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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1월 4일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열린 자신의 선거의 밤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오바마 당선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1월 4일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열린 자신의 선거의 밤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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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3일, 아이오아 코커스. 정말 말도 안 되는 신예 오바마가 백인 인구 95% 이상의 아이오와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도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그리고 그가 승리 연설을 했다.

"우리는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우세주)와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우세주)의 모임이 아니라 미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입니다."

미국이 백인·흑인으로 분열된 나라가 아니라 통합된 국가, USA의 다 같은 한 국민이라는 뜻이다.

통합된 국가. 이것은 부자와 빈자, 노인과 젊은이, 백인과 흑인, 라티노와 아시안,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무당파까지 어느 한쪽만을 위한 미국이 아니라, 이들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미국이고, 바로 그런 통합이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꿈이었으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할 원동력이다. 오바마가 대선에 나오기로 한 이유다.

우리 동네 사람들 표정은 슬퍼보였다

내가 사는 곳은 '네브래스카주의 링컨'이라는 작은 대학 도시다. 백인 인구가 압도적인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지난 주 오바마 선거푯말을 모아다가 화형식을 치렀다. 이번 선거에서도 매케인이 오바마를 57: 41로 꺾었다. 오늘 아침 동네를 둘러보니 사람들 얼굴이 슬퍼 보였을 정도였다.

이 곳에서 우리 네 식구가 외출을 하면 흘끔 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신기하기도 하겠지. 네 명의 동양인이, 그것도 어른, 아이 골고루 섞였으니까. 그 쯤이야 전혀 신경쓰지 않는 우리 부부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눈치 멀쩡해진 아이들이 맘이라도 상하게 될까 조금은 염려되기도 한다.

1월부터 3월 중간쯤까지 승승장구하던 오바마는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의 "갓 뎀 아메리카" 비디오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가뜩이나 가운데 이름이 '후세인'인 것도 신경쓰였는데 솔직히 오바마의 대권 도전, 아니 정치 생명 자체가 끝나겠다 싶었다.

그리고 3월 18일 화요일 오전. 오바마는 필라델피아에서 그 유명한 인종 연설 '보다 완벽한 통합을 위해서'를 했다.

운명적인 연설 "미국은 변할 수 있습니다"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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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목사의 그 비디오는 이미 정말 징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틀어댄 후였고 오바마가 무슨 말을 해도 그 충격은 절대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종문제는 이 나라가 지금 이 순간 절대로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라이트 목사가 미국에 대한 그 공격적 설교에서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 현실을 왜곡할 정도로 부정적인 면을 단순화시키고, 전형화시키고, 과장했던 것을 우리도 저지를지 모릅니다.

라이트 목사가 설교에서 저지른 중대한 실수는 그가 우리 사회의 인종 차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실수는, 마치 우리 사회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떠한 진보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교회 신도 중 한 명이 이 나라의 국가 최고 자리를 위해 경주할 수 있게끔, 백인, 흑인, 라티노, 아시안, 부자, 가난한 사람, 젊은 사람, 노인이 모두의 힘을 합칠 수 있게끔 이 나라가 그렇게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그는 마치 아직도 이 나라가 비극적 과거에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얽매여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그 동안 목도해 온 것은, 미국은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이 나라의 재능입니다. 우리가 이미 성취해 온 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내일 성취할 수 있는 것, 성취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희망을, 희망의 담대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연설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꽤 많은 백인 무당파층 유권자를 잃었다. 그러나 정치적 득실을 떠나 그의 연설은 미국의 인종 문제에 대해 너무나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미국에 온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이 미국 사회에 소속감을 느꼈다. 오바마가 일으키는, 진정한 통합을 이루기 위한 변화에 진심으로 동참하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변화를 같이 만들어내고 싶었고, 그런 변화의 결실을 공짜로 거져 얻고 싶지 않았다.

