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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카페에 내 놓은 중고 물건들. 아이옷부터 책, 사무용 가구, 장난감 등 다양하다.
 지역카페에 내 놓은 중고 물건들. 아이옷부터 책, 사무용 가구, 장난감 등 다양하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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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도 한번 올려봐, 정말 잘 팔려."

'잘 판린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경기 불황으로 1000원숍에 이어 500원숍이 생겼다 하고 백화점도 땡처리에 나섰다는데, 지역 카페 '아나바다'에 내놓은 중고 물건이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싶은데 장난이 아니란다. 

이 동생의 경우, 몇 번 안 입고 집에 방치하다시피한 트레이닝복 세 벌을 싸게 내놨더니 하루 만에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좋아라 했다. 급 팔랑이는 아줌마의 귀, 그럼 나도 한번 해봐?

팔기는 아깝고, 입자니 나이가...

동생이 말한 지역카페 아나바다에 접속해봤다. 애들 옷부터 장난감·가전·도서 등을 싼 값에 파는 것은 물론이고, 공짜로 준다는 물건까지 하루 70여건의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뭐 이런 걸 판다고 하나 싶은 것도 있고, 이거 잡은 사람은 횡재했겠구나 싶은 '왕건이'도 있었다. 

'그래, 나도 팔아보는 거야.'

옷가지들이 잔뜩 쌓여있는 방을 보며 '저걸 언제 정리하나' 한숨만 나왔는데, 돈에 눈이 멀자 '정'리 앞에서 늘 느려지던 내 손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분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입을 것, 팔 것, 버릴 것. 버릴 것은 누가 봐도 버릴 만한 것들이었는데, 고민은 입을 것과 팔 것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아, 이건 꽤 비싸게 주고 산 건데…. 팔기는 좀 아깝다. 근데 몇년간 한 번도 안 입었고 올해도 안 입을 거잖아. 아, 그리고 이건 정말 거의 새 건데 이 나이에 입기는 좀 그렇고, 그래도 교복 입는 애들이 입으면 딱인데….'

동생이 팔았다는 겨울 트레이닝복, 단돈 만 원에 팔았다.
 동생이 팔았다는 겨울 트레이닝복, 단돈 만 원에 팔았다.
ⓒ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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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 보니 중고 물품도 팔리는 것만 팔린다. 게시글에 개성이 없으면 몇 사람에게 읽히지도 못하고, 최근 리스트에서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벼룩에도 전략이 필요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내린 전략은 이랬다. '미는 상품' 한 개를 사면, 두 개의 옷을 덤으로 주는 패키지 판매.

사실 하나하나 팔기는 시간도 여유롭지 않고, 큼직한 것만 제값 주고 팔면 그 나머지 것들은 꼭 팔지 않아도 되는 고만고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1+1' 혹은 '1+2' 행사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건 게시글 제목. 많은 사람이 봐야 잘 팔리는 것은 당연한 일. '엄마 옷 메인 사시면, 덤도 드려요'

예상은 적중했다. 순식간에 조회수는 백단위를 넘었다. 밤 12시를 넘기기 전, 하나의 물건이 낙찰됐다. 내가 가장 아꼈던 원피스. 정말 거저 가져가는 단돈 1만5천원(5만원 정도에 사서 두어번 정도 입었다)에, 홈웨어 원피스(한 번 입었다) 1개 덤. 이 고객(?)과의 거래는 단 몇분 만에 흔쾌히 이뤄졌다.

게시글에 분명 '에누리는 하지 않아요'라고 밝혔는데, 말이라도 한 번 '에누리 안 되나요?'해주시는 센스. 그래, 그 맘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 원피스는 정말 에누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 맘 알기에 그냥 '서비스 물건 하나 드릴게요' 하고 말았다. 쇼핑백에 물건을 담으며 일회용 원두 티백을 넣었다. 짧은 메모와 함께.

다음날 이 물건은 곱게 전해졌다. 문제는,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 그 다음 고객이었다.

"잔돈 없는데, 그냥 만원에..."

다음 날 아침, 두번째로 옷을 사겠다는 고객의 문자가 전달됐다.

'빨간 코드 팔렸나요? 아이 사주고 싶은데, 덤으로 주는 옷 필요없으니 만원에 안 되나요?'

