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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질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생뚱맞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죽음’은 더더욱 숨을 옥죄는 일일 수 있다. 승자만을 만들어내는 이 살벌한 시대에 ‘좌절’은 우리 모두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죽음’과 ‘좌절’이 그처럼 단절과 패배만을 생각케 하는 일일까? 브레이크 없는 이 시대에 ‘죽음’은 때로 더 깊은 인생의 의미를 부여해 주기도 한다. 성공 신화만을 목적으로 하는 현 시대에 ‘좌절’은 인간에 대해 더 깊은 배움을 얻게 하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엔도 슈사쿠의 인생론이 담긴 〈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은 이 세상의 모든 ‘죽음’과 ‘좌절’에도 나름대로의 뜻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것 속에도 그것대로의 소중한 목적이 담겨 있음을 성찰케 해 주는 잠언집이다.

 

사실 그에게도 절망과 좌절의 시기가 없지 않았다. 그는 약관 30세에 결핵으로 인해 세 차례나 되는 수술을 받았고, 2년 반 동안은 입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 수술로 일곱 개의 늑골을 잃었고, 한쪽 폐도 잘라야 했다. 근 3년 동안 죽음의 터널을 온 몸으로 맞섰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쓰디쓴 절망감을 맛보지 않았던들 인간과 인생에 대해 남다른 눈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하여 위대한 소설 〈침묵〉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 스스로도 결코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밝힌다. ‘죽음’의 터널과 ‘좌절’이라는 패배감은 인생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갖게 하는 신비였던 것이다.

 

“병이라고 하는 생활상의 좌절을 3년 가까이 충분히 음미한 덕택에 나는 인생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고통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가 있었다. 이것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고통스럽지만 귀중한 공부와 체험이 되었다. 그런 체험 덕분에 인간과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이나마 트였기 때문이다.”(133쪽)

 

이는 예순에 들어선 그가 자신의 옛 삶을 돌이켜 보며 새긴 글이다. 그에게 일어났던 지난날의 모든 일들은 그것이 기쁘든 슬프든 좋든 나쁘든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선악불이(善惡不二)’를 즐겨 이야기한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선과 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손바닥과 손등이 선과 악처럼 붙어 있어서 악을 뒤집으면 선이 되고, 선을 뒤집으면 악이 될 수 있기에, 모든 악에도 나름대로 ‘의미’와 ‘쓸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생활의 부정적인 요인이 인생의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죽음과 좌절, 질병과 실패가 부정적인 요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긍정적인 열매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구체화시키기만 하면 생활 속 손해도 언젠가는 이익으로 바뀔 날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이 인생의 황혼기에 쓴 것이라 그런지 유독 ‘죽음’과 ‘좌절’, ‘나약함’이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우리들의 인생 앞에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다. 그 문제를 소설가이기 이전에 직접 경험한 한 인간으로서,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찰했는지를 담고 있기에 이 책이 더욱 진지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쪼록 무한경쟁 속 승자와 패자만을 양산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닥쳐 오는 모든 실패와 좌절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 언젠가는 그것이 유쾌한 쓸모가 되어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살았으면 한다. 그것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를 느끼는 '선악불이(善惡不二)'의  비결을 배우는 데에 있을 것이다.


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 - 엔도 슈사쿠의 인생론, 향기 가득한 교양산문의 빛나는 경지

엔도 슈사쿠 지음, 한유희 옮김, 시아출판사(2008)


태그:#유쾌하게 죽는 법, #엔도 슈사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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