"오바마는 아랍인, 비애국자... '우리'와 다르니까"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알레인은 하와이에서 태어난 '진짜' 미국인 의사다. 부모님이 일본인 이민자지만 일본말은 한 마디도 못 한다. 알레인이 그런다. 자기네 가족이 외출하면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남편은 백인이고 아이 2명도 엄마보다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넌 남편이 있잖아, 우린 넷 다야"라고 말했다. 우리 둘 다 그냥 웃고 말았다.

알레인의 영어는 너무나 완벽하지만(당연히), 그녀의 환자들 중 60% 이상은 꼭 이렇게 물어본단다. "언제 미국에 왔어요?" 알레인이 남편을 따라 공군 부대에 갈 때마다, 그 곳의 한 미국인 여자는 이렇게 물었단다. "언제 한국에서 입양됐어요?" 그 미국 여자는 한국에서 입양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에 경제위기가 오면서 오바마의 지지율과 매케인의 지지율이 극과 극으로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매케인 캠프는 인종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바마가 테러리스트들과 어울려 다녔고, 비애국적이라고 했다. 그의 유세장에 나온 사람들 중 일부는 오바마를 "테러리스트" "살인자" "죽여라!"고까지 외쳐댔다.

매케인 유세장에서 한 백인 할머니는 자기가 책에서 읽었다면서, "오바마는 아랍인"이라고 했다. 오바마를 증오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가 비애국자이고, 사회주의자이며, 무엇보다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면 그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네소타의 하원의원 미셸 바크만은 MSNBC <하드볼>에서 미국의 주요 언론이 미국 의회의 의원들 하나 하나를 다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친 미국인인지, 반 미국인인지를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바마 부부가 반미국적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고, 백악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4일 밤 미국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한 오바마 지지자가 CNN의 오바마 당선 예측 보도를 보고 감격에 겨워 울먹거리고 있다.
 4일 밤 미국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한 오바마 지지자가 CNN의 오바마 당선 예측 보도를 보고 감격에 겨워 울먹거리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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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무슬림 부모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이틀 후 일요일, NBC-TV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에서 오바마를 공식 지지하기 위해 나온 전 국무부장관 콜린 파월은 이렇게 말했다.

"전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이) '오바마는 무슬림이야'라고 말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정답은 그는 무슬림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입니다. 항상 그랬어요. 그러나 진짜 옳은 대답은, 만약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무슬림인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답은 '노'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미국이 아닙니다. 7살짜리 무슬림계 미국 아이가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믿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중략)…이런 식의 행동을 우리가 미국에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목이 메인 채로 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잡지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라도 특히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인 군인들에 대한 포토에세이였어요. (버지니아의) 알링턴 군인 묘지에 있는 한 어머니가 아들의 무덤 비석에 머리를 묻고 있었습니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비석의 머릿말이었는데, 자주색 하트와 동색 별이었어요. 이라크에서 죽었다는 뜻이죠. 20살이었는데, 그 다음 사진이 뭐였냐면 비석의 제일 윗 부분인데, 그것은 기독교의 십자가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다비드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초생달과 별로 되어있는 이슬람교도의 표시였어요.

그 병사의 이름은 카림 라샤드 술탄 칸. 그는 미국인이었습니다.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9·11 당시 14살이었는데 군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쳤지요. 자, 지금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매케인 유세장에서 일부 백인들이 "오바마는 무슬림이어서 안 된다"고 죽일 놈 취급을 했을 때, 저 장면을 보는 어린 자식을 둔 무슬림 부모들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

4일 밤(현지시각)에 오바마가 대승을 거뒀고, 흑인들은 물론 오바마를 지지한 사람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의 승리로 미국의 인종 문제가 사라지리라 기대하는 흑인들은 한 명도 없다. 그저 노년의 흑인들은 자기 생전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울었고, 부모인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훨씬 더 밝아졌다며 울었다. 어린 흑인아이들은 자기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기뻐서 울었다.

오바마의 승리는 미국 흑인들의 승리가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승리다. 오늘 아침 오바마의 승리를 두고 알레인과 통화를 했다. 너무 기뻐서 울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나의 코리언 아메리칸 아이들. 오바마의 승리는 이 아이들을 위한 변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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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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