천원 에누리도 아니고, 오천원이나 깎아달라는 이 대범한 아주머니는 누구? 문자 메시지 교환이 원활하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만원은 안될 것 같아요."
"덤으로 주는 옷들 필요없는데, 그거 빼면 만원에 되지 않나요?
"그것들도 다 단품으로 팔 수 있는 것들인데, 제가 시간도 여의치 않고 해서 그냥 메인 하시면 드리는 거예요. 공짜로 그냥 드리는 건 아녜요."
"그럼 위에 메인 옷에 있는 덤으로 주세요. 이 덤들은 불필요해요."
"위에 거 하시겠다는 분 아직 없으니, 그렇게 할게요. 그럼 만오천원…."
"그냥 만삼천원에 해주세요."
"네? (아, 속으로 진짜 갈등 많이 했다) 그러세요 그럼."

거절당한 비운의 주인공, 빨간코트. 아직도 날아갈 듯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는 너를 단 돈 '만원'에 가져가려 했던 고객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거절당한 비운의 주인공, 빨간코트. 아직도 날아갈 듯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는 너를 단 돈 '만원'에 가져가려 했던 고객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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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안 입을 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근데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물건 찜했다가 연락없이 잠수타는 사람, 당장이라도 살 것처럼 들이닥쳐 놓고 이것저것 '진상' 짓만 하다 돌아간 사람, 불량 물건 벼룩으로 내 논 사람, 싸게 산 거 더 비싼 값에 파는 사람 등등 황당한 벼룩 사례를 몇 번 접한 탓에 이 고객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그리고 스치듯 떠오르는 동생의 말.

"언니 있지. 내가 물건 올릴 때 분명히 에누리 안 된다고 했는데, 만나서는 두 개 샀으니까 좀 깎아달라고 하는 거 있지?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2천원씩 4천원 깎았잖아, 좀 아까웠어."

불길한 기분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지만 약속된 시간, 그 분이 오셨다. 유유히 차를 끌고. 그날 따라 바람이 너무 불고 추워 운전석 옆자리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쇼핑백에서 꺼낸 옷을 보시면서 이 고객, 대번에 하시는 말씀,

"드라이크리닝 하셨나요?"
"네? …아뇨. 그러진 않았어요. 근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깨끗하고, 세탁하고 몇년 안 입었던 옷이라,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이건 덤으로 드리는…."
"네…. 사실 이런 건 필요없는데 그냥 만원으로 깎아주시면 안되요?"

아, 혹시나 예상은 했지만 이 밀려드는 절망감이란. 황당스럽다는 내 표정을 읽으신 건지, 아주머니 지갑에서 말없이 돈을 꺼내신다. 보이는 돈은 배춧잎 두 장.

"잔돈 없으세요? 저 잔돈 없는데."
"저도 없는데, 어떡하죠? 요 앞에 은행 있으니까..."
"아… 어떡하지, 잠깐만요. 요 옷가게에서 잔돈 바꿔 볼게요."
"그냥 만원에 하시지…."

아, 이 고객 마지막 말씀에 제대로 질렸다. 초지일관 빈틈없는 일관성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순간 잔돈 거슬러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됐어요. 아주머니에게 안 팔래요."

그깟 돈 몇푼보다 더 중요한 건...

왜 진작 기부할 생각을 못했을까. 몇 푼 안 되는 돈에 잠시 눈 먼 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왜 진작 기부할 생각을 못했을까. 몇 푼 안 되는 돈에 잠시 눈 먼 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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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중고 물건을 팔려던 내가 잘못이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액수를 벌겠다고, 불필요한 흥정에, 사람에 대한 배신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까지 이 모든 걸 어디서 보상받냐는 말이다. 가뜩이나 날도 추운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오는 내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에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차까지 끌고온 마당에 기름값은 안 아까우신가. 그럴 거면 그냥 새 옷으로 사주시지. 뭐하러 중고를 사시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어느새  동생에서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이라 동생의 심심한 위로를 받으며 내가 향한 곳은 집 앞 '아름다운 가게'였다. 기부물품 인수증을 간단히 작성하고 6개의 의류를 기증했다.

"오늘은 옷 기부하는 분들이 많네요."

얼굴이 빨개졌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던 걸까. 돈 몇 푼에 눈이 멀었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지난 여름, 나도 여기서 맘에 드는 옷을 정가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에 사서 기분 좋았는데…. 아가(?)들아. 너희를 고작 몇 푼의 돈에 팔아먹으려 했던 나를 용서하고, 부디 좋은 주인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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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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