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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프닝으로 막 내리는 '중대발표설'

 

지난 주말을 강타했던 일본발 '북한의 중대발표설'은 결국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20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민간교류와 북한 내부의 방송이나 국내·국제 행사 모두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특이동향이 나타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현재 월드비전, 우리민족서로돕기,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등 여러 민간단체들이 북한지역을 방문하고 있고, 이번 주에도 11개 단체 정도가 방북을 예정하고 있다"면서 민간단체들의 방북 규모와, 활동 내용 등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결국 일본 언론 보도들의 골간을 이룬 "북한은 20일부터 외국인의 방북을 금지시킬 것"이라거나 "20일 중대정보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란 내용 등은 오보임이 명백해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난 주말의 보도들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소동의 발단은 지난 토요일(18일)자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북의 금족령' 제하의 두 문장짜리 짤막한 기사였다.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한 이 기사는 "북한이 세계 각지의 재외공관에 본국의 '중대발표'에 대비한 금족령을 내렸다"고 전하면서 "중대발표의 내용은 남북관계이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관련 사항이 아닐까 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요 신문과 통신사들이 인터넷판에 이를 주요 뉴스로 배치했고, 방송사들도 이날 저녁 종합뉴스 시간에 '확인중'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코멘트와 함께 주요 뉴스로 다뤘다.

 

다음날 <산케이신문>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파문은 더 확산됐다. 산케이는 요미우리의 보도에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관측'을 덧붙여 기사를 키웠다. 게다가 국내의 한 보수우익 성향 인터넷매체가 있지도 않은 <연합뉴스>와 중국 <CCTV>의 보도를 거짓으로 인용, '김정일 사망설'까지 퍼뜨리면서 소동은 극에 달했다.

 

정보당국과 정치권, 언론들은 저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근거가 희박한 일본발 '설'에 온 나라가 춤을 춘 꼴이다.

 

#2. 김정일은 이미 죽었다?

 

일본에 시게무라 도시미츠(重村智計)라는 한반도 전문가가 있다. 1980년대 초 마이니치(每日)신문 서울특파원을 거쳐 한반도 전문기자로 활동하다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와세다대 교수로 있다.

 

그가 올해 여름 <김정일의 정체>란 책을 냈다. 스스로 '30년 한반도 관찰의 결산'이라고 밝힌 이 책에서 그는 "김정일은 이미 죽었으며, 지금 김정일이라 불리는 사람은 '가게무샤'(影武者, 대역)"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은 2000년부터 당뇨병이 악화돼 휠체어 생활을 했고, 2003년 가을 사망했다. 그 후 '가게무샤'가 공무를 소화하는 한편, 북한은 4인조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로 비밀리에 이행했다. 이 진실은 겨우 10명 정도의 최고간부만이 아는 것으로, 아직까지 봉인되어 있다."

 

시게무라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의 주요한 근거로 성문분석 결과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한 보도기관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2002년 1차 방북 때와 2004년 2차 방북 때 회담에 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목소리를 비교 분석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일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3년 북핵 6자회담 등 굵직한 외교적 결단을 내린 뒤 2004년 1월부터 약 3개월간은 그의 근황에 대한 불분명한 보도만 계속됐다"면서 "2003년 9월 10일부터 42일간 김정일의 동정이 사라졌을 때가 사망시점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고이즈미 총리의 2차 방북 때는 물론,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북측 상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역'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듣기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런 주장이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최근 일본에 가보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의 대중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그저 웃고 넘겨버릴 일은 아니다.

 

유력일간지 서울특파원 출신인데다 와세다대 '간판'까지 단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한반도 전문가중 한 사람이다. 북한에서 특이 동향이 발생하면 일본 TV방송국들은 그를 경쟁적으로 불러내 해설과 전망을 듣는다.

 

당연히 일반인들의 대북관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도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파악하기로는 그의 주장에 '감명'을 받아 신빙성이 높다고 믿는 일본인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 같다.

 

#3. '희망사항'을 '사실'로 둔갑시킨 증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황당한 '주장'과 '설'이 버젓이 통용되는 나라가 바로 지금의 일본이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가 김정일 위원장의 입을 통해 사실로 확인된 2002년 9월 이후 이는 보편적 양상이 되어있다.

 

상대방을 워낙 증오하다 보면 '희망사항'이 '사실'로 둔갑하는 것일까? 북한에 조금만 이상징후만 나타나면 곧 '김정일 신변이상설'로 발전한다. 이번 해프닝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생산된 일본 언론보도가 현해탄을 건너오면 더 큰 파문을 일으킨다는 데 있다.

 

사실 최초의 <요미우리> 보도는 2면 한 구석에 실린 아주 짧은 기사였다. <요미우리> 측도 정보의 신빙성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정상적 언론이라면 이 정도 기사는 당연히 무시하는 게 정도이다. 그렇지만 국내 언론들은 여기에 해설과 당국자 코멘트를 붙여 경쟁적으로 주요 뉴스로 다뤘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다.

 

이어진 <산케이> 보도는 의도성이 뻔히 엿보였다. 새로운 팩트(사실)도 없이, <요미우리> 보도를 가공해 무책임하게 의혹만 키운 기사였다. 이 기사는 지금 <산케이> 신문 인터넷판에서 삭제했는지, 찾아볼 수도 없다. 보수우익 성향의 독자들을 의식한 <산케이> 특유의 '우익 상업주의'로 보인다. <산케이>나 <요미우리> 같은 우익 성향 일본 언론들의 북한 관련 보도는 이제 옥석을 냉철히 가려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거의 대부분 신문을 망라하는 통합검색서비스를 운영하는 <닛케이텔레콤21>을 통해 검색해보면, 앞서 소개한 시게무라 교수의 저서 <김정일의 정체>에 대해 공교롭게도 <요미우리>와 <산케이> 두 신문만이 서평을 실었다.

 

<산케이>는 "저자가 다면적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진상에 접근하고 있다"고 칭찬했고, <요미우리>도 "정확도 높은 증언을 수록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언론 사정에 대해 또 하나 똑바로 봐야할 점이 있다. 일본의 모든 언론을 같은 도매금으로 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신문의 연이은 민감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등 다른 신문들은 이를 '꿋꿋이' 무시했다. 어느 하나가 불을 당기면 모든 언론들이 냄비처럼 끓는 한국에서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태그:#김정일 신병이상설, #요미우리, #산케이, #시게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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