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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제1회 데일리NK-바이트 저널리즘 학교'의 첫 강연이 시작됐다. 데일리NK는 북한전문 인터넷 매체이고, 바이트는 대학생 웹진이다. “기자를 꿈꾸다! 세상을 바꾸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대학생 70여 명과 데일리NK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강연은 SBS 안정식 기자가 맡았다. 그는 1995년에 SBS에 입사한 후 국제부, 미래부, 보도제작부, 사회부, 정치부, 편집부 등을 거쳐 현재 정치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 북한포커스(http://www.e-nkfocus.co.kr)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의 자주적 대북정책은 가능한가>라는 책을 집필한 북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안 기자는 대학생들이 궁금해할 만한 기자의 생활과 모습, 언론의 역할과 기자가 되기 위한 요건 등에 대해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언론사에 입사하면 6개월의 수습기간을 갖는데, 그 기간에 소위 ‘사스마리(경찰서 출입 기자)’를 하게 된다고 했다. 일본어로 ‘경찰(けいさつ)을 돈다(まわる)’라는 뜻의 사스마리는 이제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습기자들은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 각기 배치되고, 형상들에게 “오늘 뭐 없어요?”라며 사건·사고를 끈질기게 캐내는 일을 수행한다. 형사계, 강력반, 정보과, 교통사고 관련 부서 등을 돌면서 기사가 될 정도의 ‘큰 일’이 없나 조사하는 일인데 형사와의 마찰도 잦고 가치가 높은 정보일수록 형사들이 보여주려 하지 않아 고충이 많다고 했다.

 

또한 서울에 각 지역별 라인마다 특성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했다. 예를 들어 종로 지역은 집회가 많은 점을 감안해야 하고 마포는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이화여대 등 대학 밀집 지역이라 ‘대학’을 잘 살펴야 한다.

 

관악은 서울대가 입시 관련 발표를 하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발표를 기점으로 다른 학교의 입시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입시안에 관한 뉴스는 1년에 자주 있는 게 아니기에 “물 먹으면(타사가 특종을 잡았는데, 자기만 기사로 쓰지 못했을 때)” 만회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기자는 취재차 병원도 자주 들러야 하는데, 병원에서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며 학생들에게 몇몇 팁을 제시하기도 했다. 응급실에 주로 가는데, 중요한 의학용어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DOA는 ‘도착 직후 사망(Dead On Arrival)’을 뜻하기에, 작은 사건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다. 자상(刺傷)이 있는 환자도 유의 깊게 봐야한다고 조언했는데, 그 이유는 흉기에 의한 절도·폭행 사건일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습 기간 6개월 동안 선배들에게 엄청 “깨진다(혼난다)”면서 안 기자는 “그래도 돌이켜보면 수습기간에 많이 배운다”고 술회했다. 입사하자마자 사건현장에 나가면 막상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도 알기 힘들다며 수습기간에 그런 소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체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령, 사건이 터지면 “홍길동, 23세, 무직, 서울 가양동 그리고 사건경위” 순으로 빠짐없이 인적사항의 기본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수습 시절에는 하나씩 빼먹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습기자 기간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허나, 수습 6개월조차 못 버티는 자가 나가겠다는 것을 막을 회사는 없다. 선배들도 수습을 거쳐야 기자로 인정해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사회가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점도 알려주었다. ‘입사년도’가 중요하다면서 남자는 군대 감안하면 2~3년 위 여자 선배까지 고등학교로 치면 동기일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는다고 했다. 안 기자는 “일이 힘든 데일수록 위계질서가 강하다”며 다소 비합리적일 수는 있지만 위급한 사건이 터질 때 큰 혼란 없이 후배가 먼저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했다. 반면, 부장 혹은 차장 뒤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면서 회사 내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풍토는 형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종보도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의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박종철 치사사건 보도와 김현철 한보 비리 사건을 예로 제시했다. 박종철 사건은 기사를 처음 쓴 사람이 중앙일보 기자였다고 했다.

 

그 기자가 검사와 대화 중, 검사가 “요즘 경찰들 문제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기자가 “아! 그래요 뭐 어떤 점이요?”라고 했으면 검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갔겠지만, “그러게요”라며 추임새를 넣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긴장을 놓은 검사는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라는 말을 했고 그 중앙일보 기자는 사내의 모든 경찰출입 기자들에게 최근 변사 사건이 있으면 모두 조사하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박종철 사건이 세간에 공개됐고 87항쟁을 이끄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안 기자는 주장했다.

 

또 다른 예로 한보비리 사건을 들었다. SBS 기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검사를 찾으러 갔는데 여직원만 있었다고 한다. 여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사무실이 정리되어 있어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기자가 메모지 몇 개를 주머니에 몰래 넣어 화장실에서 읽어봤다고 한다. 메모지에는 ‘한보’, ‘현철’, ‘BH(Blue house: 청와대를 지칭)’, ‘구속’ 등의 단어들이 뒤죽박죽 적혀있었다. 이 메모지를 바탕으로 한보 비리 사건은 만천하게 공개될 수 있었다.

 

 

안 기자는 언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과 ‘관점’에 대하여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축구 경기를 보면 각 팀의 반칙이 정확히 보이고, 객관적으로 경기를 본다. 즉 팩트(fact)에 근거해서 경기를 관람하고 평하는 것이다.

 

허나 우리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경기를 볼 때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상대팀의 반칙이 훨씬 잘 보이고, 객관성은 많이 흐릿해진다. 이를 조금 확장해서 생각하면, 선거에서 기자가 지지하는 A 후보와 그렇지 않은 B 후보가 있다. 취재 도중 A 후보에게 피해를 줄 것이 자명한 자료를 입수했을 때, 인간적인 내적갈등에 빠지기 마련일 것이다. 안 기자는 “그래도 기자는 팩트를 보도해야 한다. 취재된 그대로를 써야하는 것이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에 부합한다”고 했다.

 

저널리즘 학교에 참석한 학생들이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기에 안 기자는 기자가 되기 위한 요건에 대해서 말했다. 우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야 하고, 배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여기자들은 경찰서에서 “저런 싸가지 없는 년”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흔들리지 않는, 시쳇말로 ‘깡따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외의 요소로 모험심과 호기심을 뽑았다.

 

강연 후 질문시간에 한 학생이 “최근 회자되는 PD 저널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PD 저널리즘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PD수첩이라는 특정 프로그램을 비판하기 위해 그 용어를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외 신문방송학 전공이 아니더라도 기자가 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최근 최진실 자살 보도에 관한 이야기 등의 질문과 답이 오가며 강연이 마무리됐다.

 

한편 데일리NK-바이트 저널리즘 학교는 11월 25일까지 5번의 강좌가 예정돼있고, 이날 데일리 NK 한기홍 대표와 바이트 이유미 편집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태그:#기자, #데일리NK, #바이트, #저널리즘, #안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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