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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을 맞아 출판계가 헉헉 아우성치고 있다. 그냥 허덕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지경이다. 국제유가는 조금 떨어졌지만 환율 때문에 종이 값과 인쇄, 제본비 등이 크게 오른 데다 애써 만든 책마저 잘 팔리지 않고 보름쯤 지나면 그대로 반품 처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다. 갑자기 대꼬챙이에 옆구리를 포옥 찔린 것처럼 아프다. 왜? 글쓴이도 지난 90년대 중반 출판사를 꾸리다가 '단군 이래의 최대 불황'이라는 피할 수 없는 극심한 출판 불황 앞에서 꼼짝없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 터져 나오는 출판가의 헉헉거림은 그때보다 더 지독한 것 같다.

 

오죽했으면 출판가에 '주변에 아주 얄미운 깍쟁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출판사를 차리라고 부추기고, 진정 아끼는 사람이 출판사를 차린다고 하면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말린다.', '출판사를 하다가 집 4~5채는 까먹어 봐야 정신을 차린다.', '글쟁이가 출판사를 해서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숱한 말까지 떠돌겠는가.

 

출판계가 이렇게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니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글쟁이들도 덩달아 춥고 배고프다. 어렵게 창작한 글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출판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아도 출판사 대부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게다가 출판계약을 하더라도 유명 글쟁이가 아니면 인세마저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더욱 서럽다.

 

 

청소년 10명 중 1명만이 여가시간에 독서를 한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이정원)에 따르면 올해 출판계는 판매부수가 평균 30% 정도 재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 있는 필자들 책만 집중적으로 팔리고 있다. 여기에 서울시민 36% 가량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출판계를 더욱 긴장케 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지난 10월31일부터 11월6일까지 교보문고와 YES24 등 전국의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에서 팔린 부수를 모두 합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5위를 살펴보자. <개밥바라기별>(황석영, 문학동네) <바람의 화원 1>(이정명, 밀리언하우스) <하악하악-이외수의 생존법>(이외수, 해냄) <흐르는 강물처럼>(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잉글리시 리스타트 베이직>(I.A.리처즈·크리스틴 깁슨, 뉴런).

 

그야말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필자들뿐이다. 새로운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다. 돈가뭄에 몹시 시달리면서도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그마하고도 알찬 출판사들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경제가 어려우면 명품으로 쏠린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쏠림' 현상이 출판계에도 그대로 불어 닥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가시간에 독서를 즐긴다는 서울시민이 6%,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시민이 63.9%, 그렇지 않은 시민이 36.1%라고 하니 그렇잖아도 어려운 출판계가 몸살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창 책을 많이 읽어야 할 10대 청소년(15~19세)들까지도 25.1%가 1년 동안 교양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적이다.

 

서울시 뉴스 웹진 'e-서울통계(13호)'가 최근 내놓은 자료(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2만 표본가구에 거주하는 15세 이상 주민 4만8천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비율이 10대 85.8%, 20대 85.0%, 30대 77.4%, 40대 64.5%, 50대 51.3%, 60세 이상 28.7%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소년의 경우 여가시간에 주로 인터넷이나 게임(44.7%)을 하거나 라디오, TV, DVD 시청(17.8%)을 즐기고, 10명 중 1명(10.8%)만이 여가시간에 독서를 한다고 답했다"며 "여가 시간에 '독서를 주로 한다'는 응답은 6.0%에 불과했다. 충격적이다. 시민들이 책을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이정원 회장(54. 도서출판 들녘 대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과 영상매체가 독자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상황이 책을 할인해서 팔거나 공짜로 준다고 해결되진 않는다"며 "출판사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독자를 끌고 가는 방법을 개발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또 "독자들을 어떻게 다시 창조하고 만드느냐는 출판인들의 영원한 업보 같다. 출판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출판 인프라'를 마련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라며 "출판계의 숙원사업인 출판진흥위원회 설립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1만여 개에 달하는 학교 도서관에 체계적인 구매시스템을 구축해 양서가 안정적으로 출간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출판가는 대표 혼자 꾸려나가는 1인 출판시대 

 

"큰일입니다. 서점 수금이 날이 갈수록 30∼50% 이상 줄어들고 있습니다. 서점들도 책이 잘 팔리지 않으니까 수금 날이 다가오면 책을 해당 출판사로 대량 반품시켜버립니다. 지금 출판 불황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닙니다. 저희들도 출판 불황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실천문학사 김영현 대표)

