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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동반침체로 신음하고 있는 국제사회는 중국에게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결사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소위 '중국구세론'이다. 중국의 위상과 파워가 얼마나 달려졌는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중국은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1위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고, GDP 규모도 세계 4위권이며 곧 독일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력뿐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력에 있어서도 중국은 하나의 커다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즉 팍스 시니카(Pax Sinica)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중국 위협론’이 세계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웅비할 것이다”와 같은 각종 전망과 예측들은 기실, 중국 위협론의 일환으로 봐도 무방하다.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 논할 때 중국 위협론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헌데, 이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면면을 살펴보면 ‘위협’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기우론의 근거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중국 위협론은 지극히 과장된 서구 중심적 사고에 기인한다 ▶위협론은 잠재적인 것일 뿐이며, 향후 실현가능성조차 불확실한 미래의 상황에 불과하다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란 아직 역부족이다 ▶중국은 국제기구나 제도에 적극 참여하는 등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중국 위협론이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다는 주장이 얼마나 ‘기우(基宇)’가 잘못된 논리인지 하나하나 통박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중국 위협론이 과장된 서구 중심적 사고라는 주장은 너무도 단선적인 사고이다. 중국 위협론이 서구에서 태동한 개념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위협의 대상은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까지 포함된다. 중국의 국방부분 투자비 증대는 주변국인 일본, 한국 등의 군비경쟁을 초래하고 특히 일본은 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에 중국이 “위협”이 될 것으로 인식하고 경계하고 있다.

 

동북공정을 위시한 서북공정, 서남공정, 창바이공정, 탐원공정 등의 역사왜곡은 중국에 인접해 있는 여러 국가들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구려사 왜곡은 한국, 징키스칸 왜곡은 몽골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고, 동북아 민족 전체가 중국황제족의 후예라는 궤변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우리 입장에서 간담이 더욱 서늘해지는 대목은,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과정에서 평양에 대한 연고권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중국의 북한 개입 구실이 될 수 있다.

 

위협론은 잠재적인 것이고 실현가능성조차 불확실하기에 미리부터 중국을 경계하고 ‘위협론’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있다. 허나 이는 문법적 착각에 불과하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란 언어의 사용법을 착각하여 특정 영역에만 타당한 어법을 다른 영역에 마구 옮겨놓음으로써 발생하는 요술이라 갈파한 바 있다.

 

“위협론”이라는 표현 자체가 “잠재적인 것”임을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따위의 예측들은 모두 “잠재적인 것”이고 “불확실”한 상황 아니던가. “위협”이라는 글자에 내포되어 있는 태생적 특성 자체가 위협론을 불식시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과잉된 중화민족주의

 

중국의 역량이 미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 중국 위협론이 기우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는 점은 정말 난센스다. 이 역시 문법적 착각인데, 굳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지 않아도 중국은 “위협”적일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 1등이 되어야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2등, 3등, 4등이 되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 또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순간 “중국 위협론”이라는 단어의 쓰임은 무의미해진다. 1등이 된 국가에게 “위협론”이라는 딱지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과 미국을 비교할 때 자주 간과하는 요소가 있는데 중국의 경제력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중국 경제력은 ‘중화경제권’으로 바라볼 때 그 실체가 더 뚜렷이 드러난다. 중국, 홍콩, 타이완, 마카오가 실질적인 공동경제권을 형성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산하고 있고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 그리고 미주에 분포해있는 화교경제권까지 가세하면 중화경제블록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진다.

 

중국은 국제기구나 제도에 적극 참여하는 등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렇기에 주변국에 “위협”이 될 만한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는 너무 나이브한 유토피아적 망상이다.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국제기구나 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동시에 전횡을 일삼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미국만 봐도, 국제기구의 대표격인 UN보다 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 않은가. UN이 승인하지 않은 이라크 전쟁을 감행하고 1997년 교토의정서에 동의를 하고도 이행을 거부하는 등 강대국의 오만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중국도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꺾을지 혹은 2위권 그룹에 머무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허나, 최근 급속히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과 이에 비례하여 과다하게 표출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는 분명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중국인들이 경찰과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폭력시위를 일삼았던 성화 봉송 사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 위협이 되는지 여부다. 미국 운운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서구 중심적 사고가 아닐까.

 

중국 위협론이 곧 중국을 배척하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정제되지 않은 사변적 담론을 지양하고 대자적 논의를 펼치는 지혜가 요구된다.

 

중국에서 자주 쓰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우리라고 못할 거 없다. 위협론이 대두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로 지근거리에 위치한 우리는 ‘위협’을 ‘기회’로 전환하고 중국을 슬기롭게 이용하려는 태도를 지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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