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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문방위)에서는 때 아닌 '민주주의 수호' 투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 신설'과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 때문이다. 사이버 모욕죄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언론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 누리꾼에 '재갈'... 문방위·법사위, 두 군데서 추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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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모욕죄는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사이버 통제법'으로 불린다. 누리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법안이란 뜻이다.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인 나경원 의원과 제1정조위원장인 장윤석 의원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나 의원은 지난 달 3일 국회 문방위에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냈다.

여기에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당 차원의 중점 추진 법안임을 명시한 셈이다. 이밖에도 강승규·김재경·이계진·정병국·조해진·주광덕·진성호·허원제·안형환 의원도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 (온라인 게시물로 인한) 권리침해 주장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신속하게 임시조치를 취하고 이 사실을 관련자에게 통보, 고지하도록 함
▲ 30일간의 임시조치 기간 중 해당 정보 게재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함
▲ 이의신청이 없을 경우 해당 정보를 삭제하고 이의신청이 있을 경우 분쟁조정부에서 권리 침해 여부에 대해 판단해 이에 따라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삭제 혹은 임시조치의 해제를 하도록 함
▲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취급거부, 정지, 제한명령을 할 수 있도록 모욕성 정보를 불법 정보화함
▲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

이에 앞서 같은 당 장윤석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법사위)에 냈다(최경환·황진하·김기현·안홍준·이은재·김정권·이범래·정양석·김선동·정미경·박준선·장재원·김성태·김광림·손범규·나성린·김성회·신성범·배은희·신지호·강성천·박민식 의원 공동발의). 현행 형법 안에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컴퓨터 등 정보통신체제를 이용해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자는 9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
▲ 컴퓨터 등 정보통신체제를 이용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죽은 이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
▲ 컴퓨터 등 정보통신체제를 이용해 사람을 모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

'모욕' 여부 수사기관이 '대신' 판단... 형법의 모욕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

두 개정안 모두 사이버 모욕죄 신설, 강화가 핵심이다. 이 중에서도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사이버 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대목을 '독소'로 꼽는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모욕죄는 친고죄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반의사 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제3자의 고발이나 수사기관의 인지수사로 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명시적으로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다. 모욕을 느꼈는지 여부를 피해자가 아닌 제3자, 그것도 수사기관이 대신 판단해 자의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한 셈이다.

게다가 모욕죄는 현행 형법에 이미 처벌규정이 있다. 하지만 나 의원과 장 의원은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오프라인 상의) 모욕죄보다 더 무겁게 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의원은 각각 개정안을 내면서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모욕행위는 그 피해의 확산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해 그로 인한 인격권의 침해 결과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똑같은 제정 이유를 댔다. 이들은 또 "사이버 공간의 특성인 익명성과 소위 '퍼나르기' 등으로 인해 가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려워 범죄피해에 대한 신고나 고소가 어려운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 법학자와 언론학자, 법조인 등 관련 전문가들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레이첼카슨룸에서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 반대 전문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에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 법학자와 언론학자, 법조인 등 관련 전문가들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레이첼카슨룸에서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 반대 전문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에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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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학계 "표현의 자유 심각하게 침해... 개정하면 헌재 직행할 것"

그러나 시민단체에선 특별히 온라인상의 모욕죄라고 해서 새로운 조항까지 신설해 가중 처벌할 이유는 없다고 반박한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오히려 인터넷상에서는 증거가 확실히 남아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사라질 수 있는 오프라인보다도 수사가 쉽다"며 "이런 점을 간과하고 가중 처벌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현행 모욕죄에도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데 새로운 모욕죄를 신설하자는 건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선진국 중에서도 모욕죄를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독일 정도다. 그나마도 독일은 1960년대 이후로는 모욕죄에 대한 유죄판결 사례가 없다.

박경신(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 모욕죄를 제대로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이라며 "이 (사이버 모욕죄는) 위헌성이 있는 현행 모욕죄를 더 심화시키는 입법조치"라고 주장했다. 또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명예훼손과 관련해, 의견과 감정 표현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시가 이미 있었다"며 "그런데 다른 죄목(모욕죄)에서는 처벌이 가능하다면 일관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형법에서는 모욕죄를 친고죄로 다루고 있는데 사이버 모욕죄만 반의사불벌죄로 처벌하자는 주장도 이유가 궁색하다. 이지은 간사는 "이런 규제 일변도로 악플을 과연 없앨 수 있는지 회의적"이라며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중요한 기본권을 침해해 법 개정 취지보다 더 큰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이들 개정안을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헌법재판소로 직행할 '엉터리 법안'"으로 꼽았다.

[신문·방송 겸영] 대기업·신문이 방송보도 가능하도록 확대·허용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도 민감한 사안이다. 한나라당은 당 미디어산업발전특위(위원장 정병국 의원) 차원에서 신문법·방송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지난 3일 한나라당이 확정한 신문법 개정안은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의 상호 겸영금지 폐지 ▲일간신문과 뉴스통신 또는 방송사업 소유자의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의 주식 및 지분 취득 규제의 폐지 ▲2006년 6월 위헌 결정이 내려진 '시장지배적 사업자' 관련 조항의 삭제 등이 주된 내용이다.

방송법 개정안에서는 뉴스통신을 포함해 신문과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은 20%,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은 49%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 자본의 경우 지상파 진입은 현행대로 금지하지만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의 경우엔 20%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가상광고 및 간접광고의 개념을 신설해 방송광고 규제도 완화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신문·방송 겸영 허용의 근거로 댄다. 정병국 의원은 "방송통신융합이라는 기술발전으로 미디어 환경이 전반적으로 급변하고 있다"며 "이 환경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와 불균형적인 규제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저지 경고파업' 집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조선-중앙-동아일보(조중동)를 규탄하는 연극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저지 경고파업' 집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조선-중앙-동아일보(조중동)를 규탄하는 연극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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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대기업에게 '자본권력 감시'하라?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

그러나 언론계와 야당은 사실상 대기업·재벌신문에게 방송보도의 길을 터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한나라당은 '미디어 산업의 발전'을 개정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미 대기업들은 케이블 드라마·다큐·오락채널에 진출하고 있다"며 "진짜 의도는 대기업·재벌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독과점 신문들이 방송보도를 하도록 해주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 위원장은 "이는 대기업·재벌에게 스스로 자본 권력을 감시하라는 것"이라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언론시장의 구도를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 신문의 방송 진출을 허용할 경우 가장 먼저 입질을 할 곳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로 점쳐진다. 이미 신문시장은 이들이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독과점 체제다.

최 위원장은 "3개 신문사가 전체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영향력이 신문 못지 않은 방송사까지 소유하도록 추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언론관계법 개악과 관련해서는 절대 타협의 여지가 없다"며 "오는 10일부터 '신문·방송법 개악 저지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총력 저지... 민주주의 수호 투쟁"

민주당도 '총력 저지' 방침이다. 민주당 문방위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한나라당의 신문·방송법 개정안은 우리 언론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며 "여론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일부 언론의 독과점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 의원은 "사이버 모욕죄 신설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법안"이라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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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MB악법, #사이버모욕죄, #신문방송겸영, #방통위, #문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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