 

날이 갈수록 책 판매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출판계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인쇄비와 종이 값도 크게 올랐다. 이는 올해 신간 발행부수가 지난해보다 22%나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출판사 구조조정과 서점 부도까지 이어지고 있어 대표 혼자 꾸려나가는 1인 출판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도서출판 선 김윤태 대표는 "그동안 근무했던 직원 4~5명을 모두 내보내고 저 혼자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어 출판사를 홀가분하게 꾸리고 있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예전 직원이 여러 명 있을 때는 월급 때만 다가오면 속앓이를 해야 했다"며 "지금은 외주를 주고 있어 책을 만들 때만 경비가 나가기 때문에 그나마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도서출판 예감 진병일 대표는 "종이값과 인쇄비가 너무 무서워 신간을 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수금 날이 다가와도 서점에서 수금할 게 거의 없다. 여기에다 그동안 오래 거래했던, 잔고가 많은 대형서점들이 줄줄이 부도까지 나는 바람에 진퇴양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마산을 대표하는 서점 '문화문고'는 지난 해 중순 아예 문을 닫았다. '문화문고' 권철모 전 대표는 "부산 대형서점 '면학도서'와 '청하서림'도 부도로 문을 닫았다"며 "매장도 넓고 직원도 많이 써야 하는 서점에서 책 한 권 팔아봐야 10~20% 남는데, 여기에서 건물 임대비, 직원인건비, 관리비, 포장비 등을 빼고 나면 적자"라고 설명했다. 

 

 

신간 찍어봐야 보름쯤 지나면 반품 들어오기 일쑤

 

"요즈음 신간은 잘 안 찍고, 서점에서 주문 들어오는 책만 100~200부씩 찍습니다. 유명한 시인이나 작가들 책도 제대로 팔리지 않는 마당에 이름 없는 시인 작가들 책은 찍어봐야 보름 정도 지나면 반품되어 들어오기 일쑤지요. 요즈음은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게 더 이상 손해라도 안 보는 지름길이죠." - 도서출판 화남 방남수 대표

 

신간 발행부수도 문학, 아동, 음악, 미술, 만화 등 장르에 관계없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때 초판 기본 부수 3천부를 자랑했던 출판사 신간들이 요즈음 들어 적게는 500부, 많아야 2000부 정도다. 그나마 개정판이나 재판은 서점 주문을 보아가며 100부~300부 정도 찍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최근 조사한 '전국 납본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 2007년 초판과 개정판을 아우르는 전체 신간 발행부수는 월 평균 약 1217만 부이다. 올해 9월까지 집계된 발행부수는 월평균 약 961만 부에 그쳐 약 22% 줄었다'고 나와 있다. 이는 굳이 잘 팔리지 않는 책을 비싼 종이 값과 인쇄비를 들여 찍을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출판경기 체감 바로미터'라 불리는 여행서 판매가 올 들어 20~30% 정도 줄어들었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박영준 교보문고 광화문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판계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여행서와 잡지다. 여행서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물론 잡지들도 부록 규모를 줄여 불황의 분위기가 짙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바보새 김규철 대표도 "종이 값이 지난해보다 평균 50% 이상 크게 오른 데다 그나마 선불로 주어야 하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아우성"이라며 "일부 출판사에서는 기획출판을 포기하고 자비 출판을 하거나 기획출판을 하더라도 필자의 양해를 구해 인세 대신 책으로 지급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 최장헌 사무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시작한 출판지식산업 육성방안을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국내 출판물 해외 마케팅 활동도 지원하겠다"며 "장기적으로 산업 기반을 다져 나가는 것만이 고질적인 출판 불황을 타개할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출판계. 지식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출판이 살아야 작가가 살고, 서점이 살고, 지식이 살고, 문화가 꽃피울 수 있다. 출판계를 살릴 뾰쪽한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지식은 마음을 채우는 밥이다. 아무리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도 밥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이 마음은 지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죽어가는 출판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가까운 서점에 나가 1주일에 1권씩이라도 책을 사서 읽는 습관을 길들이자. 정부에서도 어려운 출판현실을 주먹구구식으로 지원하는 어설픈 대책만 내놓지 말고, 여러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을 기본 부수만이라도 사들여 정부 공공기관이나 학교, 전국 도서관 등지에 비치하는 실물경제정책을 펴길 바란다.  


태그:#출판 장기 불황, #출판 인프라 구축, #도서관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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