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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 입학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할 때가 가까워졌어요. 이번 6학년은 참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바빴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여러분, 지난달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나요?“라고 물으셨을 때, 저는 부끄럽게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단지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게 아녜요.

 

그것 참 안됐구나. 너 만한 나이에는 해를 닮은 아이가 되어야 하는데, 전혀 해맞이를 못하다니…. 그러게 말에요. 선생님도 아시죠? 요즘 제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에요. 매일 똑같아요. 더구나 밀린 학습지까지 하느라 밤늦게 자니까 아침 해는 구경 못해요. 저녁에도 마찬가지에요. 학원 마칠 시간이면 이미 해가 져있는 걸요. 그래도 엄마는 중학교 가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한데요. 어떡해요?

 

 “여러분, 지난달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나요?”

 

그래, 정말 힘들겠구나. 나 같아도 몸에 부치겠다. 그래도 용케 견뎌내는 걸 보면 역시 인서다워. 몇몇 친구들 같으면 여간 불평이 아닐 텐데 말이야. 넌 그래도 항상 웃는 얼굴이잖아. 선― 생― 님! 제가 항상 웃는다고요? 그건 저를 모르는 말씀이에요. 전 정말 괴로워 미치겠다고요. 답답해요.

 

어젯밤에도 저녁을 먹으며 엄마아빠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요?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저에게 대학수능시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특히 이번 시험에서는 수리영역이 어렵게 출제되었다는 뉴스를 듣고는 수학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밥맛을 잃고 말았어요. 식탁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양념불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는데도 말에요. 그런데도 엄마아빠는 계속해서 공부, 공부얘기만 하셨어요.

 

선생님, 저도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만 강요하는 데는 자꾸만 짜증이나요. 아마 우리 학교에서 나만큼 학원에 많이 다니는 아이들도 드물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녜요. 전 머리가 나빠요. 이젠 지쳤어요. 어떨 때는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도 있다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않고 제 이야기를 듣기만 하세요? 저하고 이야기하는 게 싫으세요? 이제 그만 할까요?

 

 “그렇지만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는 데는 짜증이나요.”

 

아니다, 아니야. 인서야, 난 지금 네 얘기에 관심가지고 듣고 있어.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있어. ‘공감’의 뜻을 알지? 난 지금 너의 억눌린 분노를 같이 나누고 있어. 난 네가 네 말에 끼어들기보다는 조그만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주고 싶어. 그동안 어린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힘들지? 그래, 막상 삭혀지지 않는 감정의 덩어리를 꺼내놓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그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어. 안 그래?

 

인서야, 너,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지? 지난 5월 수학여행 다녀오는 길에 그랬잖아.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예. 근데 어른이 되면 무엇이 좋으냐? 많아요. 무슨 일이든 혼자서 결정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잖아요.

 

또 공부도 안하고, 텔레비전도 실컷 보고, 언제든지 인터넷을 할 수 있잖아요. 어쨌든 어른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응, 그렇겠구나.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이든 혼자서 결정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잖아요.”

 

과연 그럴까? 네가 어른이 된다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인서야, 나를 봐라. 넌 내가 하고픈 것을 모두 다 하고 사는 것 같니? 그렇지 않아. 난 반대로 네가 부러워.

 

지금 내가 네 또래라면 여태껏 함부로 대했던 일, 쉽게 놓쳤던 일, 후회스런 일들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좀더 야무지게 생활하고 싶어. 항상 미루기만 했던 공부도 열심히 할 거야. 내가 만약 네 나이가 된다면 정말 엄마아빠가 공부해라고 다그치더라도 즐겁게 공부할 거야.

 

인서야, 지내놓고 보면 공부해야 할 때 안 했던 게 가장 후회스러워. 하지만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어. 세상일들은 다 때가 있는 법이야.

 

그런데 인서야, 네가 보기에는 엄마아빠가 책도 안 읽으면서 텔레비전만 보고 인터넷만 하는 것 같지? 넌 그게 부러운 거지? 그러면 엄마아빠께 말씀드려 봐. 단 하루라도 좋으니 역할을 바꾸어서 살아보자고. 그러면 어느 게 더 좋은지 알게다.

 

오늘 집에 가면 곧장 의논해 봐. 난 아무리 어른이 되는 것이 좋다고 해도 엄마아빠의 역할과는 바꾸지 않아. 짐작컨대 네가 어른으로 사는 게 아무리 좋아도 단 하루도 견뎌내지 못해.

 

 “인서야, 지내놓고 보면 공부해야 할 때 안 했던 게 가장 후회스러워.”

 

왜 말이 없니? 내가 너를 무시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누구나 나이에 걸맞게 살고 그에 따라 할 일이 있는 거야. 당장에 네가 엄마아빠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이해해. 하지만 그러한 모습들은 그냥 할 일 없어 빈둥빈둥 노는 게 아냐.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 빠듯하게 일하며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엄마아빠도 휴식이 필요한 거야. 그래야 내일 또 다시 일하러 갈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 안 돼. 너도 학교 공부하랴 학원 공부하랴 피곤할 때는 쉬고 싶지 않니? 다 그런 거야.

 

 

인서야, 조그만 일이라도 그때그때 풀지 않고 쌓아 두면 마음에 병이 생겨. 스트레스다. 정말 공부하다가 지치면 엄마아빠께 당당하게 말씀드려.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다고. 엄마아빠도 대견해 하며 그러라고 할 거다. 그러면 하루쯤은 네가 하고 싶은 것 맘껏 해보려 뭐나. 그게 뭐 그리 어려우냐. 이 녀석아, 내가 보기에는 말 못하고 속에 담아두고 미적대며 불평하는 네가 바보스러워.    

 

 “인서야, 하루쯤은 네가 하고 싶은 것 맘껏 해보려 뭐나.”

 

난 그래도 너한테 공부하라고, 책 읽으라고 강요하고 싶어. 너 그동안 나와의 약속을 얼마나 알뜰하게 지켰어? 일주일에 서너 권 책을 읽으라는 것을 매번 지키지 않았어. 인정하나? 임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거야. 내일 다시 만날 때까지 네 생각을 정리해 보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혼쭐낼 거다. 알았어? 넌 이제 코흘리개가 아냐!   


태그:#공부, #강요, #인정,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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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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