어 봉화에 발을 내딛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허름한 터미널 건물이 나를 반긴다. 드디어 봉화다.
▲ 봉화군버스터미널 버스에서 내리자 허름한 터미널 건물이 나를 반긴다. 드디어 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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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실 마을 가는, 길을 걷다

산골 오지마을로 알려진 봉화는 생각보다는 현대화된 마을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시장골목과 잘 지어진 봉화군청이나 학교 건물이 주변의 시골풍경과 잘 어울려 색다른 멋을 내고 있었다.

봉화는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현대식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봉화군 현대식 건물들 봉화는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현대식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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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봉화 군청에 들러 정보를 얻기로 했다. 군청에서 여러 안내 책자들을 챙기고 친절하신 직원 분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 본 뒤, 전체적으로 계획을 한 번 점검하고 다시 내려와 닭실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어르신들이 버스에 올라 타시며 서로 인사를 하기 바쁘시다. 이 정겨운 모습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어르신들은 버스에 타면서 모든 분들께 한 번씩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 시골버스의 풍경 어르신들은 버스에 타면서 모든 분들께 한 번씩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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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들어 버스가 가는 시골길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할지 확인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앞으로 가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오호 통재라!’ 이미 한참을 지나 왔단다. 하지만 글자 하나만 바꾸면 그것은 ‘오호 선재라!’ 시원한 바람과 추수가 끝난 논의 풍경을 배경 삼아 나는 유유자적 걷기 시작했다. 이 느긋함이야 말로 내가 도시를 홀로 벗어난 이유가 아니었던가.

ⓒ 손병옥

길이란, 아이가 자라는 것과 같다. 과연 언제부터 그 아이는 어른이 되는 것일까. 19살? 20살? 20살에 어른이 된다면 19살 마지막 날 밤은 어떠한가? 그 아이는 하루를 그저 살다 보니 어느덧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이리라. 길이란, 그저 느긋이 걷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목적지가 보인다 하여 가까운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 하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문득 도착하게 되리라. 그저 걷다 보면.

가야할 길이 까마득해 보이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자가 아닌가?
▲ 닭실 마을 가는 길 가야할 길이 까마득해 보이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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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너무 길어져서 3~4편으로 나누어 쓸 생각입니다.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봉화군의 아름다움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태그:#봉화, #길,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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