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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탔던 봉고입니다. 목회하며 봉고차 때문에 웃고 울고... 참으로 진한 추억들이 봉고에 묻어 있습니다. 봉고차 타는 게 죄는 아닌데...
 제가 처음으로 탔던 봉고입니다. 목회하며 봉고차 때문에 웃고 울고... 참으로 진한 추억들이 봉고에 묻어 있습니다. 봉고차 타는 게 죄는 아닌데...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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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는 차종에 따라 사람 가치가 결정되고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죠. 낭비인 줄 알면서도 자꾸 중형차 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경차를 타면 도무지 사람 대접 안해 준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차종이 정말 사람 가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요?

1975년 봉고차가 나오자 교회들은 앞다투어 그 차를 구입했습니다. 70~80년대에 봉고차가 엄청 유행했습니다. 지금도 승합차를 '봉고차'라고 하는 것은 그때 시작된 말이죠.

1999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현재의 제도를 내놓기 전까지 승합차는 고속도로에서 1차선에도 못 들어가고 시속 80㎞ 넘게 달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옆구리에 큼지막하게 교회 이름을 적고 달리는 기분이란….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런 풍경이지요. 지금은 승합차 옆구리에 상호를 적은 차를 만나기가 흔치 않습니다. 승합차 타던 때 겪었던 아픈 기억을 풀어놓아 보려고요.

승합차는 호텔 앞에 세우면 안 된다?

사람들은 차를 끌고온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끌고 온 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할 때가 잦습니다. 10여 년 전 서울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거의 호텔에 갈 이유가 없지만 그 날따라 강남 P호텔에서 모임이 있다는 전화 통지를 받았습니다.

가지 않을 수 없는 모임이라 승합차를 끌고 갔습니다. 며칠째 때 아닌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전날도 승합차를 타고 목회 일로 분주했던 터라 차는 더럽기 짝이 없었고요. 저는 평소에도 그렇게 차를 깔끔하게 닦고 다니는 성격이 아닙니다. 며칠째 비가 왔으니 제가 봐도 승합차는 그리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약속 시간은 되도록 지키는 게 소신이어서 그날도 빠듯하긴 하지만 약속 시간에 P호텔로 갔습니다. 호텔 정문 앞쪽에 다행스럽게도 빈 주차공간이 눈에 띄는 게 아니겠어요. 잽싸게 차를 빈 공간에 대고 나오려는데 정문에 서있던 호텔 안내원이 달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손을 휘휘 두르며 신경질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봉고차를 호텔 앞에 세우면 어떡하라는 겁니까? 빨리 차 빼세요."
"어? 여기 주차장 아니에요? 호텔에 볼일이 있어 왔는데…."
"글쎄, 안 돼요. 저쪽으로 갔다 대세요."
"……."

호텔 주차장은 비어있다고 아무 차나 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저씨! 봉고찰 호텔 앞에 세우면 어떡하라는 겁니까? 빨리 차 빼세요."
 호텔 주차장은 비어있다고 아무 차나 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저씨! 봉고찰 호텔 앞에 세우면 어떡하라는 겁니까? 빨리 차 빼세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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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완강히 차를 빼라는 통에 제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주눅들어 다시 차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고급 승용차들만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가 지시한 호텔 뒤쪽으로 차를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몇 번을 돌아도 빈 공간이 없는 겁니다. 두세 바퀴 돌다가 다시 정문 쪽 빈 공간으로 왔습니다. 다시 안 된다며 달려오는 아까 그 안내원에게 말했죠.

"그 곳에는 차 댈 곳이 없는데요. 약속시간도 늦었고 아무래도 여기 대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됩니다. 여긴 봉고차 같은 차는 댈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더러운 차를…."
"예? …."

뷔페보다 비싼 범칙금 내다

어떤 사람들은 이쯤 되면 달려들어 싸우는 용기를 발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전 그런 용기는 갖지 못한지라 다시 차에 올라 호텔 외곽도로에 차를 세우고 부슬비에 양복을 적시며 10분여를 걸어 P호텔 R뷔페로 갔습니다. 그 날 늦게 온 벌을 톡톡히 치르며 모임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어? 김 목사가 웬일이야? 20분이나 늦었잖아."
"이 사람도 변질돼 가누먼.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이런 화살을 받으며 고작 제가 한 말은 "차 댈 데가 없어서요"였습니다. 그러나 제 그런 대답은 당당히(?) 승용차로 온 그들에게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호텔 앞에 빈 공간이 많던데?" 어느 어른의 이 한 마디에 제 변명은 그 자리에서 거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것으로 변명을 대신할 수밖에….

잘 차려진 비싼 뷔페, 서울에서도 꽤 괜찮다고 알려진 P호텔 뷔페를 입으로 먹었는지 귀로 먹었는지 모릅니다. 대부분 다 저보다 어른들인지라 참 어려운 자리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승합차 때문에 늦은 죄송함에 그날 모임은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가준 것이 고마웠죠. 국방부 시계만 가는 게 아니고 호텔 시계도 가더군요. 어렵게 모임을 마치고 헤어졌습니다. "김 목사 차 어딨어?" 하는 질문에 "저기요" 하고는 아까 차를 세웠던 외곽도로로 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주차위반 스티커가 보기 좋게 붙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비싸다는 그 호텔의 뷔페 한 사람분보다 많은 범칙금을 물고야 그 사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외곽도로에 세운 차에 여지없이 주차위반 스티커(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때 뷔페보다 더 비싼 범칙금을 지불하고 자유로와질 수 있었습니다.
 외곽도로에 세운 차에 여지없이 주차위반 스티커(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때 뷔페보다 더 비싼 범칙금을 지불하고 자유로와질 수 있었습니다.
ⓒ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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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이 사람을 결정한다고?

차종 때문에 수모당하는 일,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근래에 있었던 일입니다. 가까운 교회 행사에 순서를 맡아왔던 감독님(감리교회 연회를 대표하는 목사님)과 식사를 마치고 환송하는데, 글쎄 마티즈를 손수 운전하고 가시는 게 아닙니까.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감독님 차가 마티즈네요?"
"기름값도 비싼데…."

감리교회의 감독이란 자리는 그리 낮은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 높은 어르신이 그토록 저렴한 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마티즈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우할까?' 저는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 때 승합차 때보다 더한 냉대와 천시가 기다릴 게 뻔합니다.

차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것들이 이중 잣대로 판단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가진 자가 낮게 있으면 멋지게 봅니다. 그러나 못 가진 자가 낮게 있으면 추하게 봅니다. 높은 분이 저렴한 차를 타면 훌륭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이 저렴한 차를 타면 추레해 보입니다. 가진 자가 좁은 집에서 살면 존경받습니다. 없는 자가 작은 집에서 살면 무시당합니다. 이런 이중성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죠.

감독님은 그 위치가 있기에 경차에도 존경씩이나 받은 겁니다. 대부분은 차종으로 사람을 결정짓습니다. 집 평수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입은 옷으로 사람을 대우합니다. 에너지 절약의 하나로 정부에서는 경차를 타라고 하죠. 통행료 깎아주고 주차비도 깎아준다고. 이런 정책은 차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존심 짓밟히면서까지 경차 탈 용기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통념의 문제입니다. 유럽은 되는데 왜 우린 안 될까요. 아, 이 쓸데없는 차별 사회의 모럴 해저드! 누가 손봐줄 사람 없을까요. 이게 뭐,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제 이런 몰상식한 풍습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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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차별의 기억' 응모글입니다.



태그:#봉고차, #승합차